“야 그때가 좋았지” 고등학교에서 친해진 언니가 이미 졸업한 고등학교를 떠올리며 한 말이다. 우리 둘이 만나기만 하면 학교에 대한 험담을 늘어놓았던 것이 아직도 또렷이 기억에 남아있는데, 다른 사람도 아닌 그 언니가 달콤한 향수에 빠져 졸업한 고등학교를 그리워하고 있었다. 싫어했던 과거를 떠올리며 기분 좋은 향수를 느끼는 사람이 비단 언니만은 아닐 것이다. 나 역시 과거의 예쁜 추억들만 모아 소중히 간직했다가 옛 친구들을 만나 그 보따리를 푸는 것처럼, 우리는 모두 돌아가지 못한 그 시간을 그리워한다. 분명히 과거의 나는 현재의 나보다 훨씬 우울했고, 모든 것에 힘들어하며 어서 지옥 같은 나날들이 지나가길 기다렸다. 과거의 나는 현재의 나와 비교해서 약간 더 젊다는 것 외에 딱히 두드러지는 이점이 없음에도 그 시절의 나를 떠올리면 어여쁘고 애틋하다.

  과거를 그리워하는 내 모습이 느껴진 건 최근 <문명특급-숨듣명 콘서트>를 보면서였다. 숨듣명 콘서트에서는 2000년대 후반에서 2010년대 초반 사이 활동했던 가수들이 모여 수많은 학생의 학창 시절을 강타했던 노래들을 불렀다. 이후 새로운 유행이 생겼다. 유키스의 ‘시끄러’와 ‘만만하니’, 틴탑의 ‘향수 뿌리지마’, 티아라의 ‘롤리폴리’, 나르샤 의 ‘삐리빠빠’등과 비슷한 시기에 나온 히트곡들이 사람들의 플레이리스트에 담기기 시작했고, 심지어 카페나 음식점에서도 심심치 않게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이는 많은 사람이 추억의 플레이리스트와 함께 유쾌한 추억여행에 동행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우연히 흘러나오는 학창 시절의 노래를 듣고 당시의 추억에 대해 떠들면서 순수하고 열정적이었던 그때로 잠시나마 돌아갈 수 있으니 말이다.

  ‘추억’이라는 단어가 가지는 힘은 엄청나다. 좋았던 기억도 나빴던 기억도 모두 추억이 되면 반가운 기억이 되어버린다. 우리가 다신 돌아갈 수 없는 그 시절을 어루만지며 그리운 눈을 하는 것은 냉정하게 말해 기억 왜곡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나는 기억을 왜곡하는 우리의 뇌를 칭찬해주고 싶다. 기특하게도 우리의 뇌는 얼룩덜룩하고 너덜너덜한 기억 조각도 어여쁘게 바꾸어 힘든 순간 잠깐 꺼내 볼 수 있는 예쁜 추억 조각으로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기억이 왜곡되어 어여쁜 추억으로 바뀌었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나는 잠시라도 그리웠던 과거로 도피한다. 그리운 과거로의 적절한 도피는 힘들고 지친 나에게 잠깐의 휴식을 주기도 한다. 여전히 힘들고 가끔은 괴롭기도 한 삶을 사는 지금의 나 역시 미래의 나에게 새로운 추억거리를 주는 예쁜 기억으로 남아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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