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대시보 <이都저都> 여행칼럼을 마무리할 때가 된 것 같다. 2012년 2학기에 예루살렘으로 시작한 것이 이번 학기의 제천까지 이어졌다. 남극 대륙은 아직 가보질 않아서 다루지 못했지만, 6개 대륙에 있는 도시들 중 인상 깊었던 도시들은 나의 글감이 되었다. 아름다운 자연에 감탄했던 도시, 처참한 모습에 잠시나마 우울해졌던 도시, 먹는 것 하나하나가 나를 새로운 미각의 세계로 이끌어 주었던 도시, 영적인 감동으로 숙연해졌던 도시. 여행했던 도시 하나를 선정하여 원고지 12매에서 15매 정도의 분량으로 핵심만 뽑아서 묘사하는 일에는 꽤 많은 시간이 들었다. 주중에 써서 빨리 편집부에 송고(送稿)해야 한다고 늘 다짐을 했지만, 이런 저런 일을 하다 보니 언제나 금요일 저녁에 시작된 글쓰기는 토요일 새벽에서야 끝이 나곤 했다. 언제부터인가 원고를 보내고 나서 토요일 오후까지 잠을 자는 패턴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제는 이런 생활 패턴에서 해방이 될 듯싶다.

  첫 번째 글감이 되었던 도시 예루살렘은 그 의미가 ‘특별하게’ 크다. 이도저도 칼럼의 시작을 알리는 도시이기도 했지만 완전히 사라져버렸던 나의 신앙심이 조금이나마 되살아난 곳이 예루살렘이었기 때문이다. <탈무드>에서 왜 예루살렘이 이 세상 열 개의 복 중 아홉 개를 가졌고 한 개의 복을 나머지 도시들이 나누어 가졌다고 했는지를 다시 돋아난 ‘신앙의 싹’이 은은하게 알려주었다. 다시 무뎌질 대로 무뎌진 나의 신앙생활이지만 예루살렘에서 공부할 때는 적어도 안식일은 지켰다.

  ‘다양함이라는 악기를 천사가 연주하는’ 도시 방콕과 ‘산 위에 핀 불심(佛心)’ 치앙마이도 나에게는 소중한 도시들이다. 방콕은 수십 번을 여행했고, 치앙마이는 몇 번 밖에 가보지 못했지만 인생의 말년을 보낼 후보지로 꼽아 놓기까지 했다. 직선적인 세계관에서 벗어나 이 세상을 더 여유롭게 볼 수 있는 안목을 키워준 고마운 두 도시다. 음식 또한 다양해서 태국은 갈 때마다 행복하다. 방콕은 호불호가 많이 갈리지만 나에게는 동남아시아 최고의 도시다.

  케냐 마사이족의 언어로 ‘맛있는 물’을 뜻하는 나이로비에서 정작 사람들은 오염된 물을 사용하고 있었다. 세계 최대의 빈민가 ‘키베라’에서 병마와 싸우며 살아가는 사람들은 불교에서 규정하는 지옥 속에서 신음하는 것처럼 보였다. 빈민가가 어느덧 관광지가 되고, 관광지가 된 빈민가에서 사진을 찍고 있는 나는 한없이 부끄러웠다. 두 번 다시 가고 싶지 않은 도시 나이로비가 나의 글감이 된 것은 지금 생각해도 신기할 정도다. 말라리아에 시달리지 않고 신선한 생수를 마음껏 마실 수 있는 나의 행복을 나이로비에서 수없이 증명했다. 아프리카 대륙의 불합리는 나이로비만으로 도 충분했다.

  천재의 건축물이 태양을 삼키는 도시 바르셀로나에서는 가우디의 건축물을 감상하기 이전에 우리나라의 지역감정은 ‘새 발의 피’임을 몸소 체험했다. 매일 밤 카탈루냐 광장에 나와 분리독립을 외치는 사람들과 대구에서 코로나가 확산될 때 마스크를 만들어 보내는 광주 사람들은 비교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바르셀로나에서 우리나라의 지역감정은 작은 애교에 불과했다. 나는 왜 이런 것만 먼저 보는지 모르겠다.

  위대한 건축물을 품은 아름다운 항구도시 시드니는 이도저도 여행칼럼의 100번째 도시였다. 사실 100번째 도시를 마지막으로 숭대시보에 지면(紙面)을 돌려줄 것이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니 나로서도 다시 놀란다. 외른 웃손의 역작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 앞에서 맥주를 많이 마시는 바람에 달링 하버까지 걸어오는데 비몽사몽(非夢似夢)했던 기억이 뚜렷하고 생생하다.

  내가 남미에서 가장 좋아하는 도시 부에노스아이레스는 언제든 다시 가고 싶다. 가는 길은 힘들지만 탱고의 선율과 보카 주니어스의 열정, 에비타의 감동과 아사도(Asado)의 맛은 35시간에 가까운 비행도 마다하지 않게 해준다. 지독한 몸치인 나도 라틴 댄스에 몸을 움직였던 유일한 도시 ‘좋은 공기’ 부에노스아이레스가 참 그립다.

  각 대륙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도시를 나열하는 것만으로도 글이 풍성해지는 느낌이다. 그러나 이제 여행을 마무리할 때다. 지난 9년간 ‘잠시’ 보관했던 지면을 숭대시보에게, 그리고 다른 필자(筆者)에게 반환할 때다. 마라톤을 1킬로미터 정도 남긴 심정이다.

  예루살렘에서 피렌체로, 헬싱키에서 레이캬비크로, 카이로에서 리스본으로, 프놈펜에서 루앙프라방으로, 상파울로에서 발파라이소로, 서울에서 제천으로, 지구를 수십 바퀴 돌아서 귀향한 기분이다. 시간이 많이 흘러 언젠가, 누군가가 숭대시보에 남긴 나의 ‘작은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면 이 또한 얼마나 흐뭇한 일인가.

  벌써부터 칼럼을 마치는 마지막 인사말을 어떻게 쓸지 가슴이 벅차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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