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국가의 원리 이해하기

  ‘복지국가’에 대해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머릿속에 떠오르는 사례는 스웨덴, 덴마크, 노르웨이와 같은 북유럽의 몇몇 국가들이다. 국가가 국민들의 삶 전반을 돌보며 사회경제적으로 낙오하는 사람이 없도록 영역별로 다양한 정책들을 만들고 시행하는 모습은 그 바깥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바라봤을 때 현실과 환상의 묘한 경계에 놓여있다. 이는 한국인들에게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오늘날 대한민국 사회가 과연 복지국가인지 누군가 묻는다면 우리는 뭐라고 대답할까? 아마 국가가 해주지 못하고 있는 것들의 명단이 줄줄이 나올 것이다. 부동산을 비롯한 자산격차, 임금의 성별격차, 아동 돌봄, 노년기의 빈곤 등 오늘날 한국이 마주하고 있는 다양한 문제들은 사회적 안전망에 대한 갈구와 그것의 부재에 대한 불만과 분노로 쉽게 이어지곤 한다. 특히 코로나19의 확산은 지난 일 년 사이 국가의 역할에 대한 더 많은 기대를 낳았다. 국가는 바이러스의 침투로부터 국민들을 안전하게 보호하는 역할을 맡았고, 침체된 경제를 살리기 위해 긴급재난지원금을 제공하기도 했다. 북유럽의 복지국가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코로나19에 감염되고 또 죽어간다는 소식을 들으며 우리는 그래도 한국의 방역이 제일이라며 ‘K-방역’의 우수성을 이야기한다. 이쯤 되면 한국의 복지체계가 꽤 괜찮다는 생각이 들만도 싶다. 삶의 이편을 돌아보면 불만족스러운 복지수준이 저편을 바라보면 또 만족스럽기도 하다. 이는 우리의 삶 전체가 복합적인 복지의 잠재적 영역에 놓여있음을 보여준다. 코로나19에 대한 대응의 사례가 보여주는 것처럼 한국의 경우 각자도생의 다양한 고난 속에서 국가 역할의 부재를 체감하다가도 의료영역에 대해서만은 그래도 만족도가 높은 편이다. 영국에 머물던 시절 급작스러운 치통에 병원으로 달려갔으나 엑스레이를 찍고 일주일 뒤에 다시 만나자는 의사의 말을 듣자마자 한국으로 오는 비행기표를 구매했다. 그리고 공항에서 바로 달려간 치과에서 나는 딱 한 시간 만에 완벽한 평온을 찾을 수 있었다. 그렇다면 삶의 다른 영역들에서도 한국의 의료와 같은 만족스러운 혜택을 즐기고 싶은 많은 사람들의 소망은 과연 실현될 수 있을까? 이러한 질문 앞에서 우리는 피할 수 없는 불변의 진리를 마주하게 된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복지는, 또 누리고 싶어 하는 복지의 비용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복지의 확대가 대부분의 경우 증세를 기반으로 할 수밖에 없다는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는 순간이다.

  중앙정부의 긴급재난지원금 지급과 비슷한 시기에 시행된 경기도의 재난기본소득 제공은 몇 년 전부터 미래의 복지를 둘러싼 중요한 논쟁점 중 하나였던 전 국민 기본소득(Universal Basic Income) 문제를 다시 뜨거운 화두로 만들었다. 이미 핀란드에서는 2017년에서 2018년에 걸쳐 실험을 통해 기본소득의 제공이 사람들의 근로의욕을 고취시키는지, 행복감에는 어떠한 영향을 끼치는지 알아봤다. 전 국민 기본소득의 핵심은 개인 단위로 지급되며 그 사람의 자산이나 소득이 얼마인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일정한 금액을 지급해 준다는 것이다. 한 달에 30만원 혹은 50만원이라는 금액이 월급에 더해 추가로 내 통장에 들어온다고 생각하면 상상만 해도 기분이 좋아진다. 거기에 가족이 만일 세 명이라면 매달 추가로 얻게 되는 금액은 가구를 단위로 했을 때 더욱 커진다. 그런데 내 통장에, 다른 가족 구성원의 통장에 매달 들어오는 그 돈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이러한 돈을 받는 것과 내가 이전부터 누리던 훌륭한 의료혜택은 공존할 수 있는 것인가? 혹시 돈 몇 푼을 쥐어주고 진정한 의미의 ‘각자도생’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닐까? 영국의 한 설문조사는 전 국민 기본소득의 도입에 찬성하는 약 48%의 사람들에게 그것이 수혜자에게 세금을 더 걷는 것과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했을 때 찬성자의 비율이 29%로 줄어듦을 보여준다. 기존에 사람들이 누리던 복지정책의 축소와 함께 이뤄질 것이라고 이야기했을 때에도 마찬가지로 기본소득 찬성자 비율은 37%로 줄었다. 복지정책의 축소와 증세를 함께 이야기했을 때, 기본소득 도입에 찬성하는 사람은 22%로 절반 아래로 줄어들었다. 강하게 지지하는 사람의 비율은 15%에서 5%로 1/3로 줄었다. 여기에서는 기본소득의 사례를 들었지만 오늘날 한국에서 복지를 둘러싼 다양한 논란들은 너무나도 다양하고 복잡하며 그래서 정리하기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양재진 교수의 책 <복지의 원리>는 그런 측면에서 가뭄의 단비와도 같다. 복지국가의 기원에서부터 오늘날 우리나라의 복지수준에 대한 논의, 의료와 연금, 위에서 이야기한 기본소득 논의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오늘과 내일을 이해하기 위한 중요한 키워드가 복지임을 고려할 때 이 책은 누구나 꼭 한번 읽어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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