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都저都>의 마지막 원고를 쓰는 이 순간, 감사한 마음뿐이다. 지난 9년간, 정확히는 17개 학기 동안 숭대시보가 베풀어 준 후의(厚意)에 감사하고, 늘 졸고(拙稿)를 높이 평가해주신 교수님들께 감사하고, 이메일로 피드백을 주신 여러분들께 감사하고, 원고를 늦게 주어도 싫은 내색 한 번 하지 않은 학생 기자님들께도 감사하다. 180번째 원고가 마지막 글이 될 줄은 몰랐는데, ‘180’이라는 숫자는 지금 이 순간부터 좋아하는 번호가 될 것이다. 기왕이면 ‘200’개를 딱 채웠으면 어땠을까라는 아쉬움도 있지만, 나의 키와 비슷한 ‘180’이라는 숫자로 칼럼을 마무리하는 것도 나에게는 큰 영광이 아닐 수 없다.

  2012년 가을 학기에 숭대시보에서 글을 의뢰받았을 때 내가 과연 몇 개의 글을 써나갈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도 들었지만 회를 거듭할수록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마음이 생겼다. 학교신문을 과연 몇 명이나 읽을까라는 회의적인 생각도 들었고, 내가 쓰는 도시 이야기에 원고료를 두둑이 준다는 몇 개의 사보(社報)도 있었지만, 그래도 우리나라 최고의 대학언론 숭대시보에 글을 쓴다는 자부심이 매주 정해진 시간에 나를 테이블에 앉혔다. 여행했던 도시에 대해 쓴다고는 했지만 모르는 것도 많고 간과했던 것도 많아서 책과 여행 잡지와 인터넷을 검색하느라 많은 시간을 할애하기도 했다. 글과 함께 올라가는 사진을 찾는 것도 시간이 꽤 걸리는 작업이었다. 오래 전에 여행했던 도시들은 사진이 없어서 비교적 근래에 글의 소재가 되는 도시를 여행했던 지인들에게 부탁해서 사진을 입수한 경우도 많았다. 사진을 기꺼이 제공해 주신 분들에게도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나는 계속 감사해야 한다. 사진의 중요성을 깨달으면서 매 순간 사진을 찍는 습관이 생긴 것도 이도저도 칼럼 덕분이다.

  여행의 단위는 계속 변하고 있다. 1989년 1월 1일 내가 가장 ‘위대한’ 의사결정이라고 여기는 해외여행 자 유화가 시행되고,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여행은 ‘국가’가 기본 단위였다. 사람들은 독일, 프랑스, 미국, 태국, 일본을 다녀왔다고 말했다. 그러던 것이 2000년대가 되자 여행의 단위는 ‘도시’가 되었다. 여행자들은 국가를 여행했다고 하지 않고 도시를 여행했다고 말하기 시작했다. 예컨대, 함부르크, 보르도, 샌프란시스코, 치앙마이, 나가사키를 다녀왔다고 하면서 각자의 여행기를 설파(說破)했다. 2010년대부터 여행의 단위는 더 작아져서 특정 장소가 되었다. 여행의 단위가 더 이상 국가도 도시도 아닌, 암스테르담의 모터쇼, 밀라노의 패션쇼, 프랑크푸르트의 도서전, 피렌체의 우피치 미술관으로 세분화되었다. 일주일간 독일의 전역을 다니는 것이 아닌, 며칠 동안 파리의 모든 곳을 섭렵하는 것이 아닌, 그저 좋아하는 작가의 전시회를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루 종일 감상하는 것으로 변이했다. 어떻게 보면 내가 쓰는 도시 칼럼의 단위도 이제는 도시에서 특정한 장소로 바뀌어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방콕이 아닌 방콕의 ‘마분콩’ 쇼핑몰에 대한 글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여행의 방식과 트렌드 또한 많이 바뀌었다. 추억의 아이템 시리즈를 손에 들고 페이지를 뒤적여 가며 여행을 했던 것이 바로 어제 같은데, 지금은 스마트폰 앱으로 길을 묻지 않고도 어디로든 갈 수 있으며, 가격 정보를 미리 확인할 필요도 없고, 숙소를 찾느라 프런트 데스크에 전화할 필요도 없다. 모든 것이 실시간으로 손바닥 위에서 이루어진다. 그리고 외국에 있는 것들이 대부분 우리나라에도 들어와 있어서, 그리고 좋은 가격에 직구를 할 수 있어서, 아주 특별히 선호하는 물건을 제외하고는 여행 중에 물건을 많이 사오지도 않는다. 약 30년 전 내가 맨 처음 미국을 여행했을 때 월마트에서 구입한 수많은 물건을 한국으로 가져오느라 큰 가방을 하나 더 샀던 기억이 생생하다. 지금 누가 미국의 월마트 물건에 감동을 할까.

  마지막 글을 쓰면서 넋두리를 늘어놓는 기분이라서 미안한 마음이 든다. 그러나 독자님들이 충분히 이해 해 주실 것이라고 믿는다. 지금 이 순간, 나는 꽤 아쉽다. 더 좋은 글을 쓰지 못했음이 아쉽고, 더 잘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음이 아쉽고, 무엇보다 더 이상 글로 소통하지 못함이 아쉽다. 지난 9년이 자랑스러우면서 많이 아쉽다. 이 아쉬운 마음이 몇 주는 갈 것 같다. 매주 금요일은 왠지 허전할 것 같기도 하다.

  시작은 끝이 있고, 끝은 또 다른 시작을 만들어 낸다. 오늘로 <이都저都> 칼럼을 마치지만 언젠가 좋은 아이디어와 아이템이 축적되어 <이都저都> ‘시즌 2’를 나에게 할애된 지면에서 시작할지도 모를 일이다. 창궐하는 코로나 때문에 그때가 영원히 오지 않을 수도 있지만.

  감사한 마음으로 칼럼을 마친다. 길지만 짧았던 2012년부터 2020년까지의 시간, 참으로 소중한 시간이었다. 내 마음이 나의 관심과 노력에 ‘무형의 감사패’를 주는 2020년 11월의 마지막 주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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