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학
언어학
  • 오충연 교수 (국어국문학과)
  • 승인 2020.12.01 10:15
  • 호수 126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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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축물의 아름다운 모습은 구조에 의해 탄생하는데, 지구상에서 그 구조를 이루게 하는 중요한 힘은 중력이다. 중력은 건축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이나 기술에 당연하게 작용하며 우리는 이를 의식하고도 있지만, 중력을 학술적으로 다루게 된 것은 근대에 이르러서다. 언어는 중력처럼 당연한 원리로서 작용하여 실생활과 학문을 가능하게 하지만, 정작 언어 자체는 본격적인 연구의 대상이 아니었다.

   현대적인 의미의 분과 학문으로서 언어학은, 수사학처럼 말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와 같은 문제가 언어에 대한 연구로 생각되었던 시절로부터 분리되는 것에서 출발한다. 이로써 전통적인 인문학처럼 사상을 이루어가는 일이 아니라, 아무리 무식한 사람이라도 구사할 수 있는 말 그 자체에 내재되어 있는 규칙을 발견해 내는 일이 목표가 되었다. 언어학은 원리의 원리를 탐구하는 학문이다. 전통적인 인문학은 누적된 지식이 중요했다. 선대의 학자들이 이룩한 담론을 바탕으로 그것을 발전시키는 것이 인문학의 방식이었다. 그에 비해, 언어학에서 구조주의 문법과 생성문법 등 두 번의 혁명이 가능했던 것은 언어라는 명시적인 일상의 자료가 있었고 그에 대한 명료한 분석이 기존의 담론보다 중요했기 때문이다. 선대의 학술업적은 분석을 위한 참고로 쓰일 뿐, 그것을 계승하여 발전시키려는 것에 집착하지 않았다. 구조주의나 생성문법은 사상이 아니라 둘 다 방법론일 뿐이다. 둘의 공통점은 언어자료를 관찰한 다음 가정을 세우는 귀납으로 출발로부터, 이 가정을 원리로 삼아 다시 다른 언어 자료를 설명해보는 연역적 방법을 사용한다. 구조주의는 미국의 행동주의로 인해 경험적이자 귀납적인 방법이라고 오해되고 있는 면이 있는데, 소쉬르의 구조주의는 관념적이고 연역적인 성격이 농후하다. 반면 촘스키가 연역적 방법을 천명하고는 있지만, 언어 연구는 자료에 대한 고찰과 직관이 먼저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귀납에서 출발한다.

  언어학은 전형적인 순수학문이다. 이는 인문학적인 의미의 순수학문하고도 또 다른 차원이다. 다양한 이론 이 있기는 하지만, 전통과 계보는 상대적으로 덜 중요하다. 근래에는 이학이나 공학의 영역을 넘나든다. 북미의 경우에는 전통적인 의미로서의 ‘문법’이 이 학술영역을 주도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근래의 신진언어학자들의 연구는 많은 경우 신경학과 결부된다. 이런 현상은 언어학이 20세기 분과 학문의 체계에 머물러 있지 않고, 언어능력의 본질적인 원리가 무엇인지를 탐구하려는 목표 하에서 자연스러운 일이다.

  다른 순수학문이 그렇듯이 언어학도 응용되는 영역이 많았다. 구조주의 시대에는 문학은 물론 인류학, 사회 학, 유전학에 이바지했다. 예를 들어, 구조주의 방법으로 밝혀낸 <신데렐라>와 같은 탐색담의 구조는 지역별 유입 관계를 밝힐 수 없을 만큼 세계 전 지역에 분포하는데, 한국은 <콩쥐팥쥐전>이 그러하다. 이런 문학 구조의 보편성은 인류학으로도 이어진다. 미국 구조주의의 경우에는 인디언의 언어를 연구함으로써 언어와 사고체계의 상관성을 탐구하는 방편으로도 응용되었다. 개별적인 사회현상을 사회 전체의 구조로부터 파악하고자 하는 노력도 구조주의적인 방법론이다. 생성문법 이후에 근래의 보다 진보적인 응용 분야는 인공지능으로서, 언어신경학이 그렇듯이 인류의 미래와 맞물린다.

  순수학문임에도 불구하고, 언어나 언어학에 대한 관심은 지극히 대중적이다. 그래서 언어학의 이름으로 파 생되는 영역이 많다. 숭대시보에서 이 연재를 필자에게 의뢰했던 이유도 거기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교양으로 알아둘 만한 흥미로운 이야기와 전공으로서의 언어학과는 편차가 심하다. 국어학만 하더라도, 학생들이 학교문법의 수준에서 실생활에 적용되는 문법을 생각하고 수강신청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 분기도나 각종 기호 또는 수학식 같은 도식 등, 추상적이고 복잡한 문법 개념에 질릴 수도 있다. 실용적인 분야에 유용할 듯하지만, 대중의 생각처럼 언어학이나 국어학이 그리 실용적인 분야는 아니다.

  필자의 시절에 국어학을 연구하던 젊은 학도들의 정신도 그리 실용적이지는 않았다. 벌써 20년 가까이 되었는데, 국내 젊은 연구자들이 ‘한국어통사론연구회’라는 작은 모임을 결성해서 매달 두 명의 발표자를 선정해서 서울 시내 대학에 장소를 마련하고 치열한 발표와 토론을 벌였다. 숭실대학교도 그중 하나였다. 토론은 보통 네댓 시간의 논쟁으로도 끝나지 않고 저녁 식사로 마련된 자리에서도 계속되었다. 식사 자리는 주로 대학가의 허름한 뒷골목 식당이었고, 토론은 이곳의 영업시간을 넘어설 때까지 계속되기도 했다. 그렇게 열정의 시대를 지낸 젊은 연구자들은 대부분 여러 대학과 연구기관에 부임했으며, 연구회에는 또 다른 신진 연구자들이 가세하여 지금도 치열한 토론을 계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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