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는 한민족(韓民族)이 사용하는 말이다. 이는 조선어, 조선족(朝鮮族)이라고 해도 같은 뜻이다. ‘한(韓)’은 고대 한반도의 남쪽 부족에서 기원한 말이고 ‘조선(朝鮮)’은 북쪽의 단군이 세운 고대의 나라에서 비롯된 말인데, 한과 조선을 다른 민족으로 보기는 어렵다. 고대로부터 크게 다르지 않은 언어를 사용했던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생각하는 ‘민족’의 개념을 구성하는 주된 요소는 혈통(血統)이다. 일제 강점기에 한국인(조선인)의 배타적 독립성을 주장하고자 하는 정치적인 목적과 맞물려서 ‘단일민족’을 순혈주의적 이데올로기로 강화되었고, 이는 대한민국 건국 이후로도 지속되어 사회적인 추동력이 되었다. 그에 비해, ‘민족’의 실체성을 부정하는 견해도 있다. 세계 이차대전의 전범국들이 전쟁을 일으키기 위한 사상적 추동력을 ‘민족’으로부터 얻었기 때문에 발생한 반발인데, 민족이 혈통적 실체가 없다는 주장도 마찬가지로 이데올로기가 앞선 말이다.

  유전자 검사를 하면, 그가 이민자이거나 선대의 특이한 유전적 이력을 가지고 있지 않는 한, 그 사람이 한국인인지 일본인인지 또는 다른 나라 사람인지 대략 구분할 수 있다. 그러한 점에서 민족은 혈통적 실체성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검사 결과가 한국인이라도 일본인의 유전적 특성이나 중국인의 특성, 심지어는 아메리카 인디언의 특성도 함께 나타난다. 그러니까 한민족을 유전자로 특정하는 일이 곧 한국인 개개인이 순혈임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민족(民族, ethnic group)은 자연스럽게 형성된 것이기도 하다. 고대로부터 지형과 생활권역에 따라 부족이 형성되었다. 부족은 다른 지역의 부족과 경쟁 또는 협력 관계에 놓일 수 있는데 지역의 범위와 인구가 일정 수준에 이르면 ‘나라(nation)’가 형성된다. 고대의 결혼은 같은 생활권역에 있는 지역의 사람들 간에 이루어졌으므로 지역별로 유전적 고립 상태에 놓이게 되는데, 이로 형성되는 부족의 혈통적 특성이 나라의 단위로 확장된 것이 민족이다. 그런데 인류의 이동이나, 적어도 나라가 성립되기 시작했던 청동기 시대 이후로는 전쟁이나 교역 등으로 순혈성을 유지할 수 있던 것은 아니다. 그러하니 민족의 중요한 요소가 혈통이라고 해도 순혈인은 찾기 힘들고, 그렇다고 해서 민족의 혈통적 특성이 허구인 것도 아니다.

  한자 ‘民’은 국가나 단체 등의 공동체적 단위에 속한 사람들을 일컫는다. 서구에서 다른 대륙에 식민지를 만들었던 근대 이후에야 미국이나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다민족 국가가 발생했지만, 본래 나라(nation)는 터전[領土]을 같이 하는 사회적 공동체를 말하기 때문에, 문헌의 맥락에 따라서는 ‘nation’은 곧 민족의 개념이기도 하다. 나라는 소통하는 범위의 집단이므로 그 나라 사람들의 언어는 당연히 같았다. 그러므로 민족과 언어는 맞물려 왔던 것이다. ‘民族’이라는 단어는 중국어에도 있지만, 사학자들은 우리가 일상적인 용어로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일제 강점기 이후로 생각된다고 한다. ‘민족’은 메이지 유신 시대에 서구 열강으로부터 일본인이 배타적 권리를 주장하기 위해 사용했다고도 하는데, 역설적이게도 한국인이 일본으로부터 배타적인 권리를 주장하기 위해 강조되었다고 보인다.

  한국인은 옛 조선[古朝鮮], 그러니까 단군이 세운 조선을 민족의 기원으로 본다. 고조선이 여러 나라로 분열된 부여국 시대를 거치면서 조선족은 곧 부여민이기도 했다. 고구려를 세운 주몽[동명성왕]도 부여민이므로 그 아들인 백제의 온조도 부여민이다. 고대 한반도 국가들의 언어와 민족이 대략 한 종류였음은 인정되는 일이다. 중국의 삼국지(三國志) 위지(魏志)에서는 고구려인에 대해서 부여인의 한 종류고 언어와 제반 사항이 부여와 대개 같으나 사람들의 성향이나 의복에 다소 차이가 있으며[東夷舊語 以爲夫餘別種 言語諸事 多與夫餘同 基性氣衣服有異], 이들의 생김새나 의복, 언어가 말갈족이나 숙신족[퉁구스계] 등과는 달랐음도 명시하고 있다. 양서(梁書)의 백제전(百濟傳)에서는 언어와 복장이 대개 고구려와 같다[今言語服章 略與高麗同]고 하였다. 한반도 남부-지금의 충청, 전라, 경상 지방-의 한계(韓係) 부족의 언어는 북방의 부여계 언어와 차이가 있던 것으로 보이는데, 그럼으로 해서 백제의 언어는 이중화되었던 것으로 추정한다. 그러나 차이는 남방의 언어 내에서도 기술되어 있고, 지배층이 한계였던 신라가 고구려나 백제와의 외교에서 통역을 따로 둔 사료는 없으니, 부여계와 한계의 차이를 두고 소통이 어려울 정도로 다른 언어라고 볼 수 없다. 학계에서도 조어(祖語)를 같이한다고 추정한다. 이들의 공통 조어, 즉 원시 한국어는 동북아시아의 몽골어나 퉁구스어, 그리고 투르크어 등 중앙아시아 지역의 알타이어계 제언어들의 공통조어로부터도 일찍이 분화된 것으로서, 한국어는 알타이어계 중에서도 특수한 계통에 놓인다. 그러하니 한민족을 고대로부터 단일민족이라고 할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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