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가 시끄럽다. 정치 영역에서의 갈등이야 늘 그래왔다고 치더라도 다양한 사회 갈등들의 증대도 개인의 일상생활을 온갖 스트레스로 가득 채울 만큼 커져만 가고 있다. 이제는 너무나도 익숙해진 성별 갈등과 세대 갈등을 대표적인 사례로 들 수 있을 것이다. 적당한 수준의 갈등은 한 사회에 내재하고 있는 구조적인 모순들을 폭로함으로써 보다 나은 공동체의 수립에 기여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그러나 갈등의 종류가 지나치게 많아지고 그 정도가 커지게 되면 사회 전반의 피로도가 커지고 갈등 이후의 회복력 또한 약화될 수밖에 없다. 즉 한 사회가 유지되고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내적인 에너지가 약해지는 것이다.

  산업화 이전, 비교적 동질적이었던 사회구조 안에서 개인들은 비슷한 삶의 조건을 지닌 채 살아갔다. 유사한 가족구조, 경제 수준, 그리고 삶의 양식은 개인들이 그것을 의식하는지의 여부를 떠나 그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중요한 조건이었다. 산업화와 도시화로 인한 사회의 구조변동은 개인들 사이의 이질성 증대라는 모습으로 나타났으며 이는 그들의 삶의 형태 및 조건의 차이로 이어지며 다양한 갈등을 낳았다. 에밀 뒤르켐의 고민은 더 이상 동질성이 담보될 수 없는 근대화된 사회에서 이질적인 개인들의 연대를 어떻게 이룰 수 있는지에 대한 것이었다(뒤르켐, <사회 분업론>).

  흔히 정치가나 학자는 서로 다른 상황 속 사람들(그리고 그들이 구성하는 집단)의 갈등을 약화시키기 위해 그들을 어떻게 ‘통합’할 것인지에 주목한다. 그리고 그러한 통합에 대한 고찰은 자연스럽게 갈등을 불러일으키는 영역 내에서의 동질성 강화에 대한 탐구로 이어진다. 불평등으로 대표되는 경제적 갈등의 경우 경제적 차이를 어떻게 줄여나가야 할지의 문제로 이어지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라고 하겠다. 그러나 이러한 과정이 순탄한 것은 결코 아니다. 사실 서로 다른 조건에 놓여있는 개인들 사이의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제안되는 정책들이 사람들의 동의를 얻지 못하는 과정에서 갈등은 더욱 증폭된다. 내가 속해 있는 집단이 손해를 볼 수도 있는 결정에 대한 맹목적인 저항은 자연스러운 반응이지만 언젠가 나에게 이익이 될 수도 있는 행위에 대한 상대 집단의 저항을 정당화한다는 점에서 악순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

  사회적 갈등이 증폭되고 있는, 그래서 공동체의 존재 자체가 위협받고 있는 상황에서 제레미 리프킨의 ‘공감(empathy)’ 개념은 주목할 만하다. 리프킨에 따르면 인류 문명의 발달과정은 곧 공감의 확장과정으로도 이해할 수 있다. 즉, 시기에 따라 극단적인 형태의 사건들이 인류의 존재를 위협하기도 했으나 이에 대한 반성이 공감 능력의 확장으로 이어짐으로써 이후 비슷한 일의 발생을 막아왔다는 것이다. 만일 이러한 매커니즘이 없었더라면 공동체는 진작 멸망했을 것이라는 점에서 그의 주장은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이에 인간은 공감하는 존재, 즉 ‘호모 엠파티쿠스’로 명명할 수 있다.

  이러한 공감이 특히 중요한 것은 타인이 겪는 고통의 정서적 상태에 스스로를 대입시켜 마치 그 고통을 겪는 것같이 느낄 수 있게 해준다는 데 있다. 이것은 타인의 고통을 측은한 눈으로 바라보는 ‘동정’과는 다른 것이다. 공감은 “나의 특성과 성격을 유지하면서 발생하는 자리바꿈이 아니라 내가 공감하는 그 사람의 성격과 특성 속에서 행하는 자리바꿈”이다(장원호․김동윤․서문기, <공감, 대한민국을 바꾼다>). 이렇게 이해할 때 우리는 공감 능력을 단순히 감정적인 영역을 넘어 지적이고 의지적인 능력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오늘날 한국에서 공감 능력이 중요한 까닭은 사회에 만연한 갈등과 혐오 문제와 직결된다. 성별, 신체적 특성, 인종, 종교를 포함하여 집단과 개인에 대한 혐오 표현은 더 이상 포용과 인내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이러한 문제에 대해 제도적이고 법적인 해결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기 어렵기 때문에 문제 해결을 위한 근본적인 성찰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공감할 수 있는 인간의 능력은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사실 공교육과 고등교육의 역할 중 하나는 학생들이 이러한 공감 능력을 키운 채 사회에 나아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의 교육은 이러한 기능을 얼마나 충족시키고 있는가? 반성적인 시각으로 돌아볼 때이다.

저작권자 © 숭대시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