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에서 해보고 싶은 버킷리스트 3위 정도에 있었던 것이 ‘교환학생 가보기’였다. 사실 아무 연고도 없는 지구 반 바퀴 너머의 낯선 땅에서 혼자 지낸다는 것은 나에게 말 그대로 꿈이자 환상일 뿐이었다. 그러다 어느 예상치 못한 순간에 교환학생 원서를 넣게 되었고, 운 좋게 지원한 나라로 갈 수 있었다. 주변 사람들로부터 잘할 거니까 걱정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정말 많이 들었지만 정작 나는 출국 일주일 전부터 밤잠을 설쳤다. 친척들이나 지인들에게 조언도 많이 들었고, 가서 외국인들과 어떻게 하면 잘 지낼 수 있을지 머릿속에서 시뮬레이션도 수십번 돌려 보았다.

  폴란드에 도착한 첫 주부터 오리엔테이션과 환영회가 몰아쳤고, 고등학생 때 배우던 영어 듣기 속도의 몇 배는 더 빠르고 다양한 억양의 영어가 공포스러워 한국인 다섯 명과 우르르 몰려다닐 수밖에 없었다. 그 와중에 한 명의 한국인 언니가 외국인 친구들과 빠르게 친해졌다. 못났지만 나는 언니 옆에서 더욱 위축되었고 질투에 가까운 감정만 계속 휘몰아쳤다. 분명 그 순간을 간절히 원했고 준비도 열심히 했다고 생각하는데 막 상 왜 입도 뻥긋하지 못하는지, 왜 나는 웃는 것밖에 못하는지 자괴감이 몰려왔다. 그렇게 폴란드에 도착한 지 정확히 3일 만에 몸살로 앓아누웠다.

  다행히 딱 하루 아프고 난 뒤 나는 각성했다. 여기까지 온 이상 목표했던 걸 무조건 이루고 돌아가겠다고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았다. 시작이 반이라고, 힘들었던 며칠을 버티고 나서는 빠르게 적응해갔다. 한국인 친구들과 어울리는 시간은 최소한으로 하고 대부분의 시간을 외국 친구들과 보냈다. 처음에는 대화의 대부분을 놓치기 일쑤였지만 얼마 되지 않아 친구들의 대화를 쫓아갈 수 있게 되었고, 시간이 더 지나니 조금씩이나마 말도 트였다. 그 뒤로는 더 다양한 국적의 친구들과 어울릴 수 있었고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생각해보면 내가 우리 과의 부학생회장이 되던 순간도 마찬가지였다. 초등학생 때부터 매년 반장을 맡아오던 나였지만 막상 대학교 한 학과의 부학생회장이 되고자 하니 모든 것이 불투명해 보였고 불안과 걱정이 끊이질 않았다. 그러나 나를 전부 내던진 한 해 동안 즐거움이 넘쳤고, 다 지나고 뒤돌아봐도 학생회의 일원이었던 내가 자랑스러울 뿐이다.

  ‘꿈이 실현되는 순간은 항상 두려운 법이다.’ 재밌게 본 미국드라마 ‘센스8’에 나온 대사이다. 처음 폴란드에 발을 내딛던 순간이나 부학생회장으로 임명되던 순간처럼 내가 바라왔던 것이 실제로 이루어졌을 때 기대나 설렘보다는 두려움이 컸다. 그러나 근심은 한 순간일 뿐이다. 두려움 너머에선 꿈꾸던 것 보다 더 큰 행복이 기다리고 있을지 누가 알까. 동양 여자들에 대한 안 좋은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는 친구가 나로 인해 편견이 모두 없어졌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우리 덕분에 한 해 동안의 학교생활이 너무 좋았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와 같이 두려움을 이겨낸 결과는 짜릿할지도 모르는 일이지 않은가. 원하던 것을 이루게 되었을 때 걱정보다는 그 순간을 즐기는 여유를 가지고 살아야겠다고 다시 한번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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