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경세상만사 <8>



이래저래 추울때다. 주식장은 온통 ‘파란나라’로 얼어붙었다. 유학가고, 어학연수갔던 친구들의 귀국소식이 하루가 멀다하고 들려온다. 환율 탓이다. 하루에 100원씩 무서운 기세로 오르니 버틸 턱이 있나. 주가와 환율이 만나 골든크로스를 이룬다고 웃던 때가 어제같은데 이젠 둘이 ‘제 갈길’을 가는 바람에 자리가 바뀌어버렸다. 환율은 1500 주가는 900, 심지어 10년째 제자리 지키던 엔화마저 달러보다 더 높은 몸값을 자랑한다. 강만수 장관이 타고다니는 차는 사이드카고 즐기는 간식은 서킷 브레이커란 농담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교수님이 이런 말을 하셨다. 너희는 지금 역사의 현장에 있다고. 촛불시위부터 세계 경제 위기까지, 그리고 이제 우리나라는 또 한번 경제환란을 겪게 될지 모른다고. 학생들은 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교수님, 그런 역사의 현장엔 있고 싶지 않아요. 이래저래 괜히 헛헛해진다. 날씨도 장단을 맞춰 한참 덥던 날씨가 갑자기 얼어붙었다. 마음도 몸도 추우니 온기가 필요하다. 여느 때보다 붕어빵이나 호빵 나오는 시기가 빨라졌다는데, ‘찬바람 불면 따끈한 호빵이 그리운’ 때다. 싸늘한 몸을 녹여주는 게 뜨끈한 음식이라면 마음은 뭘로 데워야 하나? 작년까지 잘 나가던 처세서나 경제서는 펴 보기도 싫은 지금은?


내가 선택한 것은 과거로의 도피였다. 만화를 편다. 7, 80년대의 우리 엄마아빠들의 얘기가 에피소드로 연재된 ‘안녕, 자두야’. 과거의 아름다운 부분만을 기억하게 하는 게 무드셀라 증후군이라 했던가? 이래저래 그 시대가 편안하지만은 않았을 텐데도 만화는 따뜻하다. 즐겁거나 감동적인 추억들이 새록새록 튀어나오는 것을 보다 보면 ‘그래, 힘들지만은 않았던 때구나’ 안심이 된다.


자두의 아빠는 설렁설렁하지만 사실 6. 25때 월남하며 잃어버린 가족 때문에 누구보다도 아이들을 사랑한다. 잔소리 심한 엄마는 잘 나가던 신여성이었으나 가족을 위해 억척스런 아줌마가 됐다. 어쩐지 찡해지는 것은 그게 자두만의 이야기는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힘든 시절에서도 희망을 찾던 사람들의 사랑, 우정, 혹은 어렸을 적 어설픈 첫사랑까지 다양한 이야기 속에서 허우적대다, 현실로 돌아오면 다시 시작하자는 용기가 솟는다. 찬바람 시린 계절, 처세서 뒤적거리는 것도 좋지만 옛날의 추억이 뛰노는 만화에서 위로받고 힘을 얻는 것은 어떨까. 먹고 살기 위해 못 할 게 없었던 그 시대였지만 힘들어도 행복했다는 조곤조곤한 목소리가 힘든 현실에 맞부딪칠 우릴 달래줄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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