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4일(금)부터 아동 및 청소년 대상의 디지털 성범죄에 대해 경찰이 신분을 위장하며 수사할 수 있도록 하는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이하 청소년성보호법)’ 개정안이 시행됐다. 그러나 해당 제도는 성인을 대상으로 한 성범죄에 적용할 수 없으며 현행 주민등록법상 수사 과정에서 일부 제약이 생길 수 있어 보완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위장 수사는 지난해 4월 ‘n번방 사건’을 계기로 마련한 디지털 성범죄 근절 대책의 일환으로 제안됐다. 앞서 지난 2019년 11월, n번방 사건을 수사하기 위해 성 착취물이 공유된 채팅방에 잠입하려던 경찰에게 채팅방 운영자 조주빈 씨가 “경찰이나 기자가 있을 수 있다”며 추가적인 신분 인증을 요구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이에 따라 해당 경찰은 지인의 신분증과 사진을 빌려 자신의 신분을 위장 인증할 수밖에 없었다.

  이처럼 그동안 경찰들은 위장 수사를 통해 사건을 조사하는 데 어려움을 겪어 왔다. 그동안은 판례에서 인정되던 범위 내에서만 경찰의 위장 수사가 인정됐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지난해 6월 19일(금) ‘디지털 성 착취 근절을 위한 제도 개선 토론회’에서 경찰청 최종상 사이버수사과장은 “현재도 위장 수사는 활발하지만, 판례에 의존할 경우 경찰의 운명이 검사나 판사의 결정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위장 수사의 활성화를 위해 법제화가 필요하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정부는 아동 및 청소년 대상의 디지털 성범죄를 수사할 때 ‘신분 비공개 및 위장 수사’를 할 수 있도록 청소년성보호법 개정안을 시행했다. 이를 통해 경찰은 자신의 신분을 밝히지 않고 범죄자에게 접근해 범죄 관련 정보를 수집할 수 있으며, 범죄 혐의점이 충분하다면 법원의 허가를 받아 신분 위장 수사를 할 수 있게 됐다. 지난해 6월 해당 법안을 발의한 더불어민주당 진선미 의원은 “현행법의 사각지대에 남아있던 아동 및 청소년을 대상으로 행해지는 성적 착취의 효율적 수사를 위한 위장 수사를 가능케 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담은 것”이라고 밝혔다.

  세부적으로 위장 수사는 신분 비공개 수사와 신분 위장 수사로 구분된다. 신분 비공개 수사는 경찰 신분을 밝히지 않고, 범죄 현장 또는 범인으로 추정되는 자에게 접근해 범죄 행위의 증거 또는 자료 등을 수집하는 방식이다. 또한 신분 위장 수사는 △신분 위장을 위한 문서‧전자 기록 등의 작성‧행사 △위장 신분 이용‧계약‧거래 △성 착취물 등 판매‧광고 유형의 수사를 진행하는 방식이다. 신분 위장 수사를 위해 법원 허가를 받아 가짜 신분을 써서 계약 및 거래를 할 수 있고, 성 착취물 △소지 △판매 △광고도 가능하다. 서울경찰청은 이러한 위장 수사를 통해 범행 의지를 사전에 차단하고 위장 신분을 이용해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수사로 디지털 성범죄를 제압하는 등의 기대 효과가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해당 법안은 성인을 대상으로 하는 디지털 성범죄에는 활용할 수 없어 향후 보호 대상의 범위를 확대해야 한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청소년성보호법에 명시된 위장 수사는 19세 미만의 아동 및 청소년 대상 성범죄에만 해당되기 때문이다. 지난해 4월 2일(목) 기준 경찰이 확인한 n번방 사건의 피해자 중 연령 미상을 제외한 52명에는 26명의 성인도 포함돼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디지털 성범죄 성인 피해자들의 피해는 위장 수사로 예방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한국여성변호사회 장윤미 공보이사는 “수사를 하다 보면 피해 대상이 미성년과 성인이 혼재돼 있을 텐데 아동 및 청소년에게만 위장 수사를 적용하는 건 문제가 있다”고 밝혔다.

  또한 주민등록법상 가상 인물의 주민등록증은 발급할 수 없어 디지털 성범죄 조직이 주민등록증 인증을 요구하면 위장 수사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에 해당 제도의 실효성에 대해서도 의문이 제기됐다. 주민등록법 제37조에 따르면 거짓이나 그 밖의 부정한 방법으로 다른 사람의 등본을 교부받거나 다른 사람의 주민등록증을 부정하게 사용한 자 등은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따라서 현행법상 위장 수사를 위해 가상 주민등록증 및 운전면허증을 발급받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에 대해 장 공보이사는 “수사용 임시 주민증록번호를 부여한다면 더욱 적극적인 수사가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저작권자 © 숭대시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