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 대학에 성희롱‧성폭력 피해를 예방하고 대응하기 위한 ‘대학 인권센터’가 의무적으로 설치되도록 고등교육법이 개정됐지만, 실질적인 운영 가능성에는 여전히 많은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대학 내 인권센터를 설치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끊임없이 제기돼 왔다. 각 대학에서 인권 침해 사례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지만 이를 해결할 근본적인 대안이 없었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 2015년, B 대학의 교수가 본인이 지도하는 대학원생에게 인분을 먹인 사건이 발생했다. 이에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가 전국 182개 대학 총장에게 인권전담 기구 설치를 권고하며 구조적 해결책을 모색하려 했지만, 상당수의 대학은 인권위의 권고를 수용하지 않았다. 

  결국 최근까지도 인권 침해 사례가 여전히 반복해서 발생하고 있다. 실제로 지난 9월 8일(수)에는 홍익대 A 교수의 성희롱 발언을 계기로 ‘홍익대 미대 인권유린 A 교수 파면을 위한 공동행동’이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피해자 보호조치’를 요구했지만, 홍익대 내 별도의 인권센터가 없어 구체적인 지침에 따른 대응이나 사후 대처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

  이렇게 반복되는 인권 침해를 예방하기 위한 목적으로 고등교육법이 개정돼 내년까지 각 대학은 인권 전담기구를 의무적으로 설치해야 한다. 교육부는 지난 8월 12일(목), 제21차 교육신뢰회복추진단회의(이하 교육회복회의)를 통해 ‘교육 분야 성희롱‧성폭력 근절대책 추진상황’을 점검하며 ‘성비위 대응체계 및 기능’을 강화하도록 지시했다. 이에 따라 대학 구성원의 △인권 보호 △권익 향상 △성희롱‧성폭력 피해 예방 및 대응을 위해 오는 2022년 3월 24일(목)까지 모든 대학이 인권센터를 설치해 운영해야 한다. 이렇게 설치된 대학별 인권센터는 △인권침해 행위에 대한 상담 및 조사 △인권에 대한 교육 및 홍보 △성희롱‧성폭력 피해 예방 및 대응 등의 업무를 처리할 예정이다.

  이러한 고등교육법 개정에 발맞춰 교육부와 인권위는 인권센터의 원활한 운영을 지원하기 위해 준비해 왔다. 지난 4월, 교육부와 인권위는 ‘대학인권센터 설치 법제화, 무엇을 준비해야 하나’라는 주제로 대학인권센터 운영 실태 및 개선방안을 다루는 공동 토론회를 합동개최했다. 해당 토론회에 참가한 인권정책연구소 김은희 상임연구원은 “인권센터 설치‧운영 의무화로 인권 의식 교육 및 홍보를 통해 학내 구성원의 인권 의식 수준을 높일 수 있는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교육회복회의를 통해 2022년까지 인권센터 운영에 필요한 세부적인 기준을 정하는 시행령 개정을 추진하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그러나 이러한 대학별 인권센터의 재정 지원 수준에 따라 실효성 있는 운영이 어려울 것이라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강득구 의원이 국정감사를 위해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해 국립대별로 인권센터에 편성된 예산이 다소 차이 났다. 실제로 전북대 인권센터의 2021학년도 예산은 약 1,300만 원 수준으로 책정됐지만, 서울대 인권센터의 2021학년도 예산은 약 12억 3,500만 원으로 책정됐다. 이에 강 의원은 “충분한 예산을 확보해 대학인권센터의 역할을 강화하여 대학 내에 안정적으로 정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현재 각 대학의 인권센터에 충분한 인력이 배치되지 못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지난달 29일(금) 대학알리미에 발표된 ‘성폭력‧성희롱 상담기구 운영 현황’ 공시자료(이하 공시자료)에 따르면, 올해 전국 대학의 상담기구에 배치된 평균 인력은 2.91명이었다. 지난해 전국 22개 국립대학의 인권센터에서 평균 3.6명의 직원이 근무했던 것과 비교하면, 오히려 전국대학 평균 상담기구의 인력이 더 부족했다. 이에 형사정책연구원은 “교육부나 인권위를 중심으로 정책적 개입보다 담당 기구의 인력과 자원의 역량을 실질화시키는 것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인권센터와 유사한 상담기구가 이미 대학에 설치돼 있었지만, 독립적인 지위를 갖지 못하는 경우도 많았다. 공시자료에 따르면 전국 248개 대학 중 243개(약 98%) 대학에 상담기구가 이미 설치돼 있었지만, 독립적인 지위를 가진 상담기구는 248개 중 92개(약 37.1%)에 불과했다. 더불어민주당 윤영덕 의원은 “인권센터가 간판만 존재하는 형식적 기구로 전락할 우려가 있으므로, 내년 인권센터 의무설치 법안은 단지 첫걸음마를 뗀 것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이에 인권센터를 실질적인 독립기구로 분리시켜 운영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인권센터를 독립된 기구로 편성해 인권 침해 행위에 대한 상담 및 조사 활동에 어떠한 구애도 받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형사정책연구원은 “인권센터가 독립적이지 않고, 학생상담센터를 겸직하는 등의 경우에는 적절하고 효과적인 기능을 하기 어렵다”며 “대학 내 성 평등‧인권 전담기구를 독립적인 총장 직속 기관으로 설치해야 전문성을 갖출 수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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