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고싶었어요] 前 아이라인 텔레콤 경영기획실장 조경업(경영ㆍ2) 군



2006년 3월에 전역한 그는 여느 복학생들과 같은 고민을 했다. 경쟁은 날로 심해지는데 대체 무엇을 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미국으로 가려고 5개월간 알바도 해봤지만 비자문제로 갈 수 없었고 결국, 복학을 앞두고 금융 관련 자격증을 준비했다. 어느 날 문득 TV를 보는데 박진영에 대한 다큐멘터리가 방영되고 있었다. “나는 아직 젊기 때문에 무엇이든지 해낼 수 있다”는 자신보다 12살이나 많은 박진영의 말 한마디가 그의 뇌리를 번뜩이게 했고, 소극적으로 살아가는 듯한 자신을 새롭게 바꿔나가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오래지 않았다. 그 생각을 실천에 옮기게 된 그는 인생에 새로운 전환점을 맞게 됐다.


'나는 아직 젋기 때문에...'

인터넷 전화. 당시만 하더라도 생소했던 이 아이템은 사람들에게 있어, 그저 헤드셋으로 불편하게 이야기를 주고받는 것에 불과했다. 이런 아이템을 가지고 사업에 착수하기란 무리였기에 우선 그는 이와 관련된 회사의 영업 사원으로 일했다. 정직원이 아니었기에 영업코드만 받아 수업시간 외에 나머지 시간을 계약을 위해 무작정 학원과 회사를 뛰어다녔다. 누가 보더라도 그는 대학생 애송이에 불과했고 젊음은 한계로 다가왔다. 보자마자 인상을 찌푸리는 사람부터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는 하지만 결국 ‘죄송해요’란 말로 일축하는 사람, 들어서자마자 나가라며 화를 내는 사람들까지 그는 하루에도 몇 번이고 그만두고 싶었다. 한 건의 계약을 위해 온 종일 돌아다니고 밤 10시 반이 다 돼서야 겨우 29번째 계약에 성공했고, 이 일이 만만치 않음을 깨달았다. 자신이 생각했던 아이템이 분명 가치 있다고 생각했던 그는 군 시절 ‘사업’이라는 막연한 꿈을 나눴던, 서울대 경제학과에 재학 중이던 형과 함께 사업계획서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숭실대 총동문회가 조경엽을 도와줘야 할 이유?

경엽군은 사업계획서를 들고 동문회를 찾아갔다. ‘숭실대총동문회가 조경엽을 도와줘야 할 이유’라는 당돌한 계획안을 가지고 총동문회실의 문을 두드렸다. 총동문회 이승환 사무국장은 그의 모습을 보고 두툼한 ‘총동문회 동문명부’를 건넸다. 그는 곧바로 선배들을 찾아 나섰고, 총동문회의 도움으로 여러 선배님들을 만나게 됐다. 그의 인생에 가장 큰 전환점을 가져다 준 신동진(경영?00)동문을 만난 것도 그 때였다. 초등학교 중퇴라는 남다른 사연이 있었지만 24살, 처음 검정고시를 치르고 곧바로 연세대에 붙을 정도로 각고의 노력을 한 신동진 회장의 이력은 상당했다. 전액 등록금을 받고 우리학교 전체수석으로 들어와 3학년 재학 중 회계사에 합격했다. 현재도 회계?세무법인과 함께 기업 상장을 통한 수익금으로 중소기업까지 이끌고 있는 회장님은 경엽군을 만나길 원했고, 그는 회장님 앞에서 사업계획서를 발표했다.

그는 그동안의 경험을 토대로 새로운 시장에 대한 도전장을 신 동문 앞에서 선보였다. 인터넷전화의 한계였던 인프라 구축과 음성데이터 전송 방식이 인터넷 핵심 기술의 성장으로 한결 좋아진 것이 기회였다. 인터넷 전화가 충분히 승산 있는 사업임을 어필하는데 성공한 그는 2007년 자본금 30억으로 꾸려진 회사(www.i-line.kr)의 기획경영실장을 맡게 됐다. 함께 사업계획을 준비한 형은 서울 본사에서 자신은 대전 지사에서 그 역량을 인정받아 한 기업의 핵심을 이끌게 된 것이다. 사업가가 꿈이었던 경업씨에게 하루하루는 정말 꿈만 같았다.

혹독한 대가를 지불하고 얻은 결실

어린 나이에 한 기업의 기획경영실장이라는 직책을 얻은것도 매력적이었지만 일하면서 뼈저리게 느꼈던 건 ‘책임감’이었다. ‘책임감’을 배우는 데 따른 혹독한 대가들이 줄을 이었다. 새벽 5시에 출근해서 그 다음날 새벽에 퇴근하는 날이 비일비재했고, 자신보다 나이 많은 분들과 업무를 보는 것 또한 만만치 않았다. 처음부터 관리직을 맡게된 그는 실무경험이 부족했기 때문에 업무의 사이클을 철저히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업무는 철저히 하되, 평소 동료들에게는 예의를 지켰다. 또 업무 외적인 회식자리에서는 인생 선배들에게 많은 조언을 얻으며 친분을 쌓았다.

회장님이 찾아오는 날이면 그는 긴장감에 사로잡혔다. 중요한 결정을 앞두고 직원들 앞에서 최고경영자에게 30분 이상 씩 혼을 들을 땐 서운함도 느꼈다. 뭔가 핵심 기술이 부족한 것을 알아도 기술 쪽은 도통 알지 못해,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없는 것도 답답했다. 성과를 보여야 하는 게 당연했지만 그렇지 않은 날이 더 많아 자신을 옥죄어 오기도 했다.

회사를 그만두고 복학하여 이제 막 중간고사를 치렀을 그에게 친구들은 “무엇을 배웠냐”고 종종 묻는다고 했다. 그는 주저 않고 “이제 뭘 해야 하는지 알 것 같다”고 말한다. 그는 한 회사의 기획, 경영, 재무, 회계, 인사, 영업, 기술관리 등 기업과 관련된 수많은 일들을 경험 했다. 기업을 운영하면서 수많은 난관에 봉착했고, 그럴 때마다 자신이 무엇이 부족하고 필요한지 하나하나 알게 됐다. 결국 회사를 박차고 나온 그는 스스로에게 ‘열정’은 많았지만 ‘핵심역량’이 없다고 말했다. 자신을 믿어주셨던 신 동문 역시 회사를 나간다고 할 때 “다시 좋은 모습으로 만나자”며 말없이 보내주셨단다.


‘변화’가 생기면 ‘기회’가 온다.

그에게는 지금까지의 경험이 ‘변화’이자 ‘기회’였다. 다시 공부를 하게 된 것도 ‘변화’이자 세무사가 되기 위한 ‘기회’라고 생각한다. 지금도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여의도 본사에서의 생활과, 건물 한쪽이 통유리로 돼 업무를 마치고 야경을 바라봤던 대전 지사에서의 생활을 잊지 못한다. 하루의 에너지를 쏟아내고 야경을 바라볼 때 그는 다시 시작할 수 있는 힘을 얻었다. 자신이 원하던 일을 했고, 그렇기에 힘들어도 지칠 줄 몰랐다.

우리들 중 대부분은 지금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른다. 그것을 아는 것만으로도 어쩌면 대학생활은 성공한 셈이다. 그는 ‘사업가’라는 막연한 꿈 안에 지극히 현실적인 대안들을 만들어 놓고 있다. 더 높은 역량과 기회를 위해 세무사를 준비하는 것도 지금 ‘무엇을 해야 할지’ 알기 때문이다. 그는 우리들에게 ‘열정’을 가지라고 말한다. 젊으니까 다 할 수 있다는 막연한 ‘열정’이 아니라 노력 끝에 비로소 빛날 수 있는 ‘열정’을 가지라는 것이다. 그는 앞으로도 빛나는 ‘열정’을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그의 노력이 또 다른 결실을 맺어 그 역시 다른 후배들의 멋진 동문이 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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