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하지만 꾸준한 자세로 자신만의 소설 세계(이를테면 모호한 시공간의 설득력 있는 배치, 미스테리적 구성을 통한 불가해한 진실의 탐구, 관계의 결락을 통한 인간 심연의 환기)를 구축해 온 손보미 작가가 이번에도 문제작을 세상에 내놓았습니다. 열 살이 갓 넘은 여자아이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불장난」(『창작과비평』, 2021년 가을호)이 바로 그것입니다. 여기 한 여자아이(少女)가 있습니다. 어리다는 것은 찬란한 미래의 가능성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날카로운 세상에 언제든지 베어질 수 있다는 아픔의 가능성을 의미하기도 하지요. 이 아이는 부모의 이혼과 재혼, 이사, 전학 등의 일을 겪으며, 혼란스러움과 고립감 나아가 수치심까지 느끼게 되는데요. 주인공이 자라면서 겪는 이런 일들은 통칭하여 ‘상처’라고 부를 수 있으며, 그 상처의 극복을 가리켜 우리는 ‘성장’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내’가 날카롭게 반응하는 것은, 주변의 인간들이 온통 모순투성이라는 점입니다. 담배 피우는 장면은 쳐다보지도 못하게 눈가리개를 해주던 아버지는 부주의하게도 라이터를 소파 밑에 그냥 놔둡니다. ‘그녀’(새어머니)는 “남자들이란 항상 골칫거리지”라고 말하지만, 그녀는 자신보다 열두 살이나 많은 ‘남자’, 그것도 자신이 근무하는 학교에 다니는 아홉 살짜리 학생의 아버지와 열렬한 사랑에 빠져 결혼을 한 사람입니다. ‘나’의 어머니도 주인공에게 “무슨 일이 있어도 나는 영원히 너의 엄마야”라고 말하고는 했지만, 주인공이 원하는 책 하나 제대로 사주지 않았으며 나중에는 연락을 끊어버리다시피 합니다. 

  아이인 ‘내’가 주위를 가득 채운 이 모순덩어리들에 대응하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내’가 생각해 낸 것은 아파트 옥상에 올라가 불장난을 하는 것입니다. 그 불장난의 계기가 아버지의 모순을 상징하는 라이터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은, ‘내’가 태우는 것이 단순한 종이가 아니라 자신을 그토록 힘들게 한 혼란스러움과 수치심과 굴욕감임을 증명합니다. 그러나 불장난은 어디까지나 ‘놀이’나 ‘작란(作亂)’은 될지언정 지속되는 삶의 방식일 수는 없겠지요. 어쩌면 주변 사람들의 모순을 견디지 못하고 아파트 옥상에 올라가 소각로까지 만들어 종이를 태우는 것이야말로, ‘나’의 순수와 미숙을 증명한다고 볼 수는 없을까요? 욕망에 따라 하루에도 몇 번씩 옷을 갈아입는 인간이 어떻게 일관된 모습만을 매 순간 유지할 수 있을까요? 실수로라도 바닥에 라이터를 두지 않으며, 일관되게 ‘남자들이란 항상 골칫거리지’라는 생각에 따라 살아가는 존재가 있다면, 아마도 그것은 성자(聖者)나 괴물은 될 수 있을지언정 인간은 아닐 것입니다. 그렇기에 인간에게 가능한 성장이란 모순투성이인 주위의 인간들을 극복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어느 정도는 모순투성이인 그 인간들을 받아들이게 되는 것은 아닐까요? 

  ‘내’가 중학교 2학년이 되었을 때 하나의 계기가 찾아옵니다. ‘나’는 자신이 했던 불장난을 제재로 글을 쓰게 된 것입니다. 이 글을 쓰면서 ‘나’는 자신이 그토록 경멸하고 싫어했던 모순에 두 번이나 빠집니다. 첫 번째는 실제로 있지도 않았던 경비 아저씨를 등장시켜 “진실과 거짓이 교묘하게 섞인” 글을 쓴 것입니다. 두 번째는 아이들 앞에서 자신의 글을 낭독하게 되었을 때, 쓰여진 원고와는 다르게 글을 읽은 것입니다. 이 순간 ‘나’는 “세상의 비밀 하나”를 알게 되었다고 느낍니다. 그 비밀이란 모순 없는 삶이란 불가능하며, “때때로 삶에서 가장 큰 용기를 필요로 하는 건, 바로 그런 착각과 기만, 허상에 기꺼이 내 몸을 내주는 일”이라는 깨달음일 것입니다. 이제 ‘나’는 아버지와 ‘그녀’와 그리고 어머니를 다르게 바라보지 않을까요? 그것은 라이터를 방바닥에 놔둔 아버지의 부주의함을 생각하는 것과 더불어 담배 피우는 장면을 손으로 가려준 아버지의 섬세함을 기억하는 것이고, 방학이 되어도 어머니에게 가지 않은 것에 짜증을 낸 ‘그녀’를 기억하기 이전에 늘 자신을 ‘우리 딸’이라고 정겹게 불러주던 ‘그녀’를 기억하는 일일 것입니다.    

  이러한 ‘나’의 변화는 모순덩어리인 세상과의 타협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이 모순덩어리라는 근원적인 조건 위에서만 이 세상이 성립한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그것은 분명 하나의 성장일 수도 있습니다. 그 타협과 성장을 통해서 ‘나’는 더 넓은 세계로 나아갈 것이고, ‘나’는 이제 교실에서 자신이 쓴 글을 낭독하는 수준에서 벗어나 세상 사람들을 향해 자신의 글을 발표할 수 있을 것입니다. 드디어 주인공은 학교를 떠나야 할 시간을 맞이한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불장난을 하며 수치심과 굴욕감, 이물스러움과 꼴사나운 천진함을 견뎠던 ‘나’에게 축복이 가득하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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