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질병 등을 앓고 있는 가족을 돌보는 청소년이나 청년을 일컫는 가족 돌봄 청년, 이른바 ‘영 케어러’(young carer)에 대한 국가 차원의 첫 실태조사가 실시된다. 이를 통해 정부는 영 케어러들을 기존 복지제도와 연계해 지원하고, 장기적으로는 △지자체 △병원 △학교를 연계해 공적 안전망을 구축할 계획이다.

  지난달 13일(일) 열린 제6차 청년정책조정위원회에서 보건복지부는 ‘가족 돌봄 청년 지원 대책 수립 방안’을 발표했다. 우선 이달부터 청소년과 34세 미만의 청년을 대상으로 전국적인 실태조사를 진행한다. 19세 미만 중·고등학생과 학교 밖 청소년에 대해서는 ‘중·고등학교 현황 조사’와 ‘학교 밖 청소년 지원센터 등 통한 현황 조사’를, 19세 이상 청년은 ‘대학 설문 조사’ 및 ‘청년센터 등 통한 현황 조사’를 진행한다.

  조사를 통해 파악된 영 케어러들을 위해 정부는 △돌봄 △생계 △의료 △학습 지원 등 기존 제도에 연계해 5월부터 즉각 지원할 전망이다. 기존 제도에는 △노인장기요양보험 △가사간병 방문 지원사업 △긴급 돌봄 △기초생활보장제도 생계급여 △긴급복지 지원제도 △의료급여 △재난적 의료비 △교육급여 △대학생 튜터링 사업 △학교 밖 청소년 검정고시 지원·직업체험 프로그램 등이 있다. 또한, 정부는 △지자체 △병원 △학교로 이어지는 공적 안전망도 구축할 예정이다. 병원은 의료사회복지사, 학교는 교육복지사 및 교육복지 담당자를 통해 돌봄 및 복지·정서 지원 서비스를 제공한다. 지자체는 각종 서비스를 연계하는 ‘원스톱 서비스’ 체계를 제공한다.

  정부가 영 케어러 지원 사업에 본격적으로 나서게 된 이유는 영 케어러의 복지 사 각지대가 조명됐기 때문이다. 지난해 5월, 대구에서 20대 아들 A 씨가 팔과 다리의 마비로 거동하지 못하는 아버지를 방치해 죽음에 이르게 한 ‘간병 살인’ 사건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A 씨의 아버지가 뇌 질환으로 투병하기 시작하자 간병과 경제 사정으로 고통받던 A 씨가 아버지를 방치한 것이다. A 씨는 검찰 수사 과정에서 “혼자서는 아버지의 병간호를 담당할 능력이 되지 않았고 경제적 이유로 심적으로 많이 힘들었다”고 진술했다. 이후 A 씨는 1심과 2심 재판에서 징역 4년을 선고받았다.

  이후 영 케어러를 향한 국민적 관심과 사회적 요구가 커졌으나, 여전히 우리나라에는 가족 돌봄 청년에 대한 지원이 없는 실정이다. 반면, 영국과 호주 등 선진국에서는 이미 영 케어러들에게 각종 복지를 제공해오고 있다. 영국은 영 케어러 전담 상담센터를 운용하며 연간 300파운드의 지원금을 지원하고 있으며, 호주는 가족 돌봄 청년에게 연간 3,000 호주 달러 상당의 학비보조금이 지원한다.

  영 케어러의 가장 큰 어려움은 부양 부담 때문에 자신의 삶을 영위하지 못하는 것이다. 진로 이행과 가족 돌봄을 병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한창 진학 이나 취업, 결혼을 준비해야 할 때 가족의 부양을 맡게 되면 자신의 미래를 제대로 준비할 수 없다고 설명한다. 이러한 돌봄이 지속하면 사회적인 고립은 물론 노년기에 절대 빈곤층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커지고, 이는 곧 사회적 문제인 빈부격차로 굳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한림대 석재은 교수는 “본인의 경제생활 대신 부양을 하다가 본인의 노후준비를 하지 못해 빈곤한 상태로 전락하는 걸 막아줘야 한다”고 밝혔다. 또한, 보건복지부 청년정책팀 이수완 팀장은 “아직 자립도 못한 청년들이 가족의 돌봄과 본인의 미래를 맞바꾸면서 생애 전반이 빈곤의 악순환으로 이어지는 문제가 생긴다”고 설명했다.

  이에 청년 간병인에 대한 제도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대구대 박영준 교수는 “정부가 단기 정책적으로라도 대책을 마련한 것을 반가운 일이지만, 청년의 돌봄·간병 문제 등을 궁극적으로 해소할 수 있도록 의료복지체제의 공공성 을 강화할 수 있을 만한 제도권의 역할까지도 필요하다”며 제도적 지원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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