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경세상만사 <10>



서정주 시인은 ‘나를 키운 건 팔할이 바람이라’ 했지만, 내 경우는 ‘나를 키운 건 팔할이 먹을 것’이었다. 21년동안 그렇게 ‘처묵처묵’해왔으면 이젠 먹는 데서는 재빠르게 결정을 내릴 법도 한데, 아직까지도 뭘 먹을지 선택하는 것은 너무 어려운 일이다. 신문사에서 마감할 때도 마찬가지다. 기사작성만큼이나 머리를 아프게 하는 것이 식사를 어떻게 할지 결정하는 일이다. 1학년때야 멋모르고 ‘가게는 많고 시킬 음식은 많다’ 생각했지만 학년이 올라갈수록 선택은 좁아진다. 꼭 신문사만의 일도 아니다. 신입생 때는 상도동이 좁다 하고 학교 근처를 돌아다니며 맛있는 집을 찾았지만, 학년이 올라갈 수록 ‘내 갈곳은 학식뿐’이다. 먹을 것은 많지만 막상 먹으려고 하면 고르기가 참 어려우니 이것도 참 딜레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음식만화 얘기를 해 볼까 한다. 그간 ‘식객’ 열풍이 하도 거세게 부는 바람에 얘기를 꺼내기가 어려웠다. 대표적인 음식만화로는 일본만화밖에 생각나지 않던 상황에 한국 만화계에서도 오랜 내공을 자랑하는 허영만 화백이 탄탄한 스토리를 기반으로 그린 만화니 어찌 반갑지 않았을까.

영화고 드라마고 모두 식객을 다루는 와중에 여기서까지 다루면 진부할까 걱정됐는데, 드라마가 종영된 김에 한 번 눈 딱감고 써 보기로 했다.

사실 ‘식객’이 처음 나올 때는 걱정이 반, 기대가 반이었다. 음식 소재를 다룬 ‘우리’ 만화가 나온다는 것에 기대했고, ‘음식을 통해 인간의 삶을 말한다’라는 슬로건이 이미 일본의 장수만화인 ‘맛의 달인’에서도 다뤄졌다는 것 때문에 걱정했다. 그런 걱정을 한 사람이 나 외에도 많았는지 연재 초반엔 이곳저곳에서 식객과 맛의 달인을 비교하는 글이 올라왔었다. 특히 맛의 달인은 대부분의 내용이 음식에 있어 환경 및 신토불이를 크게 강조하고 있는 만큼 쌀이나 과일, 고기에 이르기까지 수입개방에 대한 내용을 여러 차례 다뤘다.

식객 역시 1화에서 쌀 개방과 관련된 내용을 다뤘으니 그 논란은 더 크게 불거질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내용이 진행될수록 그 논란은 수그러들었다. 어디에 초점을 맞추냐의 문제였다. 맛의 달인에 비해 식객은 ‘인간’에 대해 보다 깊게 성찰한다. 맛의 달인에서 거슬리는 점이 있다면 가벼움이었다. 맛의 달인은 다분히 주인공의 ‘가르침’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는 감이 없지 않다. 반면 식객은 끊임없이 주인공을 매개로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아낸다. 따뜻한 시선과 노화백 특유의 인생이 느껴지는 이야기들은 식객이 끊임없이 영화ㆍ드라마화되고 베스트셀러 순위에 오르게 된 이유를 담담하게 보여준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미 다들 읽었을 상황에서 말하기는 쑥스럽지만, 조심스레 말한다. 아직까지도 읽지 않았다면 꼭, 꼭 읽으시라고. 절대 후회하지 않으실거라고.

 

저작권자 © 숭대시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