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맥을 만드는 것보다 신뢰를 쌓는 게 중요해"
"인맥을 만드는 것보다 신뢰를 쌓는 게 중요해"
  • 김보미 (06) 기자
  • 승인 2008.11.19 00:49
  • 호수 98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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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스포츠 대표이사 이영배(영문ㆍ59)동문



대표적인 거래처는 일본 미즈노(MIZUNO), 연간 소득은 1천만 불인 동성스포츠의 대표이사 이영배(영문?59)동문은 신용을 목숨처럼 여긴다. 자신이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 20년 넘게 큰 문제없이 회사를 이끌어 올 수 있었던 원동력이 바로 ‘신용’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조용한 성품을 지닌 그는 왁자지껄 시끄럽게 사람을 사귀지 않는다. 다만 꾸준하게, 오래 갈 뿐이다. 자신이 가진 것은 신용과 인간관계밖에 없지만 세상 그 무엇보다 가장 큰 자산이라 말하는 이 동문을 만나보았다.

 



처음부터 무역업을 시작하진 않으셨을 것 같은데요.

물론이다. 처음 입사한 곳은 현대교역상사였다. 국제담당 부장을 거쳐 해외지점장으로 뉴저지에서 근무하게 됐다. 그 노하우를 바탕으로 차린 회사가 바로 이 곳이다. 종합상사 해외업무로 신용을 쌓아오면서 나만의 인맥도 생겼다. 다들 날 도와주겠다고 하더라. 사람 하나 믿고 이 일을 시작했다.

회사를 운영하면서 큰 위기는 없으셨습니까.

그동안 큰 탈 없이 회사가 잘 커왔다고 생각한다. 내가 기억하는 어려운 순간은 회사 설립 초기 자본문제와 교포의 신용문제였다. 자본문제는 해외 바이어들이 지원해주는 덕택에 무사히 넘길 수 있었고 그 후로도 별로 문제 없었다.

교포들은 종종 아무 말도 없이 결제를 하지 않곤 한다. 한마디로 돈을 떼어먹는 것인데, 어찌할 도리가 없다. 정말 속상한 것이 오히려 교포들이 한국인에게 대금결제를 잘 안하는 편이다. 서로 도와야 하는데, 같은 한국인에게 더 약속을 안 지키고 야박하다. 정말 많이 속상했다. 하도 약속을 안지켜 이젠 거래하지 않는다.

바이어들을 관리하는 노하우가 따로 있으신지요.

무역업은 바이어를 개척하고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제 통신으로 연락하는 시대는 지났다. 1년에 5~6번씩은 미국을 방문한다. 현지방문을 통해 애로사항을 들어주기도 하고 상담도 한다. 직접 가서 만나 얘기를 나누면 제품에 대한 여러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그것이 좋은 점이든 나쁜 점이든 상관없다. 또 본인 업무에 관한 얘기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앞으로 우리 회사의 앞일을 계획하는 기회도 생긴다.

나만의 노하우라고 한다면 바로 바이어의 가족과도 친해지는 것이다. 그러면 관계가 더 끈끈해질 수 밖에 없다. 새로운 판매자가 나타나더라도 이왕이면 가족과도 친한 사람과 거래하는 것이 더 좋기 때문에, 웬만해선 거래가 잘 끊기지 않는다.

중국에 공장이 있어서 종종 바이어들이 중국제라고 품질을 의심하곤 한다. 이제는 해외에서 주문 요청이 들어오면 품질관리에 대해 브리핑을 한다. 우리의 품질관리계획을 보고 처음엔 깜짝 놀라고, 다음엔 더 이상 품질을 의심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우리는 스포츠 의류 주문을 받으면 주의할 점이나 구매자 측의 요청사항을 공장에 크게 걸어놓고 어디서든 볼 수 있게 한다. 계속해서 숙지시키는 것이다.


사람과 관계를 맺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 않습니까.

지금도 전화하기만 하면 10만 불을 송금해줄 지인이 있다. 신용이라는 것이 결국 내가 한 만큼 돌아오는 것이다. 그걸 인생의 모토로 삼고 살아 왔는데, 사실 사람을 대하다 보면 상대가 실망할까봐 겁이 날 때도 있다. 그래도 그런 강박관념에 갇히지 않은 채 상대방을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성경에 ‘원수를 사랑하라’, ‘한 뺨을 맞으면 다른 뺨도 내놓아라’란 구절이 있다. 사이가 안 좋더라도 계속 참고, 설득하고 얘기를 나누는 편이라 웬수질 만큼 사이가 안 좋은 사람도 없고, 모두와 잘 지낸다. 나 역시 욱할 때도 있고, 좋지 않은 말을 하게 될 때도 있다. 그래도 바로바로 풀려고 하는 것은 돌이켜 보면 괜한 일일 때가 많아서다. 사람은 정말 작은 것에 싸우곤 하지 않는가.

학창시절 기억나는 은사님이 있으신가요.

지금도 그렇겠지만 그 때는 교수진이 정말 훌륭했다. 김주연 교수님이 특히 생각난다. 아직도 종종 만나봬 식사를 하곤 한다. 지금은 은퇴하셨지만 셰익스피어의 권위자로서 영국 황실에서도 인정받은 분이셨다. 워낙에 출중하신 분이라 나는 그분을 천재로 기억하고 있다. 그 땐 교수님도 너무 좋으셨고 외국인 선교사도 와 있었으니, 어학을 하려고만 드면 정말 좋았을 상황이었다. 사회에 나와보니 그 때 더 열심히 해두지 않은 것이 후회가 된다.

원어연극반을 처음 시작했다고 들었습니다.

지금은 원어연극반이라고 부르던데 영문학회 학회장을 맡고 나서 영어연극반이란 것을 처음으로 모집했다. 나는 직접 무대에 서지 않고 연극할 사람들을 모집하고 관리했다. 영문과 자체로 운영하는 것이어서 따로 할당된 재정이 없었다. 학회장으로서 내가 더 많이 부담하기도 했지만 모두들 어려울 때라 굶어가면서 힘들게 준비했다. 당시엔 강당도 없어서 숭의여고에서 연습하기도 했다. 어디든 연습할 곳만 생기면 찾아다녔다. 비록 첫 회는 군대가느라 보지 못했지만, 그 후에 여러 번 보러 갔다. 무엇보다 가장 좋은 것은 전 학년을 망라해 한 팀을 이루다 보니 선후배간 연이 끈끈해지고 사회에 나가서도 연결고리가 돼주는 것이다. 영문과 학생들에겐 정말 강력히 추천한다.

후배들에게 한말씀 해주신다면요.

다양한 분야로 학생들이 진출해주길 바란다. 수출업계에서 활동하고 있는 숭실인이 별로 없는 것 같다. 우리학교가 기독교학교이지만 너무 교회 쪽으로만 인력을 양성할 것이 아니다. 글로벌 숭실에 걸맞게 세계로 뻗어나갈 인재를 키울 때다. 여러 분야에서 활동한다고 우리학교의 정체성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이제 영어는 이제 필수이자 기본이다. 물론 지금 학생들이 취업을 위해서든 아니든 영어 공부에 매진하고 있는 것은 안다. 기본적으로는 영어에 충실하고, 영어가 아니라도 좋으니 어학을 익혀야 한다. 중국에 공장이 있어 종종 방문하곤 하는데, 중국사람을 보니 한국말을 정말 잘하더라. 우리나라가 작지만 경제수준이 좋으니 한국어를 배운 것이다. 자기 전공은 전공대로 어학은 어학대로 해야 할 시대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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