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목 감독

  혼자서도 잘할 수 있다는 85세 정말임 여사(김영옥)의 삶은 순탄했다. 계단에서 발을 헛디디기 전까지는 말이다. 골절상과 더불어 섬망 증세를 보이기 시작하는 말임 여사의 삶은 그때부터 피곤해지기 시작한다. 꼬장꼬장한 성격 탓에 혼자가 더 편했던 말임 여사에게 자식들의 걱정과 요양 보호사의 돌봄이 따라 붙었기 때문이다. 물론 자신을 돌볼 틈 없이 살아온 말임 여사에게 누군가의 케어가, 거기다 아들의 피 같은 돈이 들어간다는 사실이 흔쾌히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통장도 없어지는 것 같고, 음식도 사라지는 것만 같다. 요양 보호사 미선(박성연)의 모든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여전히 혼자서도 잘할 수 있을 것만 같다. 영화 <말임씨를 부탁해>는 21세기형 유사 가족과 오늘날 우리가 받아들일 수 있는 가족의 범위는 과연 어디까지일지 생각해볼 수 있는 영화다. 어머니가 아파도 그런 어머니 곁에 있어 줄 수 없는 아들과, 아픈 어머니를 병원에 모시기 위해 정작 어머니 곁이 아닌 말임을 돌보는 요양 보호사 미선의 위치는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가족 같은 남, 남 같은 가족이라는 영화의 문구처럼 필요할 때 곁에 있어줄 수 없는 가족과 피는 섞이지 않았지만 가족보다 더 가까운 남을 어떻게 정의내릴 수 있을 것인가는 오늘 날 생각해볼 만한 난제이다. 처음에는 미선을 밀어내던 말임 여사도 미선과 미운 정 고운 정이 다 들어버리며 진짜 가족만큼이나 더 가까운 사이로 발전한다. 아이를 낳아 가정을 꾸리고 있는 말임의 아들 종욱도 홈 카메라로 어머니를 돌보려고 하지만 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다. 이렇듯 영화는 21세기 고령화 사회의 국면에 맞추어 전통적인 혈연 관계에서 벗어나 가족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볼 수 있게 해준다. 이 과정에서 노인을 대상으로 하는 의료기기 다단계나 보험금 등 현실적인 노인 문제들이 영화 곳곳에 등장한다. 동시에 대놓고 표현하지는 못하지만 자식을 사랑하는 말임 여사의 따뜻한 마음이 영화에 담겨 있기 때문에 영화는 현실의 씁쓸함보다는 따뜻함을 느낄 수 있도록 만들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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