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파산, 빚인가 빛이 될 것인가
최근 몇 년 사이 20대 청년들의 개인파산 및 회생 신청이 급증하고 있다. △학자금 대출 △불안정한 노동시장 △급등한 주거비 등으로 인해 갚을 수 없는 빚의 무게를 짊어진 청년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파산은 더 이상 패배의 낙인이 아닌 재기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로 바라봐야 한다. 본지는 서울회생법원 파산관재인 겸직 임윤석 변호사와 한국도산법학회의 등기이사인 고영미 교수를 만나 청년 파산의 현실과 그 이면에 숨은 사회 구조적 문제를 짚어봤다.
개인파산, 빚을 정리하고 다시 서기 위한 제도
개인파산은 빚을 스스로 갚기 어려운 상황에 놓인 개인이 법원에 도움을 요청해 채무를 면책¹) 받는 제도다. 개인이 사업을 하다가 실패했거나, 일상적인 소비와 생활비 때문에 빚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불어난 경우 스스로 법원에 파산 신청을 할 수 있다.
파산 제도는 빚을 모두 갚기 어려운 상태에 놓인 개인이라면 누구나 신청할 수 있다. 신용불량자가 아니더라도 채무자는 △진술서 △호적등본 △주민등록등본 등 필요한 서류를 준비해 자신의 거주지를 담당하는 법원에 제출하면 파산 심사가 시작된다.
파산 선고 뒤에 따라오는 제약들
다만 파산 선고를 받으면 일정한 제약이 따르게 된다. 법적으로는 ‘채무 정리를 돕는 제도’지만, 현실에서는 눈에 보이지 않는 불이익이 뒤따른다. 먼저 공법상 제한이 있다. 파산자는 일정 기간 동안 후견인 및 공무원 등 공적 지위를 맡을 수 없다. 또한 사기업 취업에서도 제약이 있다. 상법이나 회사 규정 등에 따라 파산 선고가 퇴직 사유로 적용될 수 있다. 사회적 낙인 문제 또한 존재한다. 파산을 신청했지만 면책을 받지 못한 경우 신원조회에서 파산 사실이 확인돼 취업 및 사회 활동에 제약을 받을 수 있다.
파산, 청년의 현실이 돼 버리다
지난 7월 대법원의 ‘개인파산 신청 현황’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개인파산 신청 건수는 3만 3,993건으로 전년 대비 1,074건 감소했다. 그러나 20대 청년층에 한해서는 신청 건수가 지난 2023년에 비해 17건 증가했다. 본교 국제법무학과 고영미 교수는 “학계와 실제 법률 현장 데이터를 보면 20대 청년층의 개인회생 및 파산 신청이 증가하는 현상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파산 통계의 허점 – 지방 청년은 어디로?
현재 전국적으로 △파산 원인 △채무액 △주거 형태 등 구체적인 파산 통계가 존재하는 지역은 제한적이다. 이는 전국 회생법원²)이 △서울회생법원 △수원회생법원 △부산회생법원만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 외 지역은 지방법원이 담당하지만, 사건 처리 속도나 조사 범위 등에서 차이가 크다. 오는 2026년도에 광주와 대전시에 회생법원 설립이 추진되고 있지만, 전체 파산 건수에 비해 회생법원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이다. 이로 인해 지방 청년층의 파산 실태는 파산 통계에 정확히 반영되지 못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회생법원의 존재 유무에 따라 파산 신청자에 대한 조사 절차와 심사 강도가 달라진다. 법률사무소 푸른동행 임윤석 변호사는 “회생법원과 일반법원은 조사 과정에서 차이를 보이며 회생법원에 비해 일반법원은 청년층의 파산을 비교적 더 엄격하게 조사한다”고 설명했다. 회생법원은 채무자의 개인 재산을 중심으로 조사하는 반면, 지방법원은 가족 재산까지 포함해 범위를 확장한다.
이처럼 회생법원이 일부 지역에만 집중된 현실은 법이 전국적으로 균등하게 작동하는 데 장애가 된다. 고 교수는 “채무자회생법 시행이 20년이 지났지만, 지방 청년들의 구체적인 어려움을 반영하지 못했다”며 “제도적 해결책 보편화를 위해 지방 청년들이 겪는 △고용 불안정 △주거 비용 △대출 부담을 반영해야 한다”고 전했다.
회생 절차 반복하는 청년들, 금융 관리 부재가 원인
반복되는 회생, 회생 중독의 그림자
회생 및 파산 업계 실무자들 사이에서는 ‘회생 중독’이라는 용어가 존재한다. 회생 중독은 알코올·마약 중독처럼 개인회생으로 인한 면책 결정을 받은 뒤 7년이 지난 후 다시 개인 파산이나 회생을 신청하는 경우를 말한다. 임 변호사는 이러한 악순환의 원인으로 개인의 금융 관리 능력을 지목했다. 임 변호사는 “학교에서 전공을 공부하듯 청년 파산자들이 돈을 관리하는 법에 대해 배울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개인의 재정 관리가 파산을 막는 핵심이라고 강조한다. 임 변호사는 “재산을 운용할 때 시세 차익만 좇으면 안 된다”며 “돈을 인격처럼 대하고 장기적인 금융 운영에 집중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또한 가정환경 역시 개인의 재산 관리 습관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가족의 소비 습관을 점검하는 것도 중요하다. 임 변호사는 “파산관재인 및 파산 전문 변호사를 하며 파산자들을 관찰한 결과 재산 관리 습관이 가정환경을 통해 다음 세대 간에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며 “부모와의 재산 관리에 관한 경험을 공유하며 소비 습관을 점검해야 한다”고 전했다.
생활비와 돌려막기, 사회가 만든 생존형 파산
청년층 파산은 사회 구조의 불안정성이 낳은 결과지만, 전문가들은 한국의 제도가 이러한 현실을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고 말한다. 즉 청년층 파산 증가 현상을 개인의 실패로 봐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청년층 파산에는 △급등한 생활비 △부채 돌려막기 △불안정한 노동시장 등이 영향을 미친다. 서울시 복지재단의 조사에 따르면 개인회생을 신청한 29세 이하 청년 중 70%가 최초 채무 사유로 생활비 부족을 꼽았다. 또한 응답자 중 84%가 빚을 갚기 위해 또 다른 대출을 받는 부채 돌려막기를 경험했다.
서울금융복지상담센터 조사에 따르면 개인회생을 신청한 청년 10명 중 7명은 생활비 부담으로 빚을 지기 시작했다. 뒤를 이어 △주거비: 29% △과소비: 27% △가족 지원: 17% △사기 피해: 15%가 차지했다.
임 변호사는 청년층 파산 문제 심화의 원인으로 실무자의 태도를 지적했다. 법률 자체는 모든 파산자에게 똑같이 적용되지만, 법원 실무자는 파산자들을 일관된 시각으로 대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동일한 파산 신청자라 하더라도 20대와 80대 파산자에 대해 처우가 다르게 나타나는 경우가 있다. 임 변호사는 “과거의 엄격했던 파산 절차에 비하면 현재는 많이 완화된 상태”지만, “회생법원이 없는 지역에서 법원은 실무자의 파산자에 대한 대우를 다르게 절차를 진행한다”고 밝혔다.
이어 고 교수는 현행법이 경제적 현실을 탄력적으로 반영하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고 교수는 “청년층의 구조적 부채와 사회초년생의 낮은 소득과 불안정한 고용을 고려한 특례 조항이 학문·정책적으로 논의돼야 할 문제”라고 전했다.
따라서 전문가들은 청년층의 개인 파산 문제를 청년들의 도덕적 해이로만 바라봐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청년층의 부채는 과거의 소비 중심 채무와 달리 생존형 부채의 증가로 인한 것이기 때문에 채무의 내용 항목을 고려해야 한다. 고 교수는 “주거비 및 교육비 등 생존의 필수적인 부채에 대해서는 변제액을 산정할 때 △회생법원 △개인회생위원 △도산 전문 변호사 △법 전문가들의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청년 파산, 비난이 아닌 회복의 관점으로
‘빚을 탕감받는 제도’는 결코 면피가 아니다. 오히려 자본주의 사회에서 필연적으로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설계된 ‘두 번째 기회’다. 청년들에게 필요한 것은 비난이 아니라 배우고 회복할 수 있는 환경이다. 빚으로부터 시작된 절망이 다시 빛으로 이어질 수 있을까. 그 해답은 제도와 사회 모두의 손에 달려 있다.
1) 면책: 책임이나 책망을 면함
2) 회생법원: 개인회생 및 법인회생 파산 절차를 전문적으로 처리하는 법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