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국제영화제의 프로그래머로서 4년째 작업에 임하고 계신데, 프로그래머란 어떤 직업인지 소개 부탁드린다.
  가장 기본은 영화제에 상영될 영화를 고르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영화제의 최종 결정권자 중 하나이며, 영화제 현장에 직접적으로 관여하기도 한다. 많은 영화를 보고 골라내야 하므로 혼자서 하는 업무량이 만만치 않은 편이다.

  영화제 상영작을 선정하는 과정이 궁금하다.
  영화는 공모해서 받는 작품들도 있고, 직접 찾아 나서는 작품들도 있다. 판매사에서 영화제 측으로 영화를 보내기도 하고, 영화제에서 먼저 요청하기도 한다. 전주국제영화제에서는 3명의 프로그래머가 국가별, 섹션별로 나누어서 업무를 분담한다. 본인은 이번에 아시아와 한국 지역을 주로 담당했다. 어떤 영화를 보고 다른 섹션에 더 알맞은 것 같다고 생각되면 서로 영화를 넘겨주고 받는다.

  업무 특성상 프로그래머 한 사람이 담당하는 영화 수가 매우 많을 것 같다.
  그렇다. 올해 전주국제영화제에서 한국 단편 경쟁 부문에서는 무려 1,000편이 넘는 영화가 출품됐다. 사실상 한 사람이 다 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래서 예심과 본심 개념처럼 진행한다. 예심 위원 6명이 2인 1조로 영화를 선정한다. 혼자가 하면 무언가 놓칠 가능성에 대비하기 위함이다. 그 이후 본심에서 모든 위원이 함께 관람하고 선정한다. 각자 할 일이 많기 때문에 처음에는 적은 인원으로 시작했다가 점점 조직에 살이 붙는 경우가 많다.

  전주국제영화제에 대한 소개 부탁드린다.
  전주국제영화제는 2000년에 처음으로 만들어졌다. 당시 흔히 보급되지 않았던 ‘디지털 영화’가 전주국제영화제의 시작이었다. 디지털 영화는 대중화를 이뤄 그 의미가 조금 퇴색됐으나, 그 흐름을 계속 이어가 ‘디지털 영화, 대안 영화, 독립 영화’로 구성된 캐치프레이즈는 여전히 유지 중이다. 지금은 ‘대안 영화, 독립 영화, 실험 영화’를 보여주는 것이 전주국제영화제의 정체성이라 할 수 있겠다. 더 나아가서 ‘실험적이고 다양한 영화를 보려면 전주국제영화제에 와야 한다’는 이미지를 만들고 있다.

전주국제영화제 문석 프로그래머                                                                               제공: 문석 프로그래머
전주국제영화제 문석 프로그래머                                                                               제공: 문석 프로그래머

  전주국제영화제가 주목하는 영화상이 궁금하다.
  섹션에 따라 다르지만, 기본적으로 전주국제영화제의 정신에 기반을 두는 것 같다. 전주국제영화제에는 실험적인 영화와 도전적인 영화를 보여주는 ‘영화보다 낯선’ 섹션, ‘장르 영화’지만 조금 차별성이 있는 영화가 선발된 ‘불면의 밤’ 섹션이 있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사회성이 있는 영화 △스릴러 영화 △정치적인 논쟁이 있을 법한 영화 등 다양한 개성을 가진 영화를 선정하는 것 같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이하 코로나19) 관련 조치가 해제된 이후의 영화제 모습은 오랜만이다. 기대되는 부분이 있는가?
  지난해부터 정상화됐다고 하지만 당시 정말 쉽지 않았다. 정상 개최에 대한 여부도 여러 번 번복됐던 것 같다. 그러던 중 정상 개최를 밀어붙여 진행하기는 했으나, 코로나19와 관련한 여러 방침 탓에 자유롭지 못했다. 이에 따라 해외 게스트들도 많이 부를 수 없었다. 하지만 올해 전주국제영화제에서 가장 기대해 볼 만한 점은 해외 게스트가 아닐까 싶다. 스타워즈 전용관 같은 이벤트도 있고, 이번 영화제의 키워드 중 하나가 ‘축제의 복원’인데 이번에야 축제를 기대하고 있다.

  영화제가 처음이거나, 영화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사람에게 추천할 만한 전주국제영화제 프로그램이 있다면 무엇인가?
  ‘영화를 보는 것’ 자체에 많은 신경을 쓰지 않았으면 좋겠다. 티켓을 구하기 쉽지 않을뿐더러, 의지만으로 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전주 씨네투어’라는 프로그램에 대해서 소개하고 싶다.
  ‘영화X산책’이라는 프로그램은 관광객뿐 아니라 전주 시민들이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전주 시민들을 대상으로 무료 상영을 진행한다. 이 프로그램은 영화제가 개막되기 전부터 시작돼 폐막한 뒤에도 오는 20일(토)까지 이어진다.
  ‘영화X마중’이라는 프로그램은 한 소속사의 배우들과 함께 이벤트를 펼치는 프로그램으로 올해는 소속사 ‘눈 컴퍼니’의 배우들과 함께 진행한다. 독립영화계에서 두각을 드러내고 있는 눈 컴퍼니 배우들이 정말 많다. 이들과 함께 △영화 상영 △배우들이 직접 진행하는 ‘GV(관객 질의응답)’ △배우들과의 토크 △화보집 제작 등의 대중적인 성격을 띤 배우 중심의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끝으로 ‘영화X음악’이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이 프로그램은 무성 영화를 틀어 놓고 라이브 콘서트를 함께하는 행사다. 올해는 ‘신나는 섬’이라는 팀과 함께 3편의 영화를 선보일 예정이다. 이러한 3가지 프로그램이 영화제를 처음 접해보는 사람부터 다양한 사람들이 즐길 수 있는 행사지 않을까 싶다.

  영화제에 왔으니 무엇인가 봐야겠다고 다짐한 사람에게 추천할 만한 섹션은 무엇인가?
  실험적인 영화보다는 외국의 영화제들에서 상을 받거나 주목받은 영화들을 많이 보면 좋겠다. 그런 영화들은 분명 상을 받은 이유가 있으니까 그렇다. 그 외에 ‘월드시네마 영화’들이나, 본인이 프로그래밍한 ‘불면의 밤’ 섹션의 영화들도 추천한다. 전공자들에게는 ‘한국 단편 경쟁’ 섹션을 추천하고 싶다.

  다양성을 추구하는 영화제인 만큼 당해의 트렌드가 출품작에 반영돼 있을 것 같다. 올해 출품작의 트렌드가 어떤지 궁금하다.
  퀴어는 늘 독립영화계에서 어느 정도 비중을 차지해 왔다. 그런데 올해는 특히 퀴어 영화의 비중이 컸다.
  또한, 한국 영화를 담당하는 입장에서 말하자면 SF적인 △상상력 △발상 △설정이 담긴 영화들도 많아졌다. 문학계에서 SF가 유행하는 경향이 영화계와도 관련이 있다고 생각한다. SF라는 건 현실을 우회적으로 표현하는 수단이라고 본다. 영화는 SF를 풀어나가기에 적합한 예술 매체인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당분간 SF 성향의 영화가 조금 늘어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다.

  영화 전문가로서 잘 만든 영화의 기준이 궁금하다.
만든 사람의 생각이 잘 드러나는 영화가 가장 잘 만든 영화가 아닐까 싶다. 그 생각이 어떤 생각인지는 그 이후에 드러난다. 외형은 거칠더라도 내실이 있는 영화가 잘 만든 영화라고 볼 수 있는 것 같다. 추가적으로는 미술과 음악 등 다른 예술과 관계성을 잘 맺는 영화가 잘 만든 영화라고 꼽을 수 있다.

  이번 전주국제영화제에서 눈여겨볼 점은 배리어프리 영화위원회와 업무 협약을 체결한 점이다. 이에 대해 기대하고 있는 부분이 있는가.
  사실 배리어프리 상영을 국내 영화제에서 처음 한 것은 아니다. 부산국제영화제도 늘 배리어프리 상영을 해왔다. 다만 올해 실무팀에서 아이디어를 내고 이 일이 성사돼 내부적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배리어프리 영화를 만드는 일은 무척 쉽지 않은 일이다. 누군가는 자막만 달면 된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사실상 처음부터 뜯어고쳐야 한다고 보면 된다. 그래서 이런 과정의 비용을 영화제에서 제공하고 업무 협약을 체결한 것이다.
  배리어프리 이외에도 영화를 쉽게 볼 수 없는 분들이 영화를 잘 볼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이 있다면 추진해 보고 싶고, 올해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처음 추진하는 배리어프리 상영으로 인해 다른 영화제에서도 해당 사업을 진행하면 좋겠다는 기대감이 있다.

  영화전문매체 ‘씨네21’ 기자 경험과 영화 수입사에서의 활동 경험이 있다고 들었다. 해당 직업을 진로로 삼는 학생에게 조언 부탁드린다.
  과거와 지금을 비교해 보면 기사나 평론의 흐름이 약간 달라졌다. 당시에는 여러 주간지와 일간지가 존재했고 2010년대 이전까지는 한국 영화의 흐름이 무척 좋았다. 지금 영화는 여전히 ‘K-컬쳐’의 핵심이기는 하지만, ‘영화 저널’처럼 담론을 만들어 내는 것에서 상업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투자가 잘 들어오지 않고 점점 사라지는 추세다. 하지만 그렇다고 전혀 포기할 필요는 없다고 말해주고 싶다. 일반 신문에서 영화 평론으로 등단도 가능하고, 직접 책을 내는 등 꿈은 스스로가 만들어 가는 것이라 생각한다. 의지가 있다면 길은 열릴 것이다.
  수입사는 직배사(직접 소비자에게 영화를 배급하는 회사)가 거래하지 않는 인디 영화나 유럽 영화 같은 것을 수입하는 곳이다. 사실 수입사 같은 경우도 권장하기는 조금 어려운 곳이다. 넷플릭스 등 온라인동영상서비스(이하 OTT) 플랫폼의 영향이 크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다양한 영화를 보려면 무조건 극장에 가야 했고, 극장 상영이 활발했다. 수입사는 부가 시장인 △극장 밖 시장 △DVD △다운로드 △공중파 TV를 활발히 이용했었는데 이제는 OTT가 도입돼 수입사가 힘든 시기다. 하지만 올해 큰 경사가 하나 있긴 했다. ‘더쿱디스트리뷰션’이라는 수입사에서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를 수입했는데 영화 ‘캐롤’ 이후 처음으로 터진 흑자였다.
  부정적인 이야기를 계속하게 되어 미안하지만, 영화판이라는 곳은 참 어려운 것 같다. 2000년대 초중반까지만 해도, 영화과 졸업생들의 꿈은 ‘CJ’나 ‘쇼박스’ 등 대기업 투자 배급사에 입사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회사들도 위험하고, 극장이 너무 힘든 시기를 겪고 있다. 그래도 제일 중요한 것은 요즘 말로 ‘존버’라고 하겠다. 무엇을 하든 기회가 왔을 때 잡을 수 있도록 준비해 두는 게 제일 중요하지 않을까 싶다.

  앞으로 OTT 시장은 어떨지 궁금하다.
  정말 어렵고 복잡한 것 같다. 플랫폼 시장에서는 궁극적으로 OTT가 승리할 것 같지만 극장이 죽느냐 물으면 그건 또 아닐 것 같다. 극장에서 봐야 하는 영화가 분명 존재하기 때문이다. 다만 그 궁극에는 양극화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쉽게 예상할 수 없는 일이지만, 한 가지 예상하는 것은 OTT 시장의 확산이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에게 메리트로 분명히 다가오겠다고 생각한다. 제작사를 통해 만들어지는 영화는 구조적 어려움이 있었다면, 이제는 OTT 시장에 납품하는 구조이기 때문에 확실히 이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예전과 같이 창의적이고 독창적인 작품들은 좀 줄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그래도 영화를 만드는 자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올해 전주국제영화제의 추천작을 소개해달라.
개막작인 ‘토리와 로키타’, 폐막작인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를 추천한다. 비경쟁 영화에서는 ‘페르소나 이상한 여자’를 추천하고 싶다. 영화 전공자에게는 한국 영화 아카데미 40주년 특별전을 추천하고 싶다. 많은 감독들을 배출한 아카데미 영화를 보면, 유명 감독들이 젊은 시절에 만든 영화들을 볼 수 있기 때문에 배울 점이 많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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