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쯤은 우리 학교 신문에 글을 기고하고 싶었는데, 학교에 온 지 3년 반 만에 지면 한 군데를 빌리게 됐습니다. 저도 모르는 새 하고 싶은 말을 가지고 있었던 걸까요. 글감을 고민하는 데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23’이 1학년 학번이 되어 어느덧 20학번이 오래된 숫자처럼 느껴지는 요즘, 대학 입학 후 현재까지를 반추하며 몇 자 적어봅니다.

  작년 한 전공 수업에서 정책 형성 과정을 설명하시던 교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렇듯 저희가 누리는 정책은 많은 사람들의 희생으로부터 나왔습니다. 우리 모두는 사회의 누군가 덕분에 매일 더 나은 삶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막연히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실은 체감하지 못하고 있던 사실이었습니다.

  교통사고 위험 지역의 속도 제한, 각종 생활 시설 내 강화된 안전 규정, 직접 원하는 후보자에게 표를 던질 수 있는 자유, 많은 주체들의 권리를 논하는 담론의 증가. 조금만 떠올려도 일상 속 크고 작은 부분이 예전 누군가에게는 당연하지 않았던 것들이었습니다. 분노와 안타까움을 자아내는 여러 뉴스들에 점점 무뎌져 가던 시기, 이날의 수업은 지금 우리 사회가 얼굴조차 알지 못하는 수많은 이들의 피와 눈물이 이뤄낸 결과라는, 감히 부드러운 어휘로 포장할 수 없는 진실을 되새기게 했습니다.

  누군가의 아픔과 분노에 공감하는 것은 정도와 빈도를 차치하더라도 쉽게 얻거나 유지하기 힘든 능력입니다. 사람은 같은 감정이 반복될수록 그 감정에 점차 무뎌지고, 때로는 스스로를 살필 시간조차 부족해 타인을 생각할 여유를 잃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신과 다른 조건의 삶에 대해 잊어버리기 십상이고, 매일같이 쏟아지는 사건 사고에 아무런 악의 없이, 무심히 지나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내 앞의 많은 누군가가 내가 가는 길을 닦아 놓았다는 사실을 기억한다면, 할 것 많고 바쁜 일상에서도 ‘무책임한 무지’ 이것 하나는 배척의 대상으로 계속 놔뒀으면 합니다. 숫자에 쉽게 가려지는 그 안의 사람을 보기 위해 둔감해지지 않는 것, 계속해서 관심을 기울이는 일은 남을 위해서뿐 아니라 자신을 위해서도 중요할 것입니다. 전자 기기 전원만 끄면 많은 사실로부터 멀어질 수 있을 것 같아도 그것이 가능하기엔 우리는 이미 너무 연결돼 있으니까요.

  앎을 위해 항상 깨어 있자는, 결론적으로 여러 의미에서 어제보다 오늘 더 나은 개인이 되자는 말을 이리 늘려 썼습니다. 새내기 여러분, 4년간 각자의 방식으로 많이 즐기고 배워 가세요. 이전과 다른 자신을 확장할 수 있도록 추구하는 바를 위해 리스크를 짊어지는 담대와 자신(自信)의 경험을 쌓으세요. 무언가를 할 때 불확실함 때문에 망설이지 말고, 행동하지 않았을 때의 손해를 고려하세요. 마지막으로, 조금 늦었지만 여러분의 대학 생활을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저작권자 © 숭대시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