샬롯 웰스 감독

  영화 <애프터 썬>은 샬롯 웰스 감독의 자전적 기억을 기반으로 제작된 영화다. 데뷔작부터 영국 아카데미, 칸 영화제 등에서 돌풍을 일으키며 미국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꼽은 2022년 최고의 영화로 손꼽히기도 했다. 영화는 부녀의 기록을 다루고 있다. 파편의 기억이 기반인 만큼 영화는 시점이 뒤섞이며 자유롭게 유영한다. 기억의 주체에 대한 정보도 전략적으로 불확실하게 전달된다. 영화는 어린 시절 아빠 캘럼(폴 매스칼)의 캠코더 속에 찍힌 딸 소피(프랭키 코리오)의 모습으로 시작된다. 이내 어른이 된 소피가 캠코더를 바라보고 있는 장면이 등장하며 20여 년 전 아빠와 함께한 튀르키예 여행담이 스크린에 나타난다. 영화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튀르키예 여행 장면은 어른이 된 소피의 시점에서 바라본 것인지, 실제 여행의 감상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캘럼과 소피는 기록 장치들과 대부분의 순간을 함께 한다. 캠코더와 방수 카메라, 폴라로이드 필름 등 기록된 순간들은 또 다른 회상이 된다. 그들의 여행은 평범하기 그지없다. 부녀 사이에 갈등도 없고, 그저 즐거운 것처럼 보인다.

  다만 영화를 쫓아가다 보면 캘럼의 불안이 생각보다 더 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캘럼은 소속감을 느끼지 못한 채 고향 스코틀랜드를 떠난 인물이며 낯선 런던에서 자리를 잡아, 좋은 아빠가 되고자 애쓴다. 소피의 시선 밖에서 그는 어두운 바다를 향해 뛰어가 잠기고, 홀로 큰 소리를 내며 울기도 한다. 그러나 어린 소피에게 막 30대가 된 젊은 아빠의 혼란스러운 감정들은 파인더 밖 피사체처럼 낯설다. 다시 현재의 시점으로 아버지와 비슷한 나이가 된 서른의 소피는 된 소피는 캠코더를 떠올리고 영상을 틀어 본다. 태양이 뜨거웠던 그해 여름 홀로 춤을 추고 있는 아빠를, 소피도 안아 줄 수 있는 나이가 된다. 어른이 된 소피와 서른 살에 멈춰 있는 캘럼, 소피는 캘럼을 어렴풋이 이해하게 된다. 캠코더의 흐릿한 화질처럼 지나간 기억이 처음처럼 선명해질 수는 없지만, ‘같은 하늘 아래 있진 않더라도 같이 있는 것’처럼 추억은 영원한 것이다. 

저작권자 © 숭대시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