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특정 다수를 향한 반사회적 범죄, ‘묻지마’가 아니다

  최근 ‘신림동 흉기 난동’, ‘서현역 흉기 난동’ 등 흉악 범죄가 잇따르면서 사회적인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불특정 다수에게 흉기를 휘두르는 이상 동기 범죄 이른바 ‘묻지마 범죄’가 연달아 발생하면서 우리 일상 속에는 늘 공포가 도사리고 있다. 이전까지도 ‘묻지마 범죄’는 존재했으나 인터넷을 통한 모방 범죄 등 최근 그 양상이 달라지고 있다. 이전과는 다른, 새롭게 대두된 오늘날의 ‘묻지마 범죄’에 대해 살펴보자.

지난달 3일(목) 성남시 소재 백화점에서 차량 돌진 및 흉기 난동 사건이 발생해 경찰이 출동한 모습이다. 출처: 중앙일보
지난달 3일(목) 성남시 소재 백화점에서 차량 돌진 및 흉기 난동 사건이 발생해 경찰이 출동한 모습이다. 출처: 중앙일보

  우리 주변에 도사리고 있는 범죄
  지난 7월 21일(금) 서울 관악구 신림역 부근에서 30대 남성 조선이 불특정 다수에게 흉기를 휘둘러 20대 남성 1명이 사망했고 남성 3명이 중상을 입은 사건이 발생했다. 조 씨는 지난해 12월부터 은둔 생활을 하며 인터넷에 작성한 글로 고소를 당했고 경찰로부터 출석 요구를 받자, 범행을 저질렀다. 조 씨는 수사 과정에서 특히 불특정 젊은 남성에 대한 범행을 계획하고 실행한 것으로 진술했다. 검찰은 조 씨의 범행 원인을 사회 부적응 및 열등감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고 있다. 조 씨의 범행이 게임 중독 상태에서 사회에 대한 불만과 좌절에서 비롯됐다는 분석이다. 이에 검찰은 조 씨가 젊은 남성을 의도적으로 공격 대상으로 삼아 게임을 하듯 공격했다고 파악했다. 지난 13일(수) 조 씨의 2차 공판이 진행됐으며 조 씨는 고의성을 부인하며 피해망상으로 인한 범행이라고 주장했다. 

  지난달 3일(목) 20대 남성 최원종은 경기 성남시에 위치한 백화점 앞에서 차를 몰고 인도로 돌진해 시민 5명을 덮쳤다. 직후 최 씨는 차에서 내려 시민 9명에게 흉기를 휘둘렀다. 사건 당시 부상자 14명으로 파악됐지만 지난달 28일(월) 치료를 받던 여성 2명이 사망함에 따라 14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경찰은 피의자 조사에서 최 씨의 범행이 망상에 따른 정신 질환에 기인한 것으로 판단했다. 실제로 최 씨는 지난 2020년 ‘조현성 인격장애’와 ‘사회공포증 진단’을 받았다. 수사 당국에 따르면 최 씨는 성인이 된 이후 받아 오던 정신 질환 치료를 중단했고 피해망상 증상을 호소해 온 것으로 밝혀졌다. 최 씨는 경찰 조사에서 “자신을 해치려던 스토킹 집단에게 먼저 공격하지 않으면 자신이 공격당할 것 같아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했다. 최 씨의 첫 공판은 지난 14일(목) 열렸으나 최 씨 측이 증거 열람을 아직 못했다며 10여 분 만에 종료됐다. 

  지난달 17일(목) 30대 남성 최윤종이 서울 관악구 신림동의 한 공원 둘레길에서 불특정 30대 여성에게 성폭행을 시도하고 목 졸라 살해에 이르게 한 사건이 발생했다. 최 씨는 금속 재질 흉기를 양손에 끼우고 피해자를 폭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피해자 발견 당시 피해자는 심정지 상태로 병원에 이송됐지만, 이틀 만에 사망했다. 현재 최 씨는 성폭행 혐의는 인정하면서도 우발적인 범행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수사 당국은 사회와 단절된 삶을 살던 최 씨가 인터넷으로 성폭력 관련 기사를 보고 이를 모방해 범행 4개월 전부터 금속 흉기를 구입한 점, 범행 장소를 답사한 점 등을 고려해 치밀하게 준비한 계획범죄라고 판단했다. 

  조선과 최원종이 지금 등장한 이유는?
  전문가들은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이하 코로나19)가 가져온 달라진 사회 분위기가 범죄에 반영됐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김현미 교수는 “코로나19 이후 사회적· 경제적 상승을 꿈꿔 온 사람들에게 현재 자신의 위치와 사회 사이의 큰 괴리에서 비롯된 사회에 대한 반감이 다가왔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상 동기 범행의 가해자 대다수가 남성인 것에 대해 ‘정상성’의 압박과 좌절이라는 분석도 있다. 보편적인 인간상에 대한 사회의 압박으로 인해 좌절을 겪게 된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열린 공간에서 무차별 범행을 저지르는 이유는 힘의 과시를 통해 자기우월주의를 회복하려고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조 씨는 경찰 조사에서 오랫동안 본인보다 신체적·경제적 조건이 나은 또래 남성들에게 열등감을 느껴왔다는 취지의 진술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7월 21일(금) 관악구 신림역 부근에서 흉기 난동 사건이 발생한 가운데 범행 현장 인근에 추모공간이 마련됐다. 출처: 뉴시스
지난 7월 21일(금) 관악구 신림역 부근에서 흉기 난동 사건이 발생한 가운데 범행 현장 인근에 추모공간이 마련됐다. 출처: 뉴시스

  이상 동기 범죄가 낳은 또 다른 현상, ‘살인 예고’
  최근 이상 동기 범죄에서는 이전까지 찾아볼 수 없던 새로운 현상이 나타났다. 잇따라 발생한 흉악 범죄에 이어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연속적으로 ‘살인 예고’ 글이 게시된 것이다.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달 28일(월)까지 확인된 ‘살인 예고’ 글 476건 중 235건의 게시자가 검거됐다. 검거된 피의자 가운데 만 19세 미만 청소년의 비율이 41.3%에 달했다. 게시글 다수가 익명 게시판에 게재됐다. 사회학 전문가인 김학준 작가는 “조선 묻지마 사건에서 출발한 사건이 하나의 모티브가 되면서 ‘잃을 게 없으니 참여하겠다’라는 식의 밈(meme)이 됐다”며 “사회로부터 관심을 끌고자 하는 이들과 이를 지켜보며 즐기는 이들이 얽히고설킨 상태”라고 말했다. 밈은 인터넷에서 모방 형태로 확산되는 문화 요소 및 유행을 말한다. 그러나 ‘살인 예고’ 관련 판례가 적고 관련 법률이 부재해 직접적인 처벌이 어려운 상태다. 이에 △협박죄 △살인예비죄 △위계공무집행방해죄 등을 적용하기도 하지만, 이마저도 입증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형법 255조(예비‧음모)에 따르면 살인을 목적으로 예비 또는 음모한 자에게 10년 이하의 징역형을 규정하고 있지만, 대법원은 구체적인 행위가 있어야 죄가 성립한다는 입장이다. 구체적인 계획 없이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살인을 예고하는 게시글만으로는 형사처벌이 어렵다는 것이다.

  잇따른 살인 예고 게시글로 인해 모방범죄의 악순환으로 이어진다는 비판도 있다. 살인 예고 게시글이 온라인 공간과 오프라인이 연결되며 범죄의 구심점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범죄 심리 전문가 배상훈 씨는 “온라인에 올라온 자극적인 글이 오프라인 범죄로 이어지고 이게 다시 온라인에서 오프라인으로 악순환하는 형태”라고 밝혔다. 범죄자가 가지고 있는 문제와 비슷한 문제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심리적 모방’을 통해 만족감과 희열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배 씨는 “살인 예고에 대응하기보다 온라인상의 과열된 분위기를 식히는 것이 급선무”라고 덧붙였다.

  ‘불심 검문’ 흉악 범죄 예방책으로 적절한가
  
경찰은 지난달 4일(금) ‘흉기난동범죄 특별치안활동’을 선포하고 선별적 검문·검색(불심 검문) 등의 단속을 강화하기 시작했다. 경찰은 지난달 4일(금)부터 9일(수)까지 총 981명을 대상으로 선별적 검문·검색을 실시해 실제 흉기를 소지한 40명을 입건했다. 이 밖에도 104명에겐 범칙금 부과했고, 314명에겐 경고 후 훈방조치가 이뤄졌다. 

  다만, 검문 과정에서 과잉 진압 논란이 발생하기도 했다. 특히 경기 의정부시에서 한 중학생이 불심 검문을 오해해 달아나는 과정에서 크게 다쳤다. 경찰관직무집행법에 따르면 경찰은 수상한 행동이나 죄를 범하려 하고 있다고 의심할 만한 이유가 있는 사람에 대해 선별적으로 검문하고 검색할 수 있다. 그러나 ‘수상한 행동을 보이는 자’ 혹은 ‘죄를 범할 것으로 의심이 되는 사람’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없어 판단은 경찰의 자의적 해석에 달린 셈이다.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승재현 선임연구위원은 “시민에게 협조를 구하지 않고 검문·검색을 단행해 공권력을 남용한다면 후폭풍을 감당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과 가까운 일본에서는?
  일본에서는 ‘도리마’라는 단어가 있을 정도로 지난 2000년대 초 ‘묻지마 범죄’가 자주 일어난 바 있다. 대표적인 사건으로 ‘아키하바라 사건’이 있다. 지난 2008년 일본 도쿄 아키하바라에서 한 20대 남성이 트럭을 몰고 행인들에게 돌진한 후 차에서 내리고 흉기를 휘둘러 총 18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사건이다. 이에 일본 경찰은 사회·경제적 고립, 사회 속 불공정에 대한 원망 등을 원인으로 지목했다. 이후 일본은 5.5cm 이상 양날형 흉기 소지 금지, ‘고독 고립대책 담당관’ 신설 등 대책을 마련했다. 그러나 실제적으로는 무차별 범죄율 감소에는 효과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7월 24일(월) 오사카에서는 열차에서 무차별 흉기 난동 사건이 일어나 3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이에 최근 일본에서는 인공지능 기술인 ‘디펜더 엑스’를 도입해 묻지마 범죄를 예방하려 하고 있다. 카메라로 행인의 얼굴을 인공지능이 실시간으로 분석해 △긴장도 △공격성 △높은 스트레스 수치 등을 분석한다. 거동 수상자를 사전에 잡아내는 데 쓰인다. 이미 법률 사무소나 일반 가게 등 다양한 곳에서 사용 중이다. 이 밖에도 지하철에서 흉기 난동이 발생한다면 열차 좌석을 떼어 내 호신용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바꿨고 비상 호출을 누르면 차장이 호신용품과 방패를 들고 범죄에 대응하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살인 예고 및 이상 동기 범죄 엄중히 처벌할 예정
  전국에서 살인 예고 및 이상 동기 범죄가 잇따르자, 대검찰청은 해당 범죄에 대해 엄정하게 대응할 전망이다. 지난 1일(금) 대검찰청은 살인 예고 등의 사건 피의자를 약식 기소가 아닌 정식 기소할 것을 지시했다. 소년범의 경우에도 실제 살인 등 강력 범죄로 이어지지 않아도 원칙상 기소 유예 처분을 지양할 것이라는 방침이다. 더불어 범죄 대응 예산도 증액될 예정이다. 지난달 29일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2024년도 예산안에 따르면 이상 동기 범죄를 예방·대응하는 예산이 108억 원으로 6배 늘었다. 예산 증액을 통해 경찰에 저위험 권총을 보급하고 기동대에 흉기 대응 장비를 보급하겠다는 계획이다. 

  이상 동기 범죄 어떻게 해야 할까
  전문가들은 개인의 문제뿐만 아니라 사회 안전망 확보, 고용시장의 안정화 등 사회 전반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범죄를 근절하기 위해선 장기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법무부는 최근 가석방 없는 무기형 도입 등 엄벌 대책을 내놓은 바 있다. 그러나 최근 이상 동기 범죄의 원인이 되는 사회적 고립과 경제적 빈곤을 해결하기에는 거리가 있다.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김현미 교수는 “코로나가 노동환경·사회적 관계에 부정적 변화를 가져왔다는 점에서 지난 3년간 사회적 위치를 잃어버린 이들을 위한 사회안전망 확보와 복지 정책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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