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토퍼 놀란 감독

  2006년 퓰리처상 수상작 평전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는 영화 <오펜하이머>의 시작이다. 1152라는 방대한 페이지 수도, 180분의 러닝타임도 한 개인의 역사를 설명하기에는 부족한 시간이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원자 폭탄의 아버지 오펜하이머의 일대기를 스크린에 옮기기 위해 판단이 아닌 이해를 택한다. 그렇기에 영화의 클라이맥스라고 할 수 있는 핵폭발 실험의 성공 마저도 3자적 태도로 연출한다. 인간에게 불을 가져다 준 대가로 평생의 형벌을 받게 된 프로메테우스가 그러하듯 오펜하이머에게 있어 원자 폭탄의 성공은 ‘파멸의 연쇄’가 된다. 이를 효과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트리니티 실험 장면은 무음의 시간으로 표현된다. 원자 폭탄이 가져올 재앙의 크기를 예측할 수 없듯 말이다.

  침묵의 시간 다음은 아이러니하게도 실험 성공을 자축하는 청중들의 환호다. 환호는 곧 폭발음으로 변모하고, 원폭의 섬광이 스쳐간 자리에는 피폭되어 고통받는 사람들의 환각이 오펜하이머의 머리속을 지배한다. “나는 이제 죽음이요, 세상의 파괴자가 되었다.”라는 오펜하이머의 대사처럼 세상을 구하기 위해 세상을 파괴하게 된 한 과학자의 고뇌는 그 어떠한 관점에 치우치지 않고, 관조적으로 드러난다. 판단이 아닌 이해를 택한 놀란 감독의 의도는 후반부의 청문회 시퀀스로 접어들며 절정에 다다른다. 파멸의 연쇄 그 중심에 서게 되며 모든 배신과 죄책감의 무게를 짊어진 오펜하이머에게 감정적인 서사를 더하는 대신 컬러와 흑백 화면을 오가며 그 어떠한 관점에도 치우치지 않게 한다. 오펜하이머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은 컬러로, 오펜하이머의 건너편에서 바라보는 시선은 흑백으로 담아내며 오펜하이머가 처한 그 자체에 집중할 수 있게 만든다.

  오펜하이머로 분한 킬리언 머피의 연기 또한 역사의 중심에 선 한 인물이 처한 고뇌와 갈등에 충분히 몰입할 수 있게 만들어 준다. 결국 영화가 끝나고 남는 것은 오펜하이머의 성공과 실패가 아닌 그의 감정과 진동의 잔상이다. 인류의 구원자도 파괴자도 그저 한 명의 과학자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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