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인들은 자기 집 하나 마련하기 힘들고 학자금, 대출금, 사교육비 등 늘 돈에 쫓기는 현실 속에 살고 있다. 우리는 왜 이렇게 쫓기며 사는 것일까? 중요한 건 우리가 이렇게 사는 이유가 개인적인 것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성실히 사는 사람도 경제적으로 어려움에 쫓기며 살 수밖에 없는 것은 정치 때문이다. 정치란 사전적 의미로 ‘국가의 권력을 획득하고 유지하며 행사하는 활동으로, 국민들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게 하고 상호 간의 이해를 조정하며, 사회 질서를 바로잡는 따위의 역할을 하는 것’을 의미한다. 

  “권력이라는 정치적 관계는 착취하는 경제적 관계에 선행하며 그것을 만들어 낸다. 소외는 경제적 소외이기 이전에 정치적 소외다.”

  정치인류학자 피에르 클라스트르에 따르면, 결국 우리가 겪는 경제적 문제가 대부분 정치적 문제에서 기원한다. 우리는 일상에서 이를 경험하고 있다. 전셋값이 오르면 경제적으로 힘들어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전셋값 문제는 본질적으로 정치 문제다. 정치의 방향을 정하는 사람들에게 의지만 있다면 이 문제는 전셋값을 올리는 데 한계를 두는 법을 만들거나 공공 주택을 확대하는 등의 방법을 통해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클라스트르의 말처럼 경제적 소외는 결국 권력에 의해 결정되고, 권력은 정치적 관계에서 형성될 수밖에 없다. 만약 정치의 방향을 결정하는 사람에게 의지가 있다면 우리의 경제적 문제가 당장 내일부터라도 해결되거나 완화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이런 이야기가 희망 사항에 불과할 뿐이라는 것을 안다. 한국의 정치 세력은 대부분이 평범한 사람이나 사회적 약자를 대변하지 않는다.

  여기서 의문을 가질 수 있다. 왜 우리를 대변해 줄 수 있는 정치 세력은 없거나 있어도 사회를 바꿀 권력이 없는가? 답은 어렵지 않다. 먼저 우리가 정치에 무관심하거나 각자 이해관계에 부합하지 않는 정치관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다수의 사람이 현실적인 많은 문제에 정치적으로 소외당했다면, 그것은 우리를 대변하는 정당이나 사람에게 권력을 제대로 양도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권력을 양도하지 않았다는 것은 자신의 경제적 권익을 전혀 대변해 주지 않는 세력을 지지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가난한 사람들이 부자들을 대변하는 당에 투표하는 것이 이것의 대표적인 예시다. 정치적 소외는 결국 경제적 소외를 불러온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정치를 해야 한다. 이것은 적극적으로 정치적 활동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적어도 자신에게 주어진 권력을 선거와 같은 활동을 통해서 경제적 권익을 대변해 줄 정치 세력에게 잘 위임해야 한다는 것이다. 좌우 이념, 학연, 지연으로 인한 권력 양도가 우리에게 평생의 짐과도 같은 고단한 삶을 가져다 준 것은 아닌지 반문해 봐야 한다. 

  우리는 대체 얼마나 더 열심히 살아야 하는가? 국민들의 정치적 관심이 커질수록 현실이 바뀔 가능성 또한 커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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