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정신과가 호황이라고 합니다. 코로나 시기를 거치며, 여러 가지 문제로 힘들어 하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고 하는데요. 그중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호소하는 주된 증상은 우울과 불안이라고 합니다. 우울은 마음이 ‘지나간 과거’에 머물러서, 불안은 마음이 ‘다가올 미래’에 머물러서 생긴다고 하는데요. 사실 인간에게 확실한 과거와 미래란 ‘태어났다는 사실’과 ‘죽는다는 사실’뿐인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출생 이후의 죽음’, ‘성장 이후의 노화’, ‘발생 이후의 소멸’을 의식하지 못한 채 살아가며, 그렇기에 수많은 일들을 저지르고는 합니다.  동서양의 현자들이 한결같이 ‘Memento mori(죽음을 기억하라)’를 강조한 것도, 죽음을 잊고 사는 사람들의 습성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최진영의 「홈 스위트 홈」(『2023 이상문학상 작품집』, 문학사상, 2023)은 인간에게 주어진 확실한 미래인 죽음을 정면에서 다룬 소설입니다. 이 작품의 기본 서사는 암 진단을 받은 40대의 ‘나’가 자신에게 다가올 죽음과 대면하는 과정입니다. 그런데 「홈 스위트 홈」에서 흥미를 유발하는 요소는 죽음을 받아들이는 과정이 ‘스위트 홈’을 만드는 과정과 병행한다는 점입니다. 일러스트 프리랜서로 활동하던 ‘나’는 죽음을 앞두고 시골의 폐가를 사들여 그 집을 꾸미는 일에 골몰하는군요. 죽음이라는 어두운 이미지와 ‘스위트 홈(sweet home)’의 단란한 이미지가 겹치고 어긋나며 이 작품의 긴장과 의미를 형성합니다. 스위트 홈은 과거의 대가족을 대체한 근대의 신가정을 의미하지요. 부부와 자녀가 중심이 된 가정의 형태로 한국 사회에서는 1930년대부터 사용되기 시작한 말이기도 합니다. 제목에 ‘홈(home)’이라는 단어가 두 번이나 반복되는 것은, 주인공이 집에 대해 가지는 열망을 대변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스위트 홈’에 집착하는 이유는 ‘내’가 스무집 가까이 이사를 하며 살아온 것과도 무관해 보이지 않네요. ‘나’는 어른이 된 이후 “서울에서 김포로, 김포에서 수원으로, 수원에서 평택으로”. “열 평 남짓한 하나의 방, 싱크대를 머리맡이나 발밑에 두고 냉장고 소리를 듣다가 잠들” 수 있는 그런 곳에서만 살아왔습니다. 삼십 대 중반에 어진과 만나 동거를 할 때는, 이웃의 소리를 고스란히 들으며 조심조심 살아야만 했던 기억도 있습니다.

  처음 암 진단을 받았을 때, ‘나’는 “수술 하고 치료만 잘 받으면 금방 나을 거”라고 믿었네요. 이때는 “완치를 제외한 모든 경우는 실패”라고 여겼으며, “죽음은 비극”일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수술과 항암 치료 후 일 년도 지나지 않아 재발하고, 다시 2차 재발이 이어지자 ‘나’는 “한발 뒤에도, 한발 앞에도” 죽음이란 검은 구멍이 버티고 있음을 깨닫습니다. 이때부터 ‘나’는 죽음을 밀어내기보다는 죽음을 품어 안으며, 삶의 마지막을 살아가고자 합니다. 그러한 삶의 방식으로 선택한 것이 ‘스위트 홈’을 만드는 것이네요. ‘스위트 홈’을 꾸미는 일은 “3차 재발한다면 화학적 치료는 하지 않겠다”는 결심과 이어지는 것이기도 합니다. ‘내’가 만들어 나가는 집은 “아직 젊은 사람이 대체 어떻게 살았으면 그런 병에 걸리냐”와 같은 사람들의 입방아로부터 벗어난 곳이라는 의미도 지니고 있습니다.  

  ‘나’는 죽음이라는 절대의 숙명 앞에서 “나의 미래를, 나의 하루하루를” 선택하고 싶었으며, “살고 싶다는 생각이 아닌 살아 있다는 감각”에 충실하고 싶어 합니다. ‘나’는 “살 수 있다는 생각만 하다가 죽고 싶지 않”으며, 죽음을 앞둔 지금도 “더 행복해질 수는 있”다고 믿는 것입니다. 지상에 “영혼만 남기고 갈 생각이 없”다고 말하는 ‘나’에게 이 집은 결코 무덤일 수는 없습니다. 이 집은 어디까지나 삶의 마지막을 단란하고 달콤하게 만들어 줄 ‘스위트 홈’일 뿐입니다.

  동시에 이 ‘스위트 홈’은 ‘내’가 세상 사람들에게 남기는 마지막 선물이기도 합니다. ‘내’가 떠난 후, 거기에 살 누군가에게는 아름다운 추억의 공간이 될 수도 있을 테니까요. ‘나’는 엄마에게 “엄마, 잘 기억해. 나는 꼭 작별 인사를 남길 거야. 마지막으로 내가 한숨을 쉬면 그건 사랑한다는 뜻이야. 비명을 지르면 그건 사랑한다는 뜻이야. 간신히 내뱉는 그 어떤 단어든 사랑한다는 뜻일 거야.”라는 말을 유언처럼 남깁니다. ‘내’가 이 세상에 남기고 싶었던 유일한 것은 바로 ‘사랑’이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사랑으로 ‘나’는 “폭우의 빗방울 하나. 폭설의 눈 한 송이. 해변의 모래알 하나.”에까지 관심을 기울이며, 그 하나 하나에 담긴 “존재”의 무게까지 감각하는 사람으로서 삶의 마지막을 맞이하게 됩니다. 만약 당신에게 최진영의 「홈 스위트 홈」이 감동적으로 다가온다면, 아마도 그건 우리 모두가 죽어가는 존재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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