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 세대의 노후 보장을 위한 연금 개혁의 첫걸음

  고령화와 저출산 문제로 우리 사회는 국민연금 고갈 위기에 처해 있다. 연금을 수령할 노년층은 늘어가고 보험료를 내야 할 젊은 층은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연금 고갈 시기가 점점 앞당겨지고 있는 가운데, 정부는 국민연금 개혁안을 발표했다. 개혁안에 대한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 한국의 연금 개혁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살펴보자.

  구체적 수치 빠진 ‘맹탕’ 개혁안?
  지난달 27일(금), 정부는 국민연금 개혁안이 담긴 ‘제5차 국민연금 종합운영계획안(이하 개혁안)’을 공개했다. 지난달 30일(월)에는 정부가 개혁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후 공적연금 관련 종사자로 구성된 연금개혁특별위원회를 중심으로 개혁 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이번 개혁안에 대해 개혁안이 보험료율과 소득대체율 등 구체적인 수치를 포함하지 않아 문제라는 비판이다. 여기서 보험료율은 ‘내는 돈’을, 소득대체율은 ‘미래에 받을 돈’을 뜻한다. 한림대 사회복지학과 석재은 교수는 “정부의 개혁안은 ‘보험료율 인상’이라는 큰 틀은 확립해 놓되, 세부적인 수치는 추후 확립해 가자는 의도로 볼 수 있다”고 전했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구체적인 개혁안을 내놓지 못한 것에 대해 연금 개혁의 의지가 부족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더불어민주당 홍익표 원내대표는 “정부의 개혁안에는 국민연금의 사각지대를 해소하기 위한 어떤 방안도 제시되지 않았다”며 “알맹이 없는 내용을 짜깁기한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이에 대해 보건복지부 조규홍 장관은 지난달 30일(월) 국무회의에서 “조속한 시일 내에 연금 개혁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이룰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더 받는’ 개혁보다 ‘더 내는’ 개혁
  개혁안은 연금의 ‘보장성 강화’보다는 ‘재정 안정’에 무게를 뒀다. 이에 따라 현재의 ‘덜 내고 더 받는 연금’에서 ‘더 내고 낸 만큼 돌려받는 연금’으로 전환될 계획이다.

  개혁안의 주요 내용을 살펴보면 △확정기여형으로의 전환 △보험료율 세대별 인상 속도 차등화 △자동안정화 장치 도입 등을 꼽을 수 있다. 우선, 확정기여형으로의 전환이란 현재의 ‘덜 내고 더 받는’ 확정급여형에서 ‘낸 만큼 돌려받는’ 확정기여형으로 전환하는 것을 의미한다. 현재 시행 중인 확정급여형의 특징은 미래에 받는 돈이 미리 확정돼 있으며 내가 낸 돈에 비례하는 정해진 연금이 지급된다는 것이다. 새로 시행될 확정기여형의 특징은 내는 돈이 미리 확정돼 있고, 이후 내가 낸 돈과 이자가 지급되는 방식이다. 즉, 현재는 근로 세대가 내는 보험료를 은퇴한 세대에게 급여로 지급하는 방식에 가깝지만, 앞으로는 ‘내가 낸 보험료를 은퇴하면 돌려받는 방식’에 가까워진다. 이로써 보험료를 확정하고, 확정된 보험료로 적립 기금을 운용해 운용 성과에 따라 미래에 받을 수 있는 급여가 달라진다. 확정기여형의 장점은 본인이 낸 보험료만큼은 확실히 돌려받을 수 있다는 점이다. 청년 세대의 걱정인 ‘낸 만큼 돌려받지 못한다’는 불안감을 잠재울 수 있는 것이다. 반면 단점으로는 미래에 얼마를 받을 수 있는지 확실하지 않아 불안정하다는 점이 있다.

  다음 핵심 내용은 보험료율 세대별 인상 속도 차등화 방안이다. 정부의 연금 개혁 추진 방향에서 보험료율 인상은 불가피한 문제다 보니, 청년층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세대별로 인상 속도를 다르게 한다는 방침이다. 예를 들어 보험료율을 5% 인상한다고 가정했을 때, 인상된 보험료율로 납부하는 기간이 훨씬 짧은 40대와 50대는 5년에 걸쳐 5%를 인상하게 하고, 20대는 20년에 걸쳐 5%를 인상하겠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석 교수는 “보험료율 세대별 인상 방안은 청년층의 연금 불안을 해소하고 개혁안에 대한 젊은 세대의 지지를 얻을 수 있는 방안”이라고 설명했다.

  마지막 핵심 내용으로는 ‘자동안정화 장치 도입’이 있다. 자동안정화 장치란 △평균 수명 △경제 상황 △수익률 등 불확실성을 가진 여러 상황 등에 맞춰 미래에 받을 연금액을 자동 조정하도록 제도화된 정책이다. 한 분야에 대한 큰 개혁이 있고 난 뒤 급변하는 사회·경제적 상황에 따라 연금액을 자동으로 조정하는 것이다. 다만 연금액 조정 범위가 대폭 아닌 소폭이기 때문에 조정으로 인한 큰 피해는 발생하지 않는 것으로 전해진다. 

  연금 개혁과 시민사회의 불안
  지난 2일(목)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이하 연금행동)과 ‘미래세대·일하는 시민의 연금유니온(이하 연금유니온)’ 등 연금 제도 관련 시민 단체는 확정기여형으로의 전환에 반대하는 성명을 내놓았다. 연금행동은 현행 확정급여형은 물가 및 수익률 변동 등 환경 변화에 따른 손실 위험을 국가가 책임지지만, 확정기여형의 경우 국가가 아닌 가입자 개인이 손실 위험을 부담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더 나아가 확정기여형은 보험료에 운용 수익을 더해 이를 나눠 받는 사적 연금의 운용 원리와 같아져 연금 민영화의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연금유니온은 성명에서 “확정기여형 전환은 국민연금의 재정 불균형이 개선된 시점에서 논의할 수 있는 중장기 과제”라며 “향후 다시 논의되길 원한다면 우선 국민연금 재정 안정화에 힘을 모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연금행동은 보험료율 세대별 인상 속도 차등화와 자동안정화 장치 도입 방안에도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해당 방안에 대해 세대를 나누는 기준이 자의적이고, 재정 조달에 있어 사회 연대의 원칙이 위배되기 때문이다. 세대별 인상 속도 차등화가 오히려 불평등을 불러일으킨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이에 연금행동은 지난달 27일(금) 논평에서 “자동안정화 장치 도입이 연금 개혁의 취지를 무색하게 한다”며 “자동안정화 장치 도입이 연금 삭감 제도로 작용해 보장성을 크게 훼손한다”고 지적했다.

  선진국의 연금 개혁
  연금 문제는 비단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 국가에서 집중하고 있는 문제다. 이에 해외에서도 연금 개혁을 둘러싼 사회적 갈등이 빚어졌다. 심지어 연금 개혁으로 인해 권력이 교체되는 일도 빈번히 발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일 △스웨덴 △일본 등의 선진국은 저출산과 고령화 등 사회적으로 침체한 상황에서 공적 연금을 지속해서 개혁했다.

  독일은 지난 1989년부터 2017년까지 연금법을 11차례 고쳐가며 공적 연금을 개혁했다. 독일 정부는 기대 수명 증가와 출산율 감소 문제로 연금 재정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나오자 개혁을 실시했다. 독일 연금 개혁의 핵심은 사적 연금인 ‘리스터 연금제도’의 도입이다. 지난 2001년 시행한 리스터 연금은 공적 연금의 급여 수준을 낮춰 재정 안정화를 도모했다. 낮아진 급여를 보완하기 위해 독일 정부는 보험료와 세금 공제를 지원하며 원금을 보장했다. 이를 통해 독일은 공적 연금의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었다.

  스웨덴은 공적 연금 대상으로 강력한 재정 안정화 개혁을 이뤄냈다. 기존의 스웨덴은 전체 노인을 대상으로 한 기초연금과 소득비례연금의 이중 공적 연금 체제로 매우 관대한 복지 체제를 유지했다. 그러나 이후 고령화와 저출산 문제로 연금 재정 위기를 맞게 됐다. 이에 스웨덴 정부는 지난 1999년 이중 공적 연금 체제에서 확정기여형 연금 구조로 개편했다. 이를 통해 연금 재정을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었다. 이후 자동조정 장치도 도입해 변화하는 상황에 맞춰 급여 수준을 하향 조정했고, 연금 수급 연령은 상향 조정했다. 스웨덴 정부는 해당 개혁에서 보험료율을 18.5%로 고정한 이후 현재까지 보험료율을 인상하지 않고 있다. 단지 자동조정 장치로 소득대체율 수준을 인하하는 방법으로 연금 재정 안정화를 도모하고 있다.

  한국과 가장 사회 환경이 유사한 일본은  1990년대 저출산과 고령화로 인한 인구 구조의 변화와 경제 성장 침체 등의 문제가 일어났다. 지난 2004년 일본은 연금 개혁을 통해 보험료율을 13.93%에서 18.3%로 올렸다. 당시 보험료율 인상에 대해 일본 국민은 대부분 반대했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국민을 설득하기 위해 보험료 인상 상한선을 도입했고 현재까지 이를 엄격히 지키고 있다. 또한 기존 65세에서 70세였던 국민연금 수급 개시 연령을 65세에서 75세로 변경했다. 한국 역시 국민연금 수급 개시 연령을 65세보다 더 늦추는 방안을 검토하기에 일본의 상황은 중요한 선례가 될 것이다.

  연금 개혁,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
  국민연금 개혁안에 따라 보험료율 인상이 사실상 확정된 가운데, 연금 개혁의 방향을 두고 전문가 사이에서 다양한 의견이 제시되고 있다. 지난 3일(금) 보험연구원 김동겸 연구위원은 ‘초고령사회, 공·사연금 연계를 통한 노후 소득 보장 강화 방안’ 세미나에서 국민연금 개혁 이후 국민의 안정적인 노후 소득을 보장하기 위해선 미국, 독일과 같이 사적 연금의 역할이 강화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연구위원은 “해외 주요 선진국은 공적 연금의 재정 안정화를 목적으로 연금 개혁을 단행했다”며 “그 과정에서 ‘공·사연금간 역할 분담’과 ‘사적 연금의 노후 소득 보장 기능 강화’를 위한 다양한 제도를 도입했다”고 덧붙였다.

  연금박사상담센터 이영주 대표는 개혁안 실행 이후 나타날 세대 갈등의 문제를 방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보험료율을 올리는 것은 이미 낸 사람에게 유리하고 앞으로 내야 할 사람에게는 엄청나게 불리하다”며 “세대 갈등을 줄일 수 있는 연금 개혁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한편,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이하 연금개혁특위)는 오는 16일(목) 보건복지부로부터 국민연금 개혁안을 보고 받는다. 민간 전문가로 구성된 민간자문위원회의 자문안도 별도로 받을 예정이다. 연금개혁특위 야당 간사인 더불어민주당 김성주 의원은 “개혁안을 보고받은 이후 여야 간사가 만나 협의를 통해 연금개혁특위의 논의 방향성을 구체화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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