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 인간과 세계에 대한 근본 원리와 삶의 본질 따위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모든 인간은 자아를 갖고 세계를 바라본다. 꼭 학문적 접근이 아니더라도, 모든 인간은 철학적 탐구를 하게 된다. 로마 황제이자 스토아 철학자였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침대에서 뭉그적거리는 것에 대해 ‘굳이 왜 그래야 하는가’라고 물으며 스스로 납득할 만한 자신의 생각과 기준을 찾아봤다고 한다. 아우렐리우스는 침대 밖으로 나갈 사명이 있다는 대답을 도출해 침대 탈출에 성공했다고 전해진다.

  누구나 아침에 “5분만 더”를 말하며 게으름을 피워 봤을 것이다. 머리로는 “그냥 일어나야지”가 되지만, 행동으로 옮겨지지 않을 때가 있다. 여기서 ‘침대에서 나오는 방법’ 같은 지식을 찾는 대신, ‘왜 그래야 하는지, 왜 미루고 있는지, 당장 일어나는 행위와 조금 더 자는 행위 중 무엇이 더 효용 있을지’ 고민하는 것이 철학이다.

  필자의 전공은 철학이 아니지만, 철학 전공 수업을 듣는다. 이번 학기 첫 수업에서 ‘하루에 몇 번 생각하는지’ 적어 오라는 과제를 받았다. 답은 ‘무수히 많다’였다. 셀 수가 없다. 이 많은 생각이 모두 철학적 고찰일 수 있다.

  철학을 왜 배워야 할까? 철학과 진학은 실용적 가치가 떨어진다며 기피되거나 무시당하곤 한다. 하지만 현 시대에는 철학이 절실하다.

  철학은 그리스어 ‘Philosophia’를 번역한 말이다. 여기서 ‘philos’는 사랑, ‘sophia’는 지혜라는 의미로 ‘지혜에 대한 사랑’을 뜻한다. 현 시대는 지혜를 사랑하고 있는가.

  탈진실의 시대라고 한다. 이미 증명된 이론이나 진실을 부정하고 어떻게든 자신이 믿고 싶은 것만 믿는 현상이다. 인터넷과 알고리즘의 발전으로 거짓되거나 편향된 정보가 기하급수적으로 확산되면서 나의 ‘앎’조차 의심해야 하는 상황이 돼 버렸다. ‘사실’보다 ‘경험’, ‘진리’보다 ‘실용’이 중시되곤 한다. 미디어는 반지성주의적 분위기 형성에 관여하고 있다.

  여기서 사유는 개인의 몫이다. 그리고 사유하는 과정 자체가 철학이다. “너 자신을 알라.” 고대 그리스의 유명한 격언이다. 나 자신에 관해 사유하는 것은 자기애의 일종이다. 고대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이 좋은 사람이라고 말한다.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은 고귀한 것을 행함으로써 스스로 기쁨을 얻고 남에게도 유익을 끼친다는 것이다. 결국 이러한 사람이 친구와 조국을 위해서도 많은 일을 한다는 주장이다. 이처럼 고대의 학문이 현대 사회에도 적용되는 경우가 많다. 철학에는 지혜에 대한 사랑이 담겨 있다. 철학을 배워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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