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톰과 제리」라는 유명한 미국의 애니메이션 시리즈가 있습니다. 우둔한 고양이인 톰과 꾀많은 생쥐인 제리가 갖가지 방법으로 대결을 벌이는 이야기인데요. 결론은 항상 작고 날쎈 제리가 힘세고 성깔 있는 톰을 골려 먹고 이겨 먹는다는 것입니다. 이 애니메이션은 아카데미상을 수상하기도 했고, 거의 전세계에 방영되어 수많은 아이들의 사랑을 받아 왔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1980년부터 방영되기 시작하여, 2002년까지 재방이 되었다고 하는데요. 저 역시 어린 시절 이 애니메이션을 빼놓지 않고 챙겨 보고는 했습니다.  

  이 시리즈에는 늘 인상적인 장면이 등장하는데요. 그것은 제리의 꾐에 빠져 높은 곳에서 떨어지게 된 톰이, 아래를 내려다 보고 자신이 공중에 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후에야 비로소 떨어진다는 것입니다. 자연법칙에 의한다면, 당연히 불가능한 일일 텐데요. 이 시리즈에서는 거의 한 번도 빼놓지 않고, 이 추락 장면이 등장하고는 합니다. 어린 시절에는 그야말로 우스운 만화의 일부로만 여기고 지나갔는데요. 지금 돌이켜보면, 그 장면은 분명 인생의 한 자락 진실을 감추고 있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가 존재의 전환에 해당할 만한 큰일을 겪을 때는, 우리의 몸은 이미 변화된 상황 속에 가 있더라도 마음은 여전히 이전 상황에 남아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업가가 갑자기 빈털터리가 됐다든가, 잉꼬 부부가 갑자기 파경을 맞이했다든가 하는 경우가 그렇겠지요. ‘나’는 이미 빈털터리이고 돌싱이지만, 마음만은 여전히 사업가이고 잉꼬 부부일 수 있으니까요. 톰이 공중에 떠서 머무는 그 순간은, 바로 마음이 변화된 상황에 적응하지 못하는 순간을 코믹하지만 정확하게 표현한 사변적인 장면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서유미의 「토요일 아침의 로건」(『문장웹진』, 2023년 2월)은 50살의 김성호를 등장시켜 생(生)과 사(死)를 가르는 아찔한 허공 위에 떠있는 절체절명의 순간을 그린 작품입니다. 중견 기업의 임원으로 착실하게 커리어를 쌓아가던 김성호는 갑자기 악성 뇌종양 진단을 받습니다. 톰이 공중에 떠서 곧 추락할 자신의 상태를 확인하는 순간이, 「토요일 아침의 로건」에서는 토요일 아침마다 이루어지던 영어 과외수업을 통해 드러납니다. 이 작품에서 자신이 공중에 떠 있음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데는 무려 4주의 시간이 걸리는군요. 

  김성호는 집요할 정도로 열심히 살아온 한국의 중년 남성입니다. 외국계 회사인 직장에서 “회의실과 회식 장소에 가면 필라멘트가 끊어진 전구처럼 앉아 있”는 것이 싫었던, 그는 무려 4년이라는 시간 동안 매주 토요일마다 “작은 골짜기라는 의미”의 로건이라는 이름으로 젤다에게 영어 과외를 받았습니다. 그런 노력이 인정받아 김성호는 커리어의 정점을 향해 치닫고 있었는데요. 승진자 명단에도 이름을 올리고, 그토록 원하던 미국 발령까지 앞두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 영광의 순간을 앞두고, 김성호는 ‘발령’이 아닌 ‘발병’의 소식을 듣게 됩니다. 머리가 묵직하고 눈이 침침해서 찾아간 병원에서, 뇌종양이라는 판정을 받게 된 것입니다.

  그토록 열심히 살아왔던 김성호이기에, 이전의 삶에서 비롯된 ‘생의 관성’은 한동안 지속됩니다. 그는 4년 동안 매주 만나 공부해 왔던 젤다에게 이제 수업을 그만두어야 한다고 말해야 하지만, 차마 그 말을 꺼내지 못하는군요. 젤다에게 수업을 그만두겠다고 말하는 일은, 김성호 자신이 뇌종양 환자임을 스스로 인정하는 일과 맞물려 있습니다. 지금 김성호는 “한 달 동안 일어난 일을 아내에게 어떻게 전해야 하나”를 고민하고 있기도 하니까요. 김성호가 고민하는 4주의 시간은, 젤다와 함께 한 4년이라는 시간에 맞먹는 무게를 갖고 김성호는 물론이고 독자에게도 육박해 들어옵니다.

  「톰과 제리」의 톰이 매번 자신의 상황을 인지하고 추락하는 것처럼, 「토요일 아침의 로건」의 김성호도 결국 변화된 자신의 상황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게 됩니다. 그러한 수용은 그토록 열심이었던 생의 욕망들을 덜어 내는 일이기도 합니다. 김성호는 “영어를 제대로 쓰고 싶다거나 좋은 지위에 올라가고 싶은 마음이 완전히 떠나가는 걸” 느끼고서야, 비로소 젤다에게 영어 공부를 그만두겠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4주의 시간을 통해서야, 김성호는 드디어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고 자신이 무엇을 선택했는지” 깨달은 것이겠죠. 이러한 깨달음의 결과, 작품의 마지막은 “그러자 비로소 마음이 아팠다.”로 끝납니다. 아마 인간으로서 로건이 마지막에 느끼는 이 ‘아픔’에 동참하지 않기는 어려울 겁니다. 로건처럼 생과 사와 같은 치명적인 존재의 전환은 아닐지라도, 우리의 삶 역시 매번 변화의 과정에 놓여 있게 마련이니까요. 그렇기에 우둔한 톰이나 성실한 로건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도 허공 위에 떠서 다가올 운명을 기다리고 있는 존재들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뇌종양을 앓으면서도, ‘아모르 파티(Amor Fati, 운명을 사랑하라)’를 외친 니체의 절규를 허공에 뜬 모든 이들에게 전하고 싶습니다. 

저작권자 © 숭대시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