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에 태어나 2002년 「노크하지 않는 집」으로 등단한 김애란만큼 21세기에 많은 주목을 받은 작가도 드물 겁니다. 김애란이 천재적인 재능으로 문학사에 남긴 것들 중에서도, 자기 세대의 청춘들이 겪는 일상에 대한 묘사는 그야말로 발군이었는데요. 그랬던 김애란이 어느새 사십대가 되었듯, 그녀의 소설 속 인물들도 나이가 들어가고 있습니다. 「홈 파티」(『에픽』, 2022년 4월)는 청춘을 통과한 이연과 성민을 통하여 한국사회를 가로지르는 계급의 분열선을 형상화하고 있습니다. 이 때 계급을 나누는 증표는 ‘덕과 인품’이라는데 이 작품의 문제성이 있습니다.  

  연극배우인 이연은 대학 후배인 성민을 통해 소위 ‘잘 나가는’ 사람들의 홈 파티에 초대 받습니다. 2007년 발표한 「도도한 생활」에서 김애란은 “요즘 계급을 나누는 건 집이나 자동차 이런 게 아니라 피부하고 치아라더라,”라는 강렬한 문장을 남긴 바 있는데요. 지금 홈 파티에 모인 사람들을 표상하는 것은 더 이상 ‘피부’나 ‘치아’가 아닙니다. 이연은 홈 파티에서 웃고 떠드는 와중에도 “그들에게서 알 수 없는 힘”을 느낍니다. 그 ‘힘’의 기원이 이 작품에서는 내적인 자질로 그려지는데요. 일테면 “단단한 안정감”, “미감과 여유”, “스스로를 향한 통제력”, “단단하고 날렵한 기운” 등이 그것입니다. 이런 ‘힘’을 가진 사람들의 상대편에는 이연을 포함한 “‘나머지’ 사람들”이 있습니다. ‘나머지’ 사람들의 특징 역시 내적인 자질로서 설명되는데요, 그것은 “자신을 이기지 못하”고, “잘못된 선택을 하”며, “변명하고 나약”하여,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것으로 규정됩니다.  

  그런데 오피스텔에 살며 여윳돈 오백만 원이 없어 쩔쩔매는 성민과 이연은 어떻게 이 대단한 홈 파티에 초청받을 수 있었을까요? 그것은 홈 파티에 모인 사람들이 속물들이기 때문입니다. 이 작품에서 내내 암시되듯이, 이들의 인격적 자질은 진정성에 바탕한 것이 아니라, 타인의 인정에 목을 맨 결과입니다. 그렇기에 자신들의 ‘부유함(인품)’을 확인받기 위한 거울로서 이연과 성민이 선택된 것이겠죠. 처음 연극배우인 이연은 홈 파티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배역)을 충실하게 수행(연기)하며, “그냥 이렇게 놀다 가도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 우아하고 세련된 홈 파티에는 결국 파열음이 울려퍼지게 됩니다.   

  첫 번째 파열음은 팔십여 년 전 영국에서 소량 생산된 빈티지 찻잔을 두고 발생하는데요. 파티에 모인 사람들이 모두 경탄의 눈으로 찻잔을 바라보는 와중에, 성민만은 “단순하고 모던한 게 좋더라고요.”라며 오대표의 무한 자부심에 스크래치를 냅니다. 그러자 성형외과 의사인 박이 “저가 인테리어 상품에 창궐하는 그런 모던은……”이라며, 성민에게 면박을 주는데요. 이 순간 홈 파티에서 훌륭한 연기를 해내던 이연은 처음으로 “창궐이라니. 사람들이 한정된 자원 안에서 나름 생활에 윤기를 주려 하는 게 무슨 질병이라도 되나?”며 불만을 드러내고, 곧 그 분위기는 주변으로 퍼져나갑니다. 그러나 이 첫 번째의 파열음은 두 번째에 비하면 애교에 가깝습니다. 

  오 대표는 자신의 재산이나 명품을 자랑하는 대신, 갑자기 자신이 주말마다 고아원으로 봉사활동을 다닌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만 18세가 되어 시설에서 나가는 아이들은 정착금으로 오백만 원을 받는데, 아이들이 그 돈을 명품 가방 쓰는 데 사용한다며 한탄하네요. 이 순간 이연의 연기는 결국 파탄나고 맙니다. 이연은 시설을 나간 아이들이 자신을 제일 잘 감출 수 있는 방법은 명품 가방을 사는 것밖에 없다고 강변하는 것입니다. 이연의 말에 홈 파티에 모인 사람들은 묘한 눈빛을 주고받고, 이연은 무대에서 퇴장하기로 결심합니다. 연극배우인 이연은 ‘잘 나가는’ 사람들의 인정욕망을 충족시켜주는 연기에 실패하고 말았으니까요. 

  퇴장하는 순간, 이연은 그만 오 대표의 팔십 년 넘은 빈티지 잔 세트를 깨뜨리고 마네요. 이 순간 빛나는 연기를 하는 것은 오 대표입니다. 오 대표는 화를 내는 대신, 이연을 진정시키고 위로하며 자신의 ‘덕과 인품’을 만방에 과시합니다. 이 순간 오 대표의 얼굴에는 “만족감이라 할까 승리감”이 떠오르는데요, 이러한 감정은 이연이 자신의 보물을 깨트렸음에도, 눈부신 연기를 통해 사람들에게 ‘덕 있는 자’라는 자신의 모습을 각인시켰기에 가능한 것이겠지요. 오 대표는 “계산이 정확하신 분”답게 깨진 찻잔에 대한 대가를 확실하게 챙긴 것입니다. 

  그러나 이연도 무대에서 잔뼈가 굵은 프로입니다. ‘만족감과 승리감’에 가득 찬 오대표가 이연의 패배를 확인하고자 “오늘 어땠어요?”라고 묻는 순간, 이연은 “마치 지금 자신이 처한 상황과 사랑에 빠진 사람”이라도 된 것처럼, “너무너무 좋았어요, 정말.”이라고 들뜬 목소리로 대답합니다. 오 대표의 의도는 당황하며 자신에게 사과하는 이연을 통해, 자신의 너그러움을 최고조로 과시하는 것이었을 텐데요. 이 순간 이연은 프로답게 오 대표의 의도와는 무관한 연기를 멋지게 해낸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내면에까지 그어진 이 사회의 계급적 분할선을 고작 수십억대 아파트의 조그만 응접실을 배경으로 이토록 멋지게 펼쳐 보인 김애란에게 아낌 없는 찬사를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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