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부 유럽에 위치한 헝가리는 우리나라 정도의 크기를 가진 작은 나라로, 수도 부다페스트는 동유럽의 파리, 다뉴브의 진주라고도 불린다. 190만 명의 인구가 거주하는 부다페스트는 중부 유럽 최대 도시이다. 부다페스트는 헝가리의 행정, 비즈니스, 문화의 중심지로서 헝가리의 모든 것이 시작되고 끝나는 곳이다. 부다페스트는 도심을 가로지르는 다뉴브강을 중심으로 서쪽의 부다와 동쪽의 페스트로 나뉘어 지는데, 1872년 부다와 페스트, 오부다라는 세 곳이 합쳐저 오늘날의 부다페스트가 탄생하였다. 

  부다페스트는 19세기 후반부 헝가리 전성시대의 시작과 함께 새롭게 건설된 도시답게 아름다운 건축물과 잘 정비된 도로망, 편리한 기간시설을 갖춘 현대적 도시이다. 이웃의 프라하나 바르샤바에 비해 중세적 풍모는 부족하지만, 신고전적이고 바로크적이며 아르누보양 식의 건물이 즐비한 부다페스트는 세기말(fin de ciècle) 세련된 도시 여인의 자태를 닮은 낭만적인 도시이다. 부다페스트는 19세기 말 급속도로 발전한 산업과 이를 뒷받침하는 도로, 교통, 통신의 비약적인 발전에 힘입어 중부유럽 최대의 도시가 됐으며, 문화적으로 이웃 빈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명성을 누렸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두 번째 수도로 자리매김한 부다페스트는 발칸 반도와 유럽의 동부 지역에서 유럽의 서부 지역으로 나가는 관문 도시로서 국제적 성격이 짙은 도시였다. 

  부다페스트의 이러한 성격은 이 도시가 동유럽과 서유럽, 아시아와 유럽을 연결하는 역할을 했으며, 그 흔적은 부다페스트를 거쳐 이스탄불에 이르는 ‘오리엔트 익스프레스’라는 매력적인 명칭의 열차에서도 살짝 들어난다. 1949년부터 1989년의 체제 전환 이전까지 40년간 사회주의 체제를 유지하였으며, 우리에게는 1956년 부다페스트 반소, 반공 봉기로 잘 알려져 있다. 1989년 동유럽 국가 중에서 최초로 우리나라와 외교관계를 수립한 헝가리는 최근 한류의 열기로 가득하다. 민족적으로 아시아에 기원을 둔 헝가리인은 한국과 한국인에게 우호적이다. 

  특히 헝가리에 우리나라의 삼성, SK, LG, 에코프롬 등 대기업이 진출하면서 한국은 헝가리의 최대 투자국이 되었고, 이들 기업에서 필요로 하는 한국어 인력의 수요로 인하여, 노벨상 수상자를 5명이나 배출한 부다페스트대학교(ELTE)에 있는 한국학과는 이 대학의 최고 인기학과가 되었다. 2023-24학년도에만 170여명의 신입생이 한국어과에 입학했다고 하니, 한국어와 한국문화에 대한 인기는 두말할 나위가 없다. 이러한 기세에 힘입어 한국 음식, 한국 드라마와 영화 등에 대한 관심도 높아져 부다페스트 한국문화원은 이곳 최고의 명소 중의 하나가 되었다고 한다. 

  이제 아르누보와 신고전주의 양식이 조화롭게 자리한 부다페스트 시내에서 한국어를 하는 헝가리인을 만나는 일은 그리 흔한 일이 아니다. 필자가 공부하던 1990년대에는 겨우 100여명 남짓한 한국인이 거주하던 이곳에 지금은 2~3만명을 헤아리는 한국인이 살고 있다고 하니 격세지감을 느낀다. 현지에 있는 한국 관련 기업만 100여개를 훌쩍 넘겼고, 이들 회사들에서 수시로 필요 인력을 모집한다고 하니, 우리 숭실인도 기회의 땅으로 떠오르는 헝가리에 관심을 가져 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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