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유독 박찬욱 감독의 영화를 좋아한다. 내가 그의 영화를 주기적으로 떠올리고 여러 번 곱씹어보는 이유가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그의 작품은 대개 뚜렷한 주제 의식 속에서 관객에게 질문을 던진다. 관객이 끊임없이 생각하게 만든다.

  「헤어질 결심」을 처음 보았을 때는 정말 큰 충격을 받았다. 헤어질 결심을 한 후에 깨닫는 사랑이라는 소재가 신선했다. 헤어진 순간에 찾아오는 사랑의 역설, 이별과 사랑의 아이러니를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복수 3부작 중 하나인 「올드보이」에서 우진은 본인의 복수를 위해 대수의 복수를 부추긴다. 당신에게 복수하기 위해 당신이 나에게 복수하게 하는 천재적인 발상에 소름이 돋을 정도이다. 복수라는 소재 속에 감춰진 것들은 영화의 말미에서 서서히 드러나며 어느새 스며든다. 그의 작품에서 묘사된 역설, 반어적 요소를 발견할 때면 생각에 잠긴다. 작품이 담고 있는 주제가 드러나면서 인물의 대사, 연출 등에서 의미를 찾고자 한다.

  내가 생각하는 좋은 작품은 관객을 생각하고 움직이게 만들어야 한다. 이동진 영화 평론가는 ‘영화는 두 번 시작된다. 처음 한 번은 극장 안에서, 그다음 한 번은 극장 밖에서.’라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영화는 상영될 때 한 번, 상영이 끝나고 밖에서 영화를 곱씹으면서 한 번 시작된다. 관객은 수동적이면서 능동적인 존재이다. 극장에서의 관객은 감독의 창작물을 받아들이는 정도에 머무르지만, 극장을 벗어나는 순간 영화를 다시 떠올리며 생각에 잠긴다. ‘그 사람은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 ‘나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왜 이런 일이 발생했을까’ 등. 끊임없이 생각하고 이를 나열하면 마음 속에 잔잔한 울림을 남기고 시간이 흘러도 기억에 남는 작품으로 거듭난다.

  관객을 능동적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작품 속에서 관객에게 의문을 남기거나 그들이 스스로 질문하게 만들면 된다. 명작은 질문과 의문만 남긴다. 정답을 알려주지 않는다. 영화 속에서 질문과 정답을 알려준다면 극장을 떠나는 순간 모든 것이 휘발된다. 더 이상 생각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영화를 보고 느낀 ‘재밌었다’, ‘감동적이다’ 등 단순한 감상만 남을 뿐이다. 그러나 관객에게 질문만 하는 작품은 다르다. 아무도 알려주지 않은 답을 찾기 위해 사람들은 사유한다.

  결론적으로 내가 박찬욱 감독의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는 나를 생각하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한 그의 작품을 보면 나만의 답을 찾기 위해 생각하고 상상한다. 수동적인 관객에서 나만의 해답을 찾는 능동적인 주체가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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