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라는 강렬한 사회의식을 새로운 소설 문법에 담아내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는 작가입니다. 그런 정보라가 이번에는 도서관이 사라진 디스토피아(dystopia, 현대 사회의 부정적인 측면이 극단화한 암울한 미래상)를 그린 『도서관 물귀신』(『대산문화』, 2023년 겨울호)을 발표했습니다. 작가의 출세작 제목이 ‘저주토끼’여서일까요? 이 작품을 읽는 내내 작가의 역할을 비유할 때 자주 사용하는 ‘잠수함 속 토끼’라는 말이 떠올랐습니다. 토끼가 인간보다 산소결핍에 민감하다는 것을 안 수병들은, 혹시라도 발생할지 모를 ‘산소 부족’ 현상을 감지하기 위해 잠수함에 토끼를 태웠다고 하는데요. 아마도 ‘잠수함 속 토끼’라는 말은, 작가란 누구보다 먼저 세상의 모순과 위기의 징후를 알아채고 이를 사람들에게 알려야 한다는 의미로 사용된 비유일 겁니다. 

  정보라의 「도서관 물귀신」이 배경으로 삼고 있는 세상에는 도서관이 고작 세 개만 남았네요. 김 선생은 그 중의 한 곳에서 비정규직 사서로 근무하며 책과 도서관을 지키기 위해 분투합니다. 김 선생이 근무하는 도서관은 본래 5층 건물 전체를 도서관으로 사용했지만, 현재는 가장 아래층인 지하 3층만을 도서관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나머지 층이 모두 돈벌이 용도로 사용된 지는 이미 오랜 전이네요. 황당한 것은 어린이가 이 도서관에 들어오려면, 부모님은 물론이고 교장 선생님의 서명까지 받은 출입 사유서를 제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아이들로 북적여야 마땅한 도서관은 어느새 ‘노키즈존’(No kids zone)이 되어 버렸습니다.  

  이 암울한 상황에 도서관에 물귀신이 나온다는 소문까지 떠돌기 시작합니다. 언젠가부터 책이 젖고 서가 주변에 물이 흥건하게 고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김선생은 물귀신을 잡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이고, 물귀신이 누수(漏水)에서 비롯되었음을 발견합니다. 그러나 이 도서관에서 ‘물귀신’을 쫓아낼 방법은 없습니다. 누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김 선생이 백방으로 노력하지만, “시에서는 중앙에 요청하라고 하고 중앙에선 예산 없으니까 지자체에 문의하라”는 식으로 아무도 책임을 지려 하지 않으니까요. 그러나 3개월 후에 도서관이 아예 사라질 예정이라는 것을 고려한다면, 누수 문제는 차라리 애교에 가까운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폐관을 앞둔 현재 김 선생의 가장 중요한 업무는 국립중앙도서관으로 옮길 10퍼센트의 책과 폐기할 90퍼센트의 책을 분류하는 것입니다.    

  『도서관 물귀신』은 단편이면서도, 책과 교양이 사라져가는 모습뿐만 아니라 비정규직이나 가짜 뉴스 같은 여러 가지 문제를 건드리는 작품입니다. 김선생이 물귀신을 잡는 과정에서 유일하게 도움을 주는 사람은 야간 경비원 ‘박씨 아줌마’입니다. “파리 목숨”인 박씨 아줌마가 소속된 용역업체는 1년 이상 근무하면 줘야 하는 퇴직금 탓에, 박씨 아줌마와 10개월씩 끊어서 재계약을 하는데요. 그 외에도 박씨 아줌마는 비정규직이기에 여러 가지 불합리한 일을 감내할 수밖에 없습니다. 아이러니한 것은 도서관을 살리기 위해 애쓰는 것은, 그 누구도 아닌 언제든 해고될 수 있는 비정규직 김선생과 ‘박씨 아줌마’ 뿐이라는 점입니다.  

  작품에서는 이처럼 다양한 ‘산소 부족’ 현상이 펼쳐지고 있는데요. 그 다양한 문제의 밑바탕에는 하나의 근본적인 원인이 존재하는데, 그것은 바로 ‘돈의 논리’가 전면화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테면, 도서관을 ‘노키즈존’으로 만든 이유가 “시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공기관에 세금도 안 내는 미성년자들”이 와서 “뭐든지 공짜로” 쓰는 것을 용납할 수 없기 때문이라는 것을 들 수 있겠네요.  

  처음에 저는 「도서관 물귀신」이 암울한 미래를 그린 디스토피아라고 규정했는데요. 과연 정보라가 보여주는 이야기들을 미래의 가상이라고만 단정 지을 수 있을까요? 이 모든 이야기들은 ‘미래의 가상’이 아니라 ‘현재의 실상’으로 우리의 주위에서 지금 펼쳐지고 있는 이야기는 아닐까요? 이러한 경각심을 일깨운 것만으로도 정보라는 ‘잠수함 속 토끼’라는 작가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런데 정보라가 진정으로 독자들에게 말하고자 한 ‘산소 부족’ 현상은 책과 지식이 깡그리 무시당하는 현실이 아니라, 어쩌면 그러한 현실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무력한 자세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생각은 작품의 마지막 대목에서 확인할 수 있는데요. 모든 것이 암울한 상황에서 도서관의 가장 약한 존재들인 ‘박씨 아줌마’와 김 선생은 절망이 아닌 희망을 갖고 행동에 나섭니다. ‘박씨 아줌마’는 사라질 도서관을 생각하며 통곡하는 김 선생에게 “알아보면 다 방법이 있을 거예요”라는 말을 건네고, 김 선생 역시 마음을 추스려 “책을 구하기 위해 분연히 일어”섭니다. 어쩌면 정보라가 진정으로 알려주고자 한 우리 사회의 ‘산소 부족’ 현상은 모든 것이 ‘돈의 논리’에 의해 훼손되는 현실보다도, 그러한 현실에 지레 겁먹고 주저앉는 우리들의 모습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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