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일은 만우절이자 배우 장국영이 세상을 떠난 날이다. 그 때문에 해마다 4월에 가까워질 때면 장국영 대표작의 재개봉 소식이 들린다. 매년 재개봉 하는 영화들은 조금씩 달라지지만, 영화 ‘패왕별희’만큼은 절대 빠지지 않고 개봉한다. 

  영화 패왕별희는 같은 제목의 중국 경극을 소재로 했다. 경극 패왕별희는 제목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패왕(항우)과 그의 연인, 우희가 이별한다는 내용이 담긴 비극적이지만 화려한 예술이다.

  장국영이 맡았던 데이 혹은 두지(데이의 본명)는 영화에서 스스로를 버리게 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는 다지증으로 태어나 경극을 할 수 없는 운명이었으나 어머니에게 손가락을 잘리고 경극단에 들어간다. 극단에 들어간 두지는 '난 본디 계집으로 사내도 아닌데'라는 연극 대사를 '난 본디 사내로서 계집도 아닌데'라고 말해 크게 혼나면서도 절대 바른 대사를 내뱉지 않았다. 남자아이라는 정체성을 버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결국 입가에 피를 흘리고 눈가에 눈물을 매단 채 아이는 대사와 배역을 완벽하게 소화한다. 손가락을 잘리고 강제로 들어가게 된 극단에서, 혼나면서도 지키려 했던 남자라는 정체성까지 버리게 된 것이다. 그런 두지는 훗날 데이가 되고, 우희 역할을 맡는 배우가 된다.

  결국 극단에 들어간 것부터 문화대혁명으로 경극이 파괴되고 우희처럼 스스로 목숨을 끊음으로써 죽음을 맞는 것까지, 데이의 삶에 자신의 의지는 단 한 줄도 들어가지 않았다. 그가 배우가 된 이후로 두지는 사라지고, 데이만 남았다. 그러나 영화를 보고 나면 두지도, 데이도 모두 사라진 채 우희만이 남아 있는다. 우희만이 존재하는 삶, 이게 두지의 인생이었던 것이다. 

  이렇게 패왕별희는 비극적인 역사 속에서의 개인과 예술을 화려하면서 애절하게 표현했다. 덕분에 이 작품은 한국인들에게도 가장 사랑받는 중국 영화 중 하나이며 나에게는 중화권 영화에 빠지는 계기가 된 영화이다.

  많은 사람들은 패왕별희에서의 데이의 삶과 장국영의 삶을 동일시한다. 화려한 예술인이라는 점에서, 그리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점에서 두 인물이 겹쳐 보이기 때문이다. 또한 유명인의 죽음은 대중에게 큰 충격으로 남기에, 장국영의 삶이 그의 죽음처럼, 또 패왕별희의 데이처럼 슬펐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당연히 나에게도 패왕별희와 장국영은 애절하게 남았고, 그렇게 나는 패왕별희를 본 이후 4월 1일을 거짓말을 하며 즐기는 날로 맞이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이제는 장국영을 마냥 슬프고 우울한 이미지로 생각하지 않으려 한다. 패왕별희 외에도 장국영은 많은 작품 속에서 항상 빛나는 모습을 하고 있다. 영화를 진정으로 사랑했던 그는 배우 활동을 하며 행복했을 것이 분명하다. 자신의 인생을 살지 못했던 영화 속 데이와 달리, 장국영은 자신의 일에 적극적이고 애정이 넘쳤다. 그러니 이제는 죽음으로 장국영을 기억하고 슬퍼하기보다 그와 그의 작품을 더욱 사랑하기로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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