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연의 「반려빚」(『문학과사회』, 2023년 여름호)은 반려자나 반려동물처럼 빚과 평생 동안 짝이 되어 살아가야 하는 우리 시대 젊은이의 모습을 그린 소설입니다. 김지연은 주로 Z세대의 일상과 심리를 새로운 감각으로 형상화하고는 했는데요. 이번 소설은 이들이 겪는 채무라는 문제를 심리나 관계라는 미시적 차원에서 다룬 독특한 작품입니다.  

  신대륙의 정복자들은 단순한 탐욕이 아니라 상상을 초월하는 탐욕을 보여, 지금까지도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데요. 최근에 알려진 바에 따르면, 인간성을 몰각한 이들의 탐욕은 그들이 채무자였다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다고 합니다. 대표적인 사례로 아스텍 문명을 파괴한 에르난 코르테스는 언제나 부채에 짓눌려 있던 사람이었다고 하는데요. 그는 냉철하고 계산적인 탐욕의 심리보다는 수치심과 분노, 그리고 복리로 축적되기만 하던 부채의 긴박성 등이 뒤얽힌 심리로 하나의 문명을 박살냈다는 것입니다. 

  김지연의 「반려빚」은 그토록 무서운 빚이 오늘날의 젊은이들과 동거하게 되는 방식을 보여주는 소설입니다. 서일과의 긴 연애 끝에 정현에게는 빚만 1억 6천이 남습니다. 번번이 서일은 정현에게 돈을 빌려달라고 했으며, 그때마다 정현은 “자신의 여생을 맡길 마음까지도 먹었던 사람”인 서일에게 대출까지 받아 돈을 빌려주고는 했던 것입니다. 「반려빚」의 가장 빛나는 대목은 무심한 듯, 담담하게 정현이 채무자가 되면서 겪게 되는 심리의 변화를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본래 빚이 진정으로 무서운 것은 채무자의 육체적·지적 능력을 빼앗는 것뿐만 아니라, 심리를 통제함으로써 채무자의 실존적·사회적 힘들까지도 착복하기 때문입니다. 본래 인도유럽어에서 부채를 뜻하는 단어와 죄의식을 뜻하는 단어는 동의어라고 하는데요, 일례로 독일어 'schuld'가 부채와 죄의식을 동시에 의미하는 것을 들 수 있겠죠. 이처럼 빚은 죄의식을 동반하며, 이러한 죄의식은 채무자로부터 온전한 삶의 기회를 앗아갑니다. 정현은 “빚이 1억 6천 있는 사람”인 자신은 누구도 만날 수 없는 사람이 되었다고 여깁니다. 또한 정현은  예전에는 세상이 “친구가 될 수 있을 사람들로 넘쳐나는” 곳이었는데, “이제는 도통 못 믿을 사람들로 가득해졌다”고 생각하는군요. “길바닥에 담배꽁초 하나 버리지 않았”으며, “미친년”이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서일을 사랑했을 뿐인, 정현은 어느새 사람을 만날 수도 믿을 수도 없는 사람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더욱 문제적인 것은 빚으로 인해 정현이 언젠가부터 “거의 매 순간 돈에 대해 생각”하는 사람으로 변했다는 점입니다. 그렇기에 언니나 부모와도 거리가 멀어진 채 혼자 지내는 정현에게는, “다 때려치우고 싶다거나 죽고 싶다 생각했다가도 그래도 저건 다 갚고 죽어야지…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1억 6천의 빚이 “반려자”인 것입니다. 빚은 정현이 “잘 돌보고 보살펴 임종에 이르는 순간까지 지켜보아야 할 그 무엇”이기까지 하네요. 

  그러나 정현과 빚이 맺는 반려의 관계는 결코 평등하지가 않습니다. 그것은 정현의 꿈을 통해 드러나는데요. 꿈 속에서 정현은 반려빚과 함께 산책을 갑니다. 이 때 목줄을 쥔 쪽은 놀랍게도 정현이 아닌 빚이군요. 정현은 목이 말라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고 싶다고 반려빚에게 얘기하지만, 반려빚은 목줄을 단호하게 잡아당기며 정현에게 “집에 믹스커피 있잖아.”라고 대답할 뿐입니다. 이후로도 반려빚은 종종 정현의 머릿속에 등장해 “정현이 돈을 쓰려고 할 때마다 시비를 걸”고는 하는군요.    

  다행히도 이혼녀가 되어 나타난 서일은 정현의 빚을 모두 갚아줍니다. 정현은 빚을 다 갚고 난 후, 처음에는 “쑥과 마늘만 먹고 100일을 버텨낸 곰”처럼 자신도 버텨냈다고 자부했다가, 곧 자신이 “먹으면 사람이 되게 해준다고 소문이 나서 다들 잘근잘근 씹어 먹으려고 손을 뻗치는” 쑥이나 마늘이라고 생각합니다. 정현이라는 ‘마늘’과 ‘쑥’을 씹어댄 것에는, 정현의 감정을 이용한 서일뿐만 아니라 은행 등을 비롯한 우리 사회도 포함될 것입니다. 그리고 정현은 “서일 덕분”에 “다만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서 그 사람에게 아낌없이 다 주고 싶었을 뿐”인 자신이, “그 누구보다도 열심히 셈하고 값을 따져보”는 사람이 되었음을 깨닫습니다. 이후 꿈속에서 다시 만난 반려빚은 드디어 정현을 떠나가며, 꿈에서 깨어난 정현은 홀가분함을 느끼면서도 “마침내 0이 된 기분”을 느낍니다. 저는 왠지 제로로 돌아간 정현이, 그나마 빚이라도 반려자로 삼아 살아가는 모습보다 행복해 보이지 않는군요. 이런 기분은 저만 느끼는 걸까요? 아니면 여러분들도 그런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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