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이화동 사거리에서 혜화동 로터리, 성균관대 인근을 지칭하는 대학로는 오래전부터 전 세계에서 그 유례를 찾을 수 없는 극장 밀집지역으로써 손꼽혀 왔다. 특히 지난 2~3년 사이에 30~40여개의 극장이 속속 문을 열면서 ‘아시아의 브로드웨이’라고 까지 불리게 되었다. 이렇듯 현재 대학로는 극장 100개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하지만 일면에선 공연장의 급속한 증가를 몇 가지 부정적 원인과 그에 따라 비판적 시각을 갖고 결론을 내리고 있는데 이를 알아봄으로써 소극장의 위기에 대해 알고 그에 대해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어떤 길이 있는지 모색해 보자. 편집자


연극인들의 자생적 문화지구

연극을 하고자 하는 열망으로 가득 찬, 젊은 혹은 나이 든 연극인은 자신의 열정을 위해 이곳저곳을 전전한다. 하지만 예술을 하고자 하는 그들은 가난하기에 임대료가 싼 동네를 찾게 된다. 그들은 적당한 곳을 찾고 그렇게 해서 정착한 곳은 연극을 사랑하거나, 혹은 연극인들이 내뿜는 열정을 맛보려는 사람들로 북적대기 마련이다. 그런 과정을 거듭하면서 동시에 공연 문화계에 엄청난 발전을 이룩한 곳이 바로 대학로이다.
이러한 발전에 화답이라도 하듯 2004년 5월 서울시는 종로구청과 함께 대학로를 ‘문화지구’로 지정하여 사람들의 관심에 더욱 불을 지폈고, 그에 대한 인식으로 대학로를 공연 예술의 중심지로 우뚝 서게 만들었다. 하지만 ‘문화지구’ 지정은 역설적이게도 많은 폐해를 불러 일으켰다.

상업성으로 얼룩진 예술

문화와 예술의 거리 대학로에는 예술적 창조, 그에 따른 파격, 예술인들의 공존이 살아 숨 쉬고 있었다. 하지만 사람들이 자연스레 많이 모이는 곳에 장사꾼들이 모이는 것은 불가피하다. 그 곳엔 창조 대신 소비가, 파격 대신 규격이, 그리고 공존 대신 적자생존의 법칙이 적용되게 된 것이다. 시장의 논리, 자본의 침입이 대학로에 개입되면서 순수 연극을 하고자 하는 예술인들은 대학로에서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그들의 공간을 잃거나 떠나게 된다. 하지만 이 전철을 밟은 것은 60년대 명동이 그랬고, 80년대 신촌이 그랬다. 신촌에서 밀려난 연극인들이 다시 모여 조성한 곳이 바로 대학로이다.


정부의 개입은 긍정적인 파급효과를 예상하게 하지만 오히려 역효과가 나버렸다. 문화지구로 결정한 이후 빌딩이 잇따라 들어섰지만 그와 동시에 극단과 소극장은 하나 둘 사라지기 시작했다. 턱 없이 오른 비싼 임대료 탓이었다. 대신 대형 음식점과 유흥업소, 패션상품점 등이 들어찼다. 기껏해야 개그 등 상업적 공연장만 하나 둘 늘었을 뿐이었다. 다시 말해, 신촌과 마찬가지로 대학로는 또 다른 유흥가로 변질된 것이다.


또 다른 상업성의 폐해로 큰 피해를 입은 것은 홍대의 사례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홍대 앞 자본의 힘으로 구축 된 대형 문화공간들이 홍대 앞에 출현한 것은 초유의 일이었다. 홍대 앞에는 거대한 문화 시설이 없었지만 그와 동시에 그것은 소규모 자영업자들과 무명 예술가들이 공존하며 독특하게 그들의 문화를 유지할 수 있었던 힘이기도 했다. 이 주최인 KT&G는 ‘문화허브 상상마당’으로 명명된 건물을 짓는데 또 다시 상업적 입지로 인해 소규모 문화공간들의 경영난은 더욱 심화될 전망이다.


딜레마에 빠진 공연장

대학로가 연극 공간의 탁월한 장소로 널리 알려지며 우후죽순으로 생겨난 공연장들이 있음을 위에서 밝힌 바 있다. 이는 물론 극장의 증가와 동시에 공연이 그만큼 활발히 이뤄진다는 반증으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대학로에 공연장이 많은 것이 반드시 좋은 것만이 아니라는 전문가들의 분석이 잇따르고 있다. 한 조사에 따르면 대학로 내엔 300석 미만의 소극장이 절대적으로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공연 예술의 다양성은 물론 산업적 측면에서도 문제가 많다고 지적한다.
대학로에서 공연을 제작할 때 수익을 맞출 수 있는 최소한의 객석 규모를 대개 150석이라고 보는데, 이것도 장기 공연이 가능할 경우에 한하는 것이다. 이러한 형태의 공연장이 급격하게 늘어나는 것은 질 높은 예술보다 부실한 작품을 양산한다는 것이 그 필연적인 귀결이다.
장소의 유명세 탓으로 공연장의 수가 증가 했지만, 구조적 문제에서 비롯됐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현행 공연 지원 방식은 소액 다건 방식인데, 이는 공연장의 급증을 부채질하는 것이다. 이에 더해 한국문화예술위원회나 서울문화재단의 지원 방식은 되도록 많은 공연들에 공연 제작비의 일부를 지원해 주는 방식이다. 이러다보니 수준 이하의 공연들이 우후죽순 격으로 올라가 공연장 수요를 늘리고 있는 실정이다.
공연장을 늘리자니 불가피하게 공연의 질이 떨어지고, 순수 예술을 위하자니 사람들이 몰려오며 상업성을 부추기고. 도대체 소극장은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 것인가?

소극장을 위한 길

우리의 관심이 교양이라는 영역에 있어서 수준이 높아진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 부류도 전체에 비한다면 다수가 아니라 소수일 것이다. 아직 공연장에서 공연 문화나 에티켓 같은 것이 부재상태인 것을 보면 이를 추론해 볼 수 있다.


공연의 수준은 둘째 치더라도 소재의 다양성과는 또한 별개로, 그 공연에 상업성이 침투했을 때 거액의 광고 투자를 통한 효과를 보는 공연만이 살아남는 것도 현실이다. 공연문화를 즐긴다고 하지만, 실제적으로 우리가 접하게 되는 공연은 유명 연출가에 의한 유명 배우의 캐스팅으로 이목을 끄는 공연일 뿐이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소극장의 위기를 단순히 그 곳에 상업성의 침투라고만 봐서는 안 될 것이다. 다시 말해 자본의 거대한 힘에 굴복한 것을 위기로만 치부해 버릴 것이 아니라 우리의 관심의 결여를 근본적인 문제로 지적해야 한다.


또한 공연이 상업적인 것과 결부되는 것을 무조건 배타적인 태도로 여길 것이 아니다. 이미 자본의 논리에 의해 많은 것이 돌아가고 있는 현실에서 완전한 예술과 상업성의 분리는 불가능하다. 연극을 한다는 것은 배우와 관객과의 소통이다. 관객 없이는 연극이 성립되지 않고 또한 배우 없이도 연극이 성립되지 않는다. 다시 말해, 아무리 순수 예술을 위한 자신들의 신념을 밀어붙이는 공연을 한다 하더라도 그 연극이 유지되고 진행되기 위해선, 더 많은 대중과 소통이 필요하다. 우리는 그런 융통성이 있는 공연과 배우를 만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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