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도서관(이하 도서관) 1층은 많은 학생들로 북적인다. 무료로 프린트물을 뽑기 위해서다. 지난 4월, 누군가에 의해 설치된 이 고마운 ‘PRINT FREE(무료 출력)’부스는 한 푼이 아쉬운 우리학교 학생들의 주머니를 굳이 열지 않게끔 해준다. 막연히 ‘아, 또 어느 기업에서 해줬겠거니….’라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이 무료 출력 부스는 우리와 같은 학부생들로 구성된 ‘인스코 코리아’에서 운영하고 있다. 그 곳에서 ‘이사’의 직책을 맡고 있는 김수호(벤처중소·3) 군은 자랑스런 우리학교 학생이다. 게다가 현재 그는 청년창업진흥협회에서 회장을 역임하고 있다. 그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하지 않은가. 김수호 군을 만나보자.

 

                       

 

 

한창 공부할 10대, ‘창업’에 눈뜨다!


김 군은 10대라는 이른 나이에 ‘창업’이라는 세상에 뛰어들었다. 그는 고등학교 1학년인 17세부터 수험생이던 19세까지 온라인 쇼핑물을 운영했다. 평소 옷을 좋아하고 잘 입는 그에게 친구들은 항상“이런 옷은 어디서 사?”라고 물어오기 일쑤였다. 이런 질문들에 착안해 그는 온라인 쇼핑몰을 열게 됐다. 그의 동네였던 안양 지역 사람들, 특히 주변 친구들이 그의 주 고객이었다. 가끔 한 번씩 옷 보따리를 학교에 가져가 친구들에게 팔기도 했단다.


아무래도 온라인 쇼핑몰이다보니 웹 관리에도 신경을 써야 했다. 그런 기술이 없는 그에게 많은 돈을 들이지 않고도 웹 관리를 할 수 있는 한 가지 좋은 묘책이 있었다. 바로 주변 친구들 중에서 웹 관리를 잘 하는 친구를 매수하는 것이다. 그때는 아직 때 묻지 않은(?) 10대여서 그랬는지 친구들을 매수하는 데 아이스크림 하나만으로도 통했던 시절이었다고.



나도 하면 되는구나!


김 군은 공업고등학교 출신이다. 건축회사 사장이 되고 싶은 마음에 인문계가 아닌 실업계인 공업고등학교로 진학하게 됐다. 고등학교 2학년 때까지는 친구들과 어울려 신나게 놀던 그는 고등학교 3학년이 되자 이래서는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부터 학업에 전념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일 년을 보내고 결국 그는 숭실대학교 벤처중소기업학부 06학번으로 입학할 수 있었다.


그에게는 건축회사 사장 이후 다른 꿈이 생겼다. 추상적이기는 했지만 바로 사업가가 되고 싶다는 것. 그때는 왜 그리도 막연하게 빌 게이츠처럼 되고 싶다는 마음을 품고 있었는지, 창업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벤처중소기업학부에 입학을 하고 나서 크게 실망했다고 전한다. 그의 기대와는 달리 실무보다는 이론 중심적이고, 학업 중심적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선배로 혹은 동기로 들어온 학생들 역시 창업에 대한 열정에 의해 이 학과에 들어왔다기보다는 단지 점수에 맞춰 입학한 학생들이 많았던 것이다. 그렇게 김 군은 학과에 적지 않은 실망을 했고, 그때부터 외부 활동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누가 뭐래도 나는야‘한국의 스티브 잡스’, 그리고 시작된 스무 살의 첫 번째 창업


스무 살의 그는 스티브 잡스의 열렬한 팬이었다. 비록 스티브 잡스에게 뛰어난 기술력은 없었지만 사업을 다루는 뛰어난 능력과 사람들을 향한 강한 호소력, 자신의 제품을 멋지게 포장해 사람들에게 어필하는 모습들이 그렇게 멋있어 보일 수 없었다고. 스티브 잡스와 같이 자신만의 철학이 뚜렷하고, 개성 있으며, 그 자신이 기업의 아이콘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을 ‘한국의 스티브 잡스’라고 소개하는 명함을 만들어서 한동안 가지고 다녔단다.


한창 그 명함을 들고 다니던 때 한 CEO가 주최하는 세미나에 간 적이 있었는데 그 세미나에 참석한 사람들끼리 서로 명함을 주고받기도 했다. 그러던 중 세미나에 함께 참석했던 한 40대 아저씨가 그에게 연락을 해왔다. 대략적인 내용은 이렇다‘. 나에게 좋은 창업 아이템이 있다. 나와 함께 창업해 볼 생각이 없느냐.’라는 것이다. 그 아저씨는 농수산물 산업에서 일하시는 분이었다. 그의 말인즉슨 농수산물 유통에는 B급 농수산물의 재고를 버린단다. 그러나 안산에는 대형마트가 별로 없고, 조그마한 슈퍼마켓들이 많다는 것이다. 동네 슈퍼마켓에서는 C급 농수산물을 가지고 판매하고 있으니 어차피 버려질 B급 농수산물의 재고를 우리가 바로 주부들에게 직접 배달하면 어떻겠느냐는 것이 그의 아이디어였다. 그의 아이디어가 괜찮아 나가봤더니 낯익은 두 명의 대학생이 있었다. 알고 보니 그 아저씨가 그를 포함한 세미나에 참석했던 모든 사람들에게 연락을 돌린 것이다. 연락을 한 장본인인 40대 아저씨와 그를 포함한 두 명의 대학생들이 모였고, 그의 첫 번째 창업은 그렇게 시작됐다.


그가 대학생이 되고 나서 처음으로 벌였던 첫 번째 창업인 농수산물 유통산업은 일 년 정도의 진행 끝에 실패로 돌아갔다. 그들은 농수산물을 웹상으로 거래를 했는데, 주부들은 아무리 자신의 집 앞 슈퍼마켓보다 질 좋은 상품을 판매하더라도 인터넷 상거래를 신뢰하지 못했고, 직접 보고 사는 경향이 있더란다. 결국 매출은 점점 감소했고, 사업을 정리하기에 이르렀다.



21세의 어린 사장님


첫 번째 창업에서 좌절을 맛본 그는 또 다시 두 번째 시도를 했다. 이번에는 ‘FPS PC Tech 주식회사’라는 프랜차이즈 형태로 창업을 한 것이다. 그때 그의 나이는 무려 21세. 신림역 주변에 ‘서든 어택’이라는 게임의 전용 PC방인 ‘FPS PC방’을 열었다. 그때 그와 같이 일했던 사람들 중 그를 제외했을 때 가장 젊은 사람이 38세였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그는 인사관리에 있어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고.


20대 초반, 자신보다 더 나이가 많은 사람들을 다루기 위해 그가 선택한 방법은 보스형, 즉 군대형 리더쉽이었다. 나이가 어리다고 혹여나 무시당할까봐 오히려 사람들을 다 잡으려는 마음으로 더 화를 내기도 했다. 그러나 대개 그보다 10살 이상 나이가 많으신 분들이었으니 그의 그런 행동들이 통하지 않았을 법도 하다. 오히려 제 꾀에 제가 넘어가 그가 더 힘들었다. ‘나를 어리다고 우습게보고 설렁설렁 일하지는 않았을까’하는 생각에 그분들이 하는 일들을 계속 의심하게 되고, 제대로 했나 확인하다보니 일에 있어 효율성이 떨어졌단다.


두 번째 창업에서 그가 얻은 가장 큰 깨달음은 직위와 역할만 다를 뿐이지 구성원 모두 동등한 관계라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과의 관계가 무엇보다 중요하며, 그만큼 어렵다는 것을 사업을 하면서 몸소 깨우치게 됐다고 말했다.



이번엔 대학생들끼리 뭉쳤다


그는 일본에서 기업의 광고가 실려 있는 이면지를 이용, 학생들에게 복사기를 무료로 사용할 수 있게 하고 그 광고 수익으로 성공한 사례인 ‘타다 카피’를 보고 무릎을 쳤다. 그런 후 그것을 벤치마킹해 우리나라에서도 적용해보려고 했다. 그러나 일본은 아껴 쓰는 문화가 발달해 있는 반면, 우리나라의 경우 무료라면 과도하게 사용하는 면이 있어 이를 그대로 가져왔다 실패한 사례가 있었다. 이러한 실패 사례를 보고 그는 무료 복사기가 아닌 무료 프린터로 생각을 굳히게 됐다.


창업을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철저한 시장조사가 선행돼야 한다는 그의 지론에 맞게 조사를 해나가던 중 서울대 학생들도 그가 생각한 아이템으로 창업을 준비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가 먼저 서울대 학생들에게 손을 내밀었다. 이러다가는 서로 경쟁하다 말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기 때문이다. 현재 ‘PRINT FREE’를 주 사업으로 하는 ‘인스코 코리아’는 그와 서울대 학생 10명, 연세대 학생 1명으로 구성돼 이끌어 나가고 있다.


그는 역시 사업가다. 그의 사업인 ‘PRINT FREE’에 대해 열정적으로 설명하며, 상대방을 설득하려는 모습이 이를 증명한다. 처음에 대학생들로만 구성된 회사를 차리고, ‘PRINT FREE’라는 아이템의 제안서를 대기업 200여 군데에 돌렸다. 그러나 제안서를 확인한다고 해놓고는 대부분의 곳이 검토조차 하지 않았다. 기업들이 그런 미적지근한 반응을 보이자 이번에는 제안서를 들고 직접 발로 뛰기 시작했다. 각 기업들의 마케팅부서로 직접 찾아가 문을 두드렸다. 조금만 시간을 내달라고 애원하며 제안서를 무작정 내밀고 설명을 하기도 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지금은 그들과 친분이 쌓여 사업에 대한 좋은 조언들도 많이 해주고, 기업들이 원하는 바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해준다고.


그는 지금까지는 우리학교를 포함해 고려대·서울대·연세대 총 4곳에서 사업을 진행 중에 있지만, 앞으로 더 열심히 뛰어 수도권 지역 내의 모든 대학에 진출하는 것이 첫 번째 목표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는 후에 이 아이템을 가지고 한국에서 성공한 모델로 인정받아 함께하고 있는 동료들과 반드시 미국에도 진출할 것이라고 굳센 포부를 밝혔다.



포기 없는 창업은 없다.


창업에 관심이 많거나 준비하고 있는 학생들에게 그는 말한다. 포기 없는 창업은 없다고. 창업을 시작하기 전 반드시 거쳐야 할 과정이 있단다. 바로 어떤 것을 버려야 하고, 어떤 것을 포기해야 할지 생각해보는 것과 실제로 내게 그럴 각오가 충분히 돼 있는지 생각해보는 것이다. 그 또한 이러한 과정을 거쳐 많은 것들을 포기했다. 학생의 본분으로서 응당 해야 할 학업을 포기했고,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의무인 군대도 잠시 내려놓았고, 여자친구도 포기했다. 그는 단호히 말한다. “사업을 하려면 적당히 해서는 결코 성공할 수 없다.”


또한, 마지막으로 그는 학생들에게 말한다. “걱정하지 마라. 지금은 실패해도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시기다. 실패가 두려운 것이 아니다. 시작이 두려운 것이다. 많은 것들을 포기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충분히 도전할 만하다.”

 

                               

 

 

저작권자 © 숭대시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