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이란 무엇일까? 음악을 한마디로 정의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우선, 여러 사상가들이 남긴 음악 관련 명언들을 잠시 살펴보자. 음악은 ‘천사의 언어’, ‘상처 입은 마음에 약’이라든지, 바이런은 “갈대의 나부낌에도 음악이 있고, 시냇물의 흐름에도 음악이 있고, 사람이 귀를 가지고 있다면 모든사물에서 음악을 들을 수 있다.”고 표현했다. 좀 더 감성적인 표현으로는 “음악은 남자의 가슴으로부터 나와 여자의 눈물을 자아낸다.” 또는 “음악은 말로는 표현할수없는, 그러나 결코 침묵할 수 없는 것을 표현하는 것이다.”라고 빅토르 위고는말했다. 이렇듯 매우 주관적이고 모르는 듯 알고 있고, 아는듯 모르는 것이 음악이 아닌가. 부지불식간에 교육을 받아 왔지만, 정작 음악을 어떻게 표현하고 감상해야 하는 것 인지 잘 알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다.


 음악을 말함에 있어 그 방법과 생각이 매우 다양하나, 음악학적 관점에서 정의 하자면, 첫째로 음악은 소리(noise)와 사상(idea)의 집합체라 할 수 있다. 음악의 본질은 소리로써 사상과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인간은 어머니의 태중에서 아홉 달 반을 기다리면서 어머니의 호흡과 그 규칙적이면서도 리드미컬한 심장박동을 통하여 소리와 리듬을 체득하게 되고, 희로애락의 감정을 느끼고 반응하며 ‘소통의 질서’를 배우게 된다(음악에서 박을 뜻하는 라틴어 탁투스(tactus)는 사람의 맥박 소리에서 비롯된 것이며, 이것은 음악에서 가장 중요한 박자 체계를 의미하기도 한다). 그러니 가장 중요한 것은 ‘소리’이며, 음악은 소리가 리듬을 만나 비로소 성립되고 원하는 것 - 때로는 충실한 감정을, 때로는 사회 분위기나 사상까지도 표현하게 된다.


 둘째로 음악은 소통이다. 인간은 홀로 살아갈 수 없는 존재이다. 생각을 공유하며 서로 표현하여 공감을 얻고 감동하며 살아간다. 음악은 인간 소통의 매우 중요하고 유용한 방법이 되며, 말은 통하지 않더라도 같은 감동을 나눌 수 있고, 마음의 벽을 가장 빠르게 무너뜨릴 수 있는 만국 공통어이기도 하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는 현장에 첼로를 메고 달려갔던 로스트로포비치. 얼마 전 냉전의 마지막 유산인 임진각에 오케스트라를 끌고 온 거장 바렌보임. 쓰나미로 폐허 더미가 된 곳을 악기와 마이크를 들고 찾아갔던 수많은 뮤지션들. 말이나 정치력으로는 다하지 못할 세계 각지의 어려운 곳마다 위로와 격려, 감동을 선사하기 위한 음악의 그 위대한 행보는 말로 다 표현하기가 어렵다.


 셋째로 음악의 목적은 표현에 있다. 인간의 본성 중엔 무엇이든지 아름답게 표현하고자 하는 심리가 있다. 이를 미적 감수성(aesthetic sensibility)이라 한다. 사람은 누구나 이러한 미적 감수성을 바탕으로 어떤 목적과 의식에 맞게 어떤 공예적(craft)인 것이나 무형적(fineart)인 것을 만들며 살아왔다. 미국 일리노이 대학의 래리 쉬너(larry shiner)의 <예술의 탄생>이란 책을 인용하여 말하자면, 인류는 이런 자연스러운 삶의 창조물들을 18세기(구체적으로 말하면 1680년~1830년) 경에 이르러 예술 혹은 예술품이라 구분하게 되었으며, 예술이란 그것이 오늘날 순수예술이든, 실용예술이든 간에 삶의 자연스런 산물이며, 그 이전의 예술의 의미는 오직 자연(nature)과 비자연적인(인위적인)것이었다. 따라서 우리가 알고 있는 음악이란, 예술이란 개념에 사로잡혀 본질과는 조금 멀어진 의미로 이해되고 있는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음악 표현의 방법은 시대의 발전과 역사를 따라 진화되어 왔다. 고대 음악이라 불리는 그리스 로마시대의 음악으로부터, 중세 초기 기독교 발달을 통한 종교음악, 악기의 탄생과 더불어 다성음악과 세속음악의 발달. 르네상스를 거치면서 음악 또한 인본주의적 성향과 맞물려 오페라가 탄생하게 되고, 바흐와 헨델이 활동하던 바로크 시대를 지나, 우아한 로코코 시대를 맞이하며 음악 또한 더욱 우아하고 화려해지기 시작한다. 글룩과 하이든, 모차르트와 베토벤의 시대는 고전주의로 일컬어지며, 더욱 자유스럽게 발전하는 시대상과 발맞추어 음악적으로도 로멘티시즘을 맞이하여 전기낭만파라 불리는 슈베르트·슈만·멘델스존·쇼팽 등.후기 낭만파라 일컫는 리스트·바그너·멘델스존·슈트라우스 등 당시엔 무척이나 진보적이고 획기적인 작곡가들이 수없이 나타났다. 음악적 표현은 시대뿐 아니라 나라와 사상을 표현하고, 표제를 붙이거나 특정한 것을 표현하는 등 표현주의, 민족주의로 일컬어지는 많은 장르가 생겨났고, 악기와 오케스트라의 발달에 힘입어 다양한 종류의 오페라와 중주 협주 등이 성행하였다. 물론 현재에도 무조음악, 전위음악, 현대음악은 끝없이 발전되고 있고, 오늘날엔 표현의 방법이 더욱 구체적이거나 추상적으로, 더욱 직접적이거나 은유적으로 그 기법 또한 다양화되고 발전되어 그 선택의 폭도 넓어졌다. 이는 물론 시대의 흐름에 부합한다.


<음악에의 초대>는 음악의 본질을 이해하며, 음악예술을 이해함으로 음악을 표현해 보고 음악을 즐기며, 우리 삶의 질적 향상을 추구함에 목적을 둔다. 삶의 질적향상을 인간 상호 간의 소통에 있다고 할 때, 음악을 통하여 얻고자 하는 인간 소통의 가장 중요한 것은 보편 타당성과 중립성에 있다. 음악의 본질과 더불어 음악예술의 구조와 방법 등을 습득해 인용한다면, 어려운 소통에 길을 열 수도 있고, 말없이 서로를 이해하며 감동을 주고받을 수 도 있을 것이다.

 다시 요약하면, 인류는 그간 오랜 삶을 통해 멜로디(melody)·리듬(rhythm)·화성(harmony)이란 세 가지 방법(음악의 3대 요소)으로 음악을 실현, 발전시켜왔고, 이를 바탕으로 누구나 연주자, 창조자(음악에서는 작곡자), 감상자의 영역에 속해 음악을 함께해 왔다. 그러므로 사람은 누구나 음악가이며 그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가장 좋은 것은 소크라테스 시대처럼 모든 이들이 음악의 기본을 배우고 익히며, 이를 통해 인간 소통의 기본을 이해하고, 인간의 미적 감수성을 확장하고 발전시켜 창조성을 넓히며, 더불어 살아가는 조화성을 습득하고 인간 본성을 순화시키는 것이다. 또한 인간은 누구나 음악의 본질에서 소외될 수 없으며, 그 한 부분에 속해 살아가고 있는데, 다만 자신의 관심에 따라 어느 영역에서 음악을 할 것인가가 결정되는 것이다.

<음악에의 초대>는 우리 학생들에게 음악의 올바른 이해를 도모하고, 음악의 한 지체 속에서 살아갈 수있는 원활한 능력을 갖게 하여 고품격의 소양을 갖춘 교양인을 완성하려 한다. 일반적으로 음악을 하는 것이란 직접 음악을 연주 하는 것으로만 이해될 수 있지만, 사실 이는 음악의 한 부분에 속하는 것이며, 훌륭한 감상자 또한 아주 중요한 음악활동임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관객 없는 무대는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음악의 내용과 구조를 배우고 역사적 흐름을 함께 이해함으로써 음악을 제대로 듣고 감상할 수 있는 것 또한 음악을 직접 연주하는 삶보다 더욱 질 높은 문화적 삶의 충족을 기대할 수 있다. 숭실 학우들의 높아지는 미적 감수성의 성숙과 질 높은 상호 소통의 모습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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