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 사회에서의 시민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끊임없이 의견을 표출한다. 작게는 인터넷을 통한 주장부터, 크게는 집회를 열고 참여하는 방법까지. 사람들은 그렇게 자신의 이익을 말한다. 특히 사회 문제들을 비판하며 시민들의 이익을 적극적으로 대변하는 이들을 가리켜 우리는 시민운동가라 부른다. 1999년을 시작으로, 올해 11년 넘게 시민운동에 참여해 온 참여연대 안진걸 팀장이 오늘 인터뷰의 주인공이다.

 

강의실에서의 첫 만남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10명의 학생들이 모여 앉은 좁은 강의실에 그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처음 방문한 본교에서 길을 잃어 늦은 모양이다. 죄송하다는 말과 함께 반갑다는 인사로 입을 연 그에게서 왠지 모를 따뜻한 정이 느껴졌다.
 이날 열린 강연의 주제는‘등록금, 그것이 알고 싶다.’비싼 등록금은 언제나 대학생들의 큰 고민거리다. 그는 사회운동뿐만 아니라 강연을 통해서도 학생들의 고민을 덜어 주고, 대안을 제시하기 위해 노력한다. 새로운 지식과 사회 전반적인 이야기를 하며, 젊은 대학생들이 나아갈 길을 제시하기 위해 그는 대학가를 찾는다.

 이날 그가 강의에서 강조한 내용은 사회 정책이 개인에게 끼치는 영향이다. 서울시립대학교의 반값등록금 성공 사례를 예로 들며 그가 말했다.

 “고려대학교 입학금이 108만 원이고, 서울시립대 등록금이 103만 원입니다. 상상도 못했던 일들이 정말 일어났습니다. 이것은 사회정책이란 것이 개인에게 엄청난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알게 해준 사례이며, 동시에 하면 된다는 것을 보여 준 사례입니다.”


“대학생이 좋으니까요”
 다음 날에도 그는 모교인 중앙대학교에서 강의를 했다. 역시 비슷한 주제의 강연이었다. 사회운동과 여러 일정으로 바쁜 그가 대학교를 찾아 다니며 작은 강의실을 찾는 이유는 무엇일까. “학생들을 좋아하니까요. 우리 시대의 미래잖아요.”그의 대답이다. 그렇다. 그가 대학생들을 만나러 다니는 이유는 단순히 NGO의 스텝 혹은 대학 강사여서가 아니다. 대학생들이 좋기 때문이다.

 “저는 대학시절이 살면서 가장 행복했던 기억으로 남아요. 그래서 대학생들만 생각하면 괜히 기분이 좋아져요. 이 시대의 주역이자 미래인 학생들과 더 많은 것을 공유하고 싶어요. 여기저기서 모이기만 하면 5명이든 10명이든 강의를 할 것입니다. 또한 그 자리에서 논하는 이야기가 등록금 문제이든, 청년 실업이든, 사회 참여 문제이든 현대사회에 대한 이야기는 모두 재미있게 하도록 노력할 거예요.”

격동의 대학시절, 분노하다
 그의 본업은 시민운동이다. 이 일을 시작한지올해로 벌써 11년째다보니, 그동안 정말 수없이 많은 투쟁을 했다. 핸드폰 요금 인하, 집회의 자유,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반값등록금, 청년 실업 등. 열 손가락이 모자라다. 그가 사회운동가가 된 이유는 대학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사람들은 집회에서 시민들이 처참하게 다치는 모습을 보며 당시 정권을 비판했다. 그런데 전두환 전 대통령이 4300억 원의 비자금을 조성한 것에 대해서는 크게 비판하지 않았다. 4300억 원이라는 돈이 만져본 적도 없는 너무나 큰 돈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이 사실을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대자보를 붙였다. 그 대자보에 4300억 원이라는 돈이 얼마나 큰 액수인지 알리기 위해 그는 이렇게 썼다.

 “단군 조선 이래로 1년에 1억씩 돈을 횡령한 것과 같다.” 이 대자보는 많은 학생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켰고, 비자금에 대해서도 많은 비판적인 여론을 모았다. 그의 첫 사회운동이었다.

 노태우 정권 시절, 많은 대학생들과 교수들, 시민들이 정부에 맞서 투쟁하던 때였다. 당시 그는 시위를 하던 도중 어느 대학생이 백골단의 쇠파이프에 맞아 숨진 사건을 접하게 됐다. 그는 생각했다.

 ‘권력은 국민을 위해 존재하는 것인데 그 권력이 국민을 죽이는구나.’

두려움도 이제는 밑거름으로
 군사정권 시절, 시위에 참여한 많은 시민들이 고문을 당하고, 간첩으로 몰리고, 최루탄에 맞아 크게 다치거나 숨지기까지 했다. 혹여나 어린 나이에 그런 것이 두렵지는 않았을까?“물론 두려웠죠. 사람이 죽어 나가는데.” 하지만 그때의 두려움은 지금의 안진걸을 만들었다“. 그런 시절을 겪어서인지 시절이 나아진 요즘은 집회 나가는 것이 무섭거나 두렵지 않아요.”

 그가 사회운동을 하는 이유에는 자신의 이익도 있다.“통신 요금 인하되면 제가 혜택을 보고, 반값등록금 실현되면 저의 2세가 그 혜택을 누릴것이고, 택시가 안전해지면 저의 아내가 이 밤에 택시를 타도 안심할 수 있는 것 아닙니까. 저는 그런 이기적인 이유에서도 사회운동을 해요. 결국엔 자신에게도 혜택이 돌아오거든요.”


“집회 어렵지 않아요”
 그는 시민운동을 하며 일부 사람들에게 일명‘좌빨’이라며 손가락질도 당하고, 때로는 구속까지 되며 많은 수모를 겪어 왔다. 그러나 그는 정작 사회운동이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말한다. “박원순이나 안철수처럼 유명하고 돈 많은 사람들만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에요. 냉면 동호회에서 냉면 깃발을 들고 집회에 나왔더라고요. 왜 나왔냐고 물어 보니 그들은 “사회가 좋아야 냉면을 찾아다니죠.”라고 말합니다. 이처럼 각자 처한 조건에서 열심히 살아가고, 동호회 활동도 하면서 사회 문제에 대해서는 언제든 촛불을 들 수도 있어요. 꼭 집회가 아니어도 돼요. 정당도 시민단체에도 소속되지 않아도 돼요. 요즘엔 SNS도 많이 발달했잖아요. 그곳에서라도 작은 의견을 표현한다면 그것도 사회운동이죠.”


강인하면서도 수줍음이 많던 친구
 그의 대학시절은 어떠했을까. 우연히 주점에서 만난 그의 한 친구가 그의 대학시절을 이야기해 줬다. 그에 의하면대학생 안진걸은 강인하면서도 수줍음이 많은 청년이었다.

 “진걸이가 1학년 때 민법사학회에 처음 들어왔는데, 굉장히 쑥스러워 하는 거예요. 그런데 그렇게 수줍어하던그아이가 어느 순간 화염병을 들고 거리에서 시위를 하고 있었던 거죠. 이 애를 따라서 제가 운동에 참여하게 된것이라 해도 과언은 아니에요. 항상 진걸이의 모습은 올바른 모습이었고, 저 스스로가 그런 친구의 모습을 보며동참하게 되었으니까요.”

 시위 현장에서 최루탄 연기를 조금만 맡아도 그의 얼굴에는 수포가 일어났다. 주변사람들 눈에는 그가 계속해서 시위에 참여하는 것이 불가능해 보였다. 그러나 그는 계속해서 치료를 받고 시위에 나가고, 또 다시 최루탄 가스를 마시고 치료를 받으며 계속해서 운동에 참여했다. 술도 좋아하고 친구들이랑 놀기도 좋아하는 대학생, 불의를 참지 못하는 학생, 열심히 사는 청년에서 사회운동가로. 이것이 그의 과거이자 현재의 모습이다.


가장 기억에 남는 집회
 이후 그는 많은 집회에 참여하며 시민운동가로서의 역할을 다했다. 10초당 가금을 내야 하는 통신 요금을 부당하게 여겨 SK측과 계속해서 대화를 시도 했다.

 “당시 SK는 시스템상 불가능하다고 했어요. 그래도 계속해서 항의를 하니까 사회적 압박에 못 이기더니 광고를 냈더라고요. ‘그동안 불편하셨죠. SK가 앞장서겠습니다.’라면서 말이죠. 그렇게 안된다고 한 사람들이 마치 앞서서 10초 가금제를 1초 가금제로 바꾼 것처럼 광고를 한 것이죠.”

 이 외에도 많은 집회를 하는 동안 크고 작은 일들이 있었지만, 그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집회는 2008년의 촛불집회다. 그곳에서 그는 한국사회의 역동성을 봤다. “오히려 운동단체들은 침묵을 하는데, 수백만의 시민들이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반대하며 촛불을 들고 나왔어요. 지금 생각해 봐도 정말 그 당시는 대단했던 것 같습니다.”

돌아갈 수 없는 가장 행복했던 시절
 그는 당시 촛불집회의 기억만큼이나 대학시절에 대한 소중한 추억을 간직하고 있다. 그에게 있어 인생의 가장 행복했던 시절은 대학시절이었으니 말이다. 더 나은 사회를 위해 모두가 함께 노력했던 시절을 회고하며 그가 말했다.

 “학회 생활도 하고, 엠티도 가고, 노태우 군사 독재정권에 시위도 하고… . 우리 사회가 보다 나은 방향으로, 보다 좋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민주주의와 인권이 신장되고 복지가 향상되는 그런 사회를 만들기 위해 혼자가 아닌 학회에서, 학생회에서 여럿이 함께했다는 것이 몹시 행복했습니다.”

 누구보다 후배들을 열심히 챙겼다는 그. 후배들은 그가 술자리에서 개인적으로 불러 개별 면담하는 것이 가장 두려웠다. 그만큼 그가 후배들을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이 컸다는 것이다. 어쩌면 지금의 대학생들을 사랑하는 이유도 당시 후배들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온 것은 아닐까? 끝으로 그는 힘든 시기를 살아가는 대학생들에게 메시지를 남겼다.

 

 “청년 시절에 많은 경험을 쌓아 놓으면 평생의 자산이 돼요. 이 청춘의 시절을 낭비하면 어느 누구도 보상해주지 않습니다. 다시 돌아오지 않는 만큼 정말 소중한 것이죠. 한 명의 위대한 스승과, 열 명의 소중한 벗과, 백 권의 좋은 책을 만나 보세요 나쁜 짓이 아니라면 모든 것을 경험해 보세요. 여행·독서·노동·시위 모두 좋습니다. 인간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자신의 삶을 정말 아름답게 가꿔 나가는 시절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과도한 교육비와 스펙 경쟁, 청년 실업에 대한 부담이 클 것입니다. 그러나 20대 청년 대학생이라는 이 절묘한 시기에 다양한 것을 배우고, 다양한 것을 경험했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대학시절을 가장 행복했던 시절로 여기듯 여러분에게도 소중한 삶의 일부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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