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을 경험하게 되면 어떻게든 도망치려 발버둥치지만, 사실 고통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먼저 고통으로부터 도망치는 일부터 중단해야만 한다. 무엇인가 잘못되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는 있지만 무엇이 어떻게 잘못되고 있는지를 정확히 설명할 수 없고, 어떻게든 벗어나려고 발버둥을 치지만 헤어날 수 없을 때, 그리고 고통스럽지 않은 것처럼 어떻게든 애써 부인하려 하지만 여전히 고통스러울 때,‘고통이 거기 있다는 사실을 알아주는 일’이야말로 무엇보다 중요하다.

  고통은 자신의 존재가 알려지기를 원하고 있다. 고통을 당하고 있는 사람 또한“내가 고통당하고 있어요. 날 좀 도와줘요.”라고 부르짖고 있다. 그것은 마치 의사가 병을 진단하는 것과도 같다. 의사가 환자를 진찰하면서“여기를 누르면 아픕니까?”라고 묻는 것처럼,“예, 그렇습니다. 이것이 바로 저의 고통입니다.”라고 알려지기를 바라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고통은 또한 우리가 그것을 다룰 때 부드럽고 친절하게 다루어 주기를 원한다. 우리가 갖고 있는 두려움과 미움, 염려,그리고 분노는 마치 엄마가 아이를 조심스럽고 사랑스럽게 안아주듯이 따뜻하게 부둥켜 안아 주어야만 하는 대상들인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을 창조하실때참으로 신비스런 장치를 우리안에 만드셨는데, 그것은 우리가 고통스러울 때 아픔을 느끼게 함으로써 미리 경보 장치가 작동하도록 하신 일이다. 몸의 어떤 일부가 아파하는 것은 바로“날 좀 알아주세요, 좀 더 관심을 기울여서 돌봐 주세요.”라고 신호를 보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만약 우리가 이러한 경고를 무시하게 되면 나중엔 더 큰 고통을 당하게 될 게 뻔하다. 그러므로 그 고통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것이 신체적인 것에서 연루되었는지, 아니면 물질적인 것인지, 심리적인 것인지, 인간관계에서 비롯됐는지를 면밀히 살펴보아야 한다. 우리의 상처, 혹은 고통은 어떻게든 그 존재가 인식되어져야만 하고, 그 실체의 모습이 명백히 드러나야만 한다. 나의 고통이 바로 나의 삶의 주제이며, 동시에 우리의 명상과 기도의 대상인 것이다. 나의 고통이 곧‘나’자신인 것이다.


  “고통이여! 나는 당신이 거기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당신을 위해 제가 여기 있습니다. 제가 당신을 잘 돌보아 드리겠습니다.”


  고통을 경험하게 되면 그것으로부터 도망치려 발버둥치지만, 사실 고통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먼저 고통으로부터 도망치는 일부터 중단해야만 한다. 용기를 가지고 가장 부드럽고 따뜻하게 고통을 대면하여 제대로 인식하며, 알아주고, 그리고 그것을 드러내는 일이야말로 고통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인 셈이다. 고통의 원인을 찾는 일, 즉 그것이 우울 때문인지, 병 때문인지, 인간관계로부터 오는 상처인지, 또는 두려움 때문인지 그 원인을 밝히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고통의 원인은 그것을 알고자 하는 이의 의도가 얼마만큼 강하냐에 따라 밝혀지게 되어 있다. 왜 고통스러운지 그 원인을 알 수 만 있다면 치유는 가능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고통의 원인 그 자체가 곧 고통을 벗어나는 길이 되기 때문이다. 고통을 받고 있는 사람에게 해줄 수 있는 최상의 일은 무엇보다도 그 사람과 '함께 있어 주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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