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이집트 왕국은 자신을 신의 아들이라고 주장하는 절대권력자 파라오의 일인 권력세계였다. 히브리인들은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로운 왕조의 파라오에 의해 자유거류민의 신분에서 노예로 전락했다. 그들이 살던 땅의 경작권과 목초지를 박탈해 버렸다. 대신 그들을 대규모 토목공사의 잡역부로 동원했다. 온갖 박해와 곤욕이 뒤따랐다. 히브리인들의 인구가 증가하자 파라오는 히브리인의 가정에 태어나는 남자 아이들은 죽여 버리라는 포고령을 내렸다. 절대권력자의 포고령은 상명하복의 관료체제를 통해 즉시 실행되었다. 이로써 히브리 남아들의 대학살이 시작되었다.


  바로 이런 순간에 이 야만적인 죽음의 관료체제에 반기를 든 여인들이 있었다. 히브리 산파 십브라와 부아였다. 이들은 파라오의 포고령보다 하나님을 더 두려워하여 거룩한 불복종을 선택했다. 히브리 남자 아이들을 살려 낸 것이다. 그 결과 그들은 파라오에게 불려갔다. 절대권력자의 심문 앞에서도 전혀 주눅들지 않고 ‘히브리 여인 순산설’을 주장함으로써 위기를 벗어난다. 즉, 산파가 도착하기 전에 이미 해산을 끝내 버리기에 남아를 죽일 기회가 없었다고 둘러댔다. 하나님께서는 이들의 변명이 파라오에게 받아들여지게 하셨고 이들의 기지로 히브리인들은 생육이 번성하고 심히 강대해졌다.


  모세는 이런 십브라와 부아가 죽음과 야만의 상명하복적 관료사회를 무력화시킨 후에 태어나 히브리 민족의 해방 영웅이 되었다. 모세의 어머니 요게벳은 십브라와 부아의 정신으로 파라오의 그 야만적인 남아 살해 명령을 어기고 모세를 살려 냈다. 이 세상의 가장 참혹한 반인간적인 악행은 단지 성질이 악한 사람들이 행한 악보다도 무사유적 상명하복적 관료체제 아래 온순하게 순응하는, 주체적 도덕 판단력이 결핍된 자들이 행한 악이다. 한나 아렌트는 폴란드의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유대인 대학살을 주도한 나치의 육군중령 아돌프 아이히만이 바로 이 무사유적인 관료체제 중간관리자의 대명사라고 부른다. 악한 일이라도 직속상관의 명령이면 수행하겠다고 공언하는 것이 아돌프 아히히만의 관료적 온순성과 성실성이다. 요즘 국무총리실 민간인 사찰 범죄에 참여한 사람들의 면면을 보면 아돌프 아이히만급 무사유적 성실성이 얼마나 위험한가를 실감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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