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적 인간은 사유하는 자아, 코기토(cogito)의 발견으로 탄생되었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는 데카르트의 명제는 사유하는 인간만이 참된 개인이요, 사유는 주체적 개인이 자신의 됨됨이를 형성하는 결정적인 조건임을 천명한다. ‘사유한다’는 말은 자신의 행동이 어떤 의미를 갖는가를 알고 그것에 대해 책임을 지겠다고 생각한다는 뜻이다. 이런 코기토적인 각성을 한 개인들이 만나면 이론적으로는 적어도 자유와 책임의 절묘한 균형이 형성되어야 한다. 그러나 실제 인간사회는 만민의 만민에 대한 이리상태를 연출한다. 사유하는 자아가 죄로 물들어 있기 때문이다. 데카르트가 간과한 원죄가 개인 각각의 삶을 파탄으로 내몰 뿐만 아니라 그들이 속한 사회공동체도 부서뜨린다. 특히 요즘 MB 측근들의 비리와 통합진보당의 비리를 보면 돈과 권력에 대한 인간의 탐욕이 얼마나 더럽고 추악한가를 실감하게 된다.


  이런 우울한 시대에 준비된 지도자 여호수아가 생각난다. 그는 40년동안 모세의 비서로 섬기며 지도자 수련을 받았다. 그는 모세가 기도하는 동안에 실제 전장(戰場)에 나가 싸워 동족을 보호했는가 하면, 하나님의 회막에 오랫동안 머물며 기도하고 하나님 말씀 경청하는 훈련을 받았다. 가나안 입성을 앞두고 이스라엘이 적전 분열을 해 다시 이집트 노예살이로 되돌아가고자 할 때 위험을 감수하며 그 반역 대열을 막아냈다. 그는 마침내 모세가 떠난 그 빈 자리를 메우며 이스라엘을 가나안 땅으로 이끌어들였다.


  여호수아는 지도자가 어떻게 탄생되는지를 잘 보여 준다. 첫째, 청년시절부터 여호수아는 공공의 시선에 노출되고 검증되어 가며 지도자 수련을 받았다. 지도자가 될 사람은 공공연히 검증된 인물이어야 한다. 둘째, 위대한 지도자 모세로부터 도제식 지도자 훈련을 받았다. 가내수공업적인 손길을 경험하며 지도자로 자라갔다. 초목은 풍성한 일조량에 노출될 때 자라고 사람은 빛과 열을 내는 살아 있는 지도자 전범 인물을 통해 쏟아지는 빛에 노출될 때 자란다. 셋째, 여호수아는 실제 전쟁과 위기의 순간에 지도자로서의 위험도 감수하고 확고한 영적 카리스마를 보여 줌으로써 공동체 구성원들로부터 인정받으며 지도자 경력을 시작했다. 지도자는 지도자가 되기 이전에 일정한 업적과 성취를 통해 구성원들로부터 공인되어야 한다. 이렇게 준비된 지도자가 숭실에서 나오길 간구한다. 베어드ㆍ조만식ㆍ한경직ㆍ김형남은 박물관의 언어가 아니라 지금 숭실학우의 숨결을 고취하는 유산이어야 한다. 경제학과 김현숙 교수와 최동익 동문이 범숭실가족을 대표해 19대 국회에 들어간다. 그들이 여호수아와 같은 지도력을 발휘하길 기대한다.

저작권자 © 숭대시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