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 16일(수) 본교에서 지난해 교환학생을 다녀온 학생을 대상으로 수기공모전 시상식을 열었다. 대상은 영국 Leicester 대학교에서 1년간 파견된 강지수 (행정·4) 양이 수상했다. 교환학생을 준비하는 후배들을 위해 파견지역의 교통편부터 밤문화까지 수기에 꼼꼼히 남아낸 강 양은 인터뷰 중에도 체험한 일들을 하나하나 유쾌하게 풀어냈다. 영어 초짜에서 영국식 영어를 능숙하게 구사하기까지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지난 2010년 2학기부터 1년 간 영국 레스터학교로 교환학생을 다녀왔다. 교환학생에 대해 많은 학생들이 지원을 고민하지만, 선뜻 그것을 결정하는 경우는 드물다. 어떻게 처음 지원을 결심했나? 

2009년도 여름쯤 그러니까 2학년 1학기를 마쳤을 무렵에 처음 교환학생을 결심했다. 예전까지는 대외활동에 대한 개념이 없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 교환학생에 지원하기엔 요구되는 영어 수준이 너무 높아 보였다. 그러다 막연히 영어공부를 해보자는 결심이 들어서 토플 학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그 때 나는 수능 이후로 영어를 완전히 놓아버린 상태로 진짜 초보자 수준이었다. 그런데 학원에서 공부를 하다 보니 겉핥기식이 아니라 제대로 공부하고 싶어졌다. 그리고 어느 순간 교환학생이 돼야겠단 결심이 들더라. 한국에 있는 것보다 영어 실력을 더 발전시킬 수 있고, 외국 문화도 많이 즐길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처음엔 미국의 대학을 목표로 본격적으로 공부를 시작했다. 2학기를 휴학하고 6개월 정도만 공부하면 될 거라 생각했는데, 그것보다 좀 더 걸렸다. 물론 공부는 하루 종일했다. 새벽반 수업을 듣기 위해 다섯 시 반에 일어나 죽 영어 공부에 매진했다. 수업을 받고 오가는 길엔 시간이 아까워 혼자 중얼중얼 거리며 스피킹을 연습했다. 그런데 6개월이 지났지만 목표점 수인 80점이 아닌 78점이 나왔다. 결국 2010년 학기 초에 신청해야 하는 미국에는 지원도 못했다. 휴학을 하면서 친구들에게 큰소리를 빵빵 쳤는데, 결과도 없이 1학기에 복학했더니 친구들이 “너 휴학 왜 했어?”라고 반응했다. 힘들게 공부했는데 속상했다. 하지만 우연의 일치였을까. 그 해 우리학교에서 내가 가게 될 영국의 레스터대학과 처음으로 협정을 맺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때 영국에 한 번 가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잘 몰랐던 나라지만 고민 끝에 도전을 결심했다.
 학교 수업이 마치면 바로 도서관에 다니며 틈만 나면 영어를 공부했다. 개강하고 얼마 뒤 치룬 시험에서 결국 원하던 성적이 나왔고, 그 해 9월 드디어 지원 가능한 자격으로 1지망 영국으로 지원서를 넣었다.

 서류 심사에서 통과했지만 면접이라는 중요한 관문이 남았다. 면접은 어땠나?

  면접 당일 같이 면접을 봤던 한 학생이 말을 너무 잘해서 머리가 새하얘진 기억이 있다. 주눅이 많이 들었다. 그러나 나에겐 비장의 무기가 있었다. 면접장에서 면접관에게 보여줄 뭔가를 준비했다. 교환학생이라면 우리학교를 대표해서 가는 거니까 ‘한국은 이런 나라다, 우리학교는 이런 학교다’를 외국 친구들에게 알려주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다. 면접이 있기 전에 흰 전지에 학교 지도를 대략적으로 그리고, 캠퍼스 구석 구석 사진을 찍어 그걸 종이 위에 붙였다. 학교 뒤편 기숙사로 이어지는 길, 백마상, 과방, 강의실 등을 위주로 했다. 면접 날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뭐냐기에 우리학교가 한 눈에 보이는 조감도를 쫙 펼쳐들고, “그 곳에 가서도 학교를 알리고 열심히 공부하고 오겠다.”고 다부지게 말했다.
 통과를 위해 인터뷰 준비도 빡빡하게 한 것이 사실이지만 가장 중요한 건 자신감이었다. 교환학생은 이미 영어를 잘하는 사람을 보내는 게 아니라 그 곳에 가서 열심히 할 수 있는 학생을 뽑는 거란 걸 알고 있었다.

 다음해 1월 말, 꿈에 그리던 영국으로 떠나게 된다. 그곳은 기대와 같았나?

 설렘을 안고 도착한 영국은 예뻤다. 오래된 건물이나 빨간 버스 등이 신기했다. 내가 갔던 학교는 영국의 중부 지방에 있었는데, 규모는 생각한 것 보다 작았고 사실 우리학교 보다 예쁘진 않았다. 물론 그 곳엔 내가 기대한 계단강의실이 있었고 분위기도 더 자유로웠다. 한 가지 기억에 남는 건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학생들이 티셔츠에 청바지와 같은 수수한 옷을 입고 있는 게 아니라 패션에 무지 신경을 썼단 거다. 모두 워커를 신고 주렁주렁 뭔가 달린 옷을 입었고 모델 같이 키가 크고 잘생긴 사람들도 많았다. 눈 하나는 호강했다. (웃음)  
 영국엔 놀이 문화가 pub이나 클럽으로 한정돼 있기 때문에 학기 초반엔 주로 클럽에 많이 갔다. 그러나 학교생활동안 기억에 남는 건 무엇보다 동아리 활동이었다. 처음엔 치어리더 동아리에 들어갔는데, 예상한대로 다들 기가 너무 쎄더라. 신입회원이 들어오면 모두에게 인사라도 시켜줄지 알았는데, “그래, 반가워. 저기 훈련하고 있으니까 같이 가서 해.”라고 말하며 연습부터 시켰다. 화려한 동작을 연습하는 것도 아니었다. 누군가 뛸 때 옆에서 들어 올리는 역할이었다.(웃음) 생각했던 것과 너무 달라서 금방 나왔다. 다음으로 간 곳은 태권도 동아리였다. 모두 강단에 모여 동아리를 홍보하는데 어떤 사람이 나에게 오더니 태극무늬가 그려진 티셔츠를 입고 “태권도 아니?”하고 묻더라. “당연하지”라고 대답하고 그들을 따라 갔는데, 다들 도복을 갖춰 입고 한국어로 기합을 넣으며 훈련을 하고 있더라. ‘하나 둘 셋’ 구령을 붙이는 모습이 신기하고 재밌었다. 왠지 모를 뿌듯함과 그들에 대한 기특한(?) 감정도 들었다. 태권도를 하는 친구들은 다른 영국 친구보다 한국에 관심이 더 많았다. 그들과 몸을 부딪치며 같이 훈련하면서 친해졌다.


 다양한 문화 뿐 아니라 영어 공부를 위해 택한 유학길이기도 했는데, 실제로 공부에도 많은 도움이 됐나?  

사실 영어는 초반에 큰 문제가 됐다. 영국어 적응에만 3개월이 걸렸다. 내가 한국에서 공부했던 건 [r] 발음이 많은 부드러운 미국 영어였기 때문에 영국어를 제대로 알아듣기는 힘들었다. 영국으로 유학 간 많은 학생들이 영국식 영어를 굳이 고치려 하지 않았다. 미국식 영어를 배워왔는데, 영국 발음을 익혀 가면 되레 영어 실력이 줄지 않을까 하는 걱정에서였다. 그래도 나는 어떻게든 영국 발음을 배우려고 했다. 집 밖에 나오면 모두가 영국 영어를 쓰니까 생활을 위해서라도 배워야했다.
 그런데 아무리 공부를 해도 완전히 터득하는 데는 한계가 있더라. 무의식중에 미국영어가 자꾸 튀어나왔다. 그러다가 아는 사람이 내 사정을 듣고는 프랑스에 혼자 살고 있는 한 영국인 아주머니를 소개해줬다. 홈스테이처럼 그곳에 지내면서 영어를 제대로 배워오란 말이었다. 좋은 기회였다. 첫 학기의 마지막 에세이를 제출하고, 5월 중순 경 프랑스로 떠났다.
 공부를 하기에는 딱 좋은 조건이었다. 시골 마을에 위치했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인터넷이 안 돼 가족들과 연락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교육에 경험이 있었던 아주머니가 매일 나를 가르쳤는데, 미국식으로 틀리게 발음하는 것들을 하나하나 지적해서 다 고쳐줬다. 아침에 수업을 듣고 남은 시간엔 복습을 하며 그 곳에서 3개월을 지냈다. 그런데 건강에 좀 문제가 생겼다. 하루 식단은 거의 빵과 파스타, 치즈 등 이었는데 집에만 있다 보니 10kg 가까이 찌더라. 가져간 옷이 하나도 안 맞았다. 더 심각한건 피부였다. 얼굴에 악성이라 부르고 싶은 커다란 여드름이 나서 잠을 잘 때 마다 너무 아팠다. 아주머니와 문화적인 차이로 다투기도 했다. 의지할 데 없는 생활에 지쳐 밤마다 운 기억도 많다. 
 그러나 그런 생활도 버텼다. 나날이 실력이 는다는 느낌 때문에 쉽게 영국으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그렇게 다음 학기에 영국으로 돌아왔더니 내 영어 실력에 다들 깜짝 놀랐다. 뿌듯했다. 피부와 살을 포기하고 얻은 대가랄까? (웃음)
 다녀와서도 기숙사에 가서 벽에 매일 공부했던 표현들을 전치사, 유용한 표현들로 나눠 붙여가며 공부했다. 교환학생 동안 가장 열정을 바친 건 영어였다.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내가 정말 열심히 지내고 온 사람이다.’고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실제로 그런 생각이 들었나?

사실 한국에 간다는 설렘 때문에 그런 걸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다만, 한국으로 돌아와서 한마디로 헛 다녀 온 게 아니란 걸 느낀다. 사실 나만큼 같이 간이들 중에 나만큼 영국 영어를 구사하는 이는 드물다. 한국에서 만난 외국인들도 “영국식 영어를 이렇게 구사하는 한국인은 처음이다.”고 말해준다. 제일 좋은 건 교환학생의 경험으로 만족하는 법과 행복해지는 법을 배웠단 거다. 프랑스에 가기 전엔 영국생활이 힘들었는데 막상 프랑스에 다녀와보니 영국이 천국이었다. 그런데 한국은 어떻겠나. 지상낙원이다. 지금 내 옆엔 엄마가 있고 말이 통하는 친구가 있다. 현재에 대해 더 감사할 수 있게 됐고, 구체적으로 내가 이곳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할지를 더 뚜렷이 알게 됐다.

 다른 누구보다도 교환학생 프로그램을 알차게 보내고 왔다. 마지막으로 교환학생을 준비하거나 지원을 고민하는 학우들에게 해 줄 말이 있다면?  

 도전하는 것에 두려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교환학생하면 금전적인 부분은 물론이고, 무엇보다 영어에 있어서 걱정이 될 것이다. 그러나 어떻게든 영어에는 도움이 된다. 교환학생을 준비하면서 토플을 공부하게 되면 설령 합격이 되지 않더라도 그것이 결국 전반적인 영어 습득에 도움이 된다. 저에게 많은 사람들이 교환학생 지원에 대해서 물어봤는데, 그 중 거의가 포기를 했다. 도전한다고 해서 누구도 손가락질을 하진 않는다. 금전적인 부분도 우리학교와 자매대학을 맺은 학교 중 비교적 저렴하게 갈 수 있는 길은 얼마든지 있다. 일생에 한 번의 경험이라면 그 정도 돈도 투자할 가치가 있다고 본다. 대학생이 아니면 이런 기회가 흔치 않다. 그러니 극한의 상황에 자신을 던져보고 안주하기보다 도전해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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