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학교 아나운서, 뽀로로 아저씨 되다

 

 

KBS 23기 공채 성우 구자형(철학·86) 동문

텔레토비 친구들 안녕~”“뽀로로와 친구들이 놀이터에서 놀고 있어요.” 이 목소리는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굵직하면서도 부드러운 이 목소리의 주인공은 KBS 23기 성우인 구자형(철학·86) 동문이다. 최근 그는 tvN ‘SNL코리아’의 정치풍자코너‘여의도 텔레토비 리턴즈’에서 내레이션을 맡아 활동 중에 있다. 그를 만나 본교와의 인연과 성우라는 직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본교 철학과를 선택했던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요?

 첫째로 저희 형님이나 어머니의 종교관과 연관이 있었어요. 어머니의 꿈이 저희 삼형제를 목사로 만드는 거였는데, 형님이 이미 그 시절에 목회 활동을 하고 있었죠. 형님은 일반학과와 장로신학대학원 코스를 밟아서 약간의 아쉬움이 있었던 것 같아요. 신학을 하기 전에 철학 공부를 해보라고 조언을 해줬죠. 또 숭실대학교 자체에 기독교 전통 분위기가 있어 제게 도움이 될 거라며, 숭실대 철학과를 추천했어요.
 둘째로 제가 고등학교에서 대학교로 올라갈 때 막연하게‘공부는 대학원에나 가야 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대학 4년은 앞으로 인생을 살아나가는 데 있어서 중심이 될 수 있는 어떤 생각을 갖게 하고, 그것에 관련된 지식을 공부하며 교양을 쌓는 시간일 거라 생각했죠. 인문계, 그중에서도 어문학이 아니라면 대학 때 깊은 전공 공부를 하기엔 힘들지 않을까 싶었어요. 사회를 보는 눈이나 역사의식, 교양 등과 관련된 경험이 오히려 중요하단 생각이었죠. 그런 관점에서 철학과, 국어국문학과, 사학과 순으로 숭실대에 지원을 했고, 학력고사 점수가 어떻게 잘 돼서 합격을 했던 거예요.

 

대학 시절에는 교내 방송국 아나운서로 일했다고 들었습니다. 방송국 활동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요즘 식으로 얘기하면‘덕후’수준으로 음악 듣는 걸 좋아했어요. LP판은 많이 버렸지만 아직도 500장은 가지고 있고, CD나 DVD도 많죠. 음악에 대한 관심을 방송과 연계해서 음악 전문 DJ도 해보고 싶었어요. 그런 걸 할 수 있는 곳이 교내 방송국이죠.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그때도 부서가 확실히 나눠져 있었어요. 제가 그때 원서 냈을 때가 웃기는 상황이었어요. 저는 모든 걸 다 하고 싶었죠. 1지망은 그래도 DJ에 가장 가까운 건 말하는 거니까 아나운서를 적었어요. 2지망,  음악 듣는 건 프로듀싱에 관련된 거니까 제작부를 썼고요. 3지망은 기계적인 부분도 알아야 하니까 기술부, 4지망으론 발로 뛰고 사람들 만나는 건 별로 안 좋아하니까 마지막 남은 보도부. 선배님이 보시고“너 웃긴다, 자식아. 아나운서 해! 지금 아나운서 없어.”라고 하셨어요. 우리 위에 선배님들이 일찍 방송국을 나간 경우가 많아서 아나운서 할 사람이 별로 없었어요. 그렇게 방송국 아나운서로 처음 시작을 했어요.

 

교내 방송국에 올인하다

 

교내 방송국 생활을 하던 당시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었나요?

 1, 2학년 때는 학교에 철학과 공부를 하러 다니는 건지 방송국 생활을 하러 다니는 건지 모를 정도로 방송국에 모든 걸 바쳤어요. 그때는 서울에 있는 대학 방송국들의 연합 활동도 활발했어요. 그중 여대 방송국은 가끔 남자 아나운서가 필요한 경우가 있었어요. 주로 방송제를 열 때가 그랬죠. 연합 활동으로 알게 된 친구들이 있어서 성신여대, 서울여대, 덕성여대, 숙명여대, 동덕여대 같은 데를 편하게 다닐 수 있었어요. 여대에 보이는 남자들은 교수님이나 강사 분들 빼놓고는 별로 없을 거 아니에요? 제가 축제 전후로 성신여대 입구에 딱 들어가니까 수위 아저씨께서“어, 누나 만나러 왔어? 들어가~”라고 하신 게 기억나네요. 하도 많이 가서 그런지 저를 알아보더라고요(웃음). 그 정도로 방송국 생활을 내·외부적으로 많이 했죠. 그 연합서클 식구들 중에 방송 쪽으로 진출해서 지금 나름 유명해진 사람들도 있어요.

 

교내 방송국 이외에도 대학 생활 중 본인에게큰 영향을 준 게 있다면요?

 군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휴학을 했던 시기가 있는데, 학교 방송국에서도 변화가 있던 때였어요. 2학년에서 3학년 올라가는 쯤에 방송국장이 되느냐 마느냐 하는 고민이 있었고, 개인적으로 방송국에선 친목보다는 일이 중요한 거 아니냐는 회의적인 생각도 했어요. 이런 고민을 안고서 한 달 내내 집에 틀어박혀 책을 읽고 생각하는 데에만 몰두했죠. 지금은 없어진 걸로 아는데 그때 <주간신문>이란 게 있었어요. 그 안에 제목부터 어려운‘절차탁마 대기만성’이라는 책에 대한 도올 김용옥 선생의 리뷰가 있었어요. 제가 대학 생활을 2년 정도 하고 의문이었던 게‘도대체 우리 사회에서 기독교라는 게 뭐냐’는 것이었습니다. 성경에서 아담과 하와, 카인이 남았을 때 자손이 어떻게 번성하느냐 하는 단순한 의문, 그리고 예수가 물 위를 걷는 것처럼 우리가 과학적 상식으로 이해할 수 없는 여러 가지 사건들이 역사적 사실인지 소설인지 하는 의문도 있었어요. 그런데‘절차탁마 대기만성’에 고전뿐만 아니라 당시에 궁금했던 해석학, 그중에서도 성서 해석학에 관련된 내용들이 담겨있던 거예요. 그걸 보는데 내가 철학과가 맞나 싶을 정도로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 거예요. 그래도 한 서너 번은 봤어요. 주석에 해당하는 책들도 다 사서 봤죠. 그 한 달 동안 가졌던 생각 중에 지금까지 지켜오고 있는 게‘공부는 평생 하는 것’이란 생각이에요. 성우도 일종의 연기를 하는 직업인데, 메시지를 전달하는 부분에서도 그렇고 감정이나 정서의 표현에서도 그 사람의 모든 게 드러난다고 생각해요. 책 읽어서 얻는 지식도 공부지만, 모든 삶이 다 공부예요. 연기도 가짜지만 진짜처럼 하는 거니까 공부가 필요하죠.

 

어쩌다 마주친 성우의 세계

 

KBS 성우 공채에는 어떻게 지원하게 됐나요?
 재밌으면서 돈도 버는 일을 하려 했어요. 왠지 꼭 그럴 수 있을 것 같았죠. 심지어 4학년 때까지도 도서관에 안 갔어요. 좋아하는 책만 보고요. 대학 졸업을 앞둔 12월쯤 캐나다 밴쿠버에서 한인 방송국 하는 사람이 서울에 와‘올라운드 플레이어’를 뽑는다고 했어요. 작은 방송국이기 때문에 취재, 아나운서, DJ, 엔지니어를 혼자 해내야 하는 거죠. 그때 특히 관심 있던 분야가 믹싱 마스터였는데요. 음악 스튜디오에서 각 악기별 파트들을 녹음하면, 음반을 내기 전에 악기들의 밸런스를 맞춰 완성된 음악을 만들어내는 일이에요. 캐나다 한인  방송국에서 돈을 벌어서 믹싱 마스터를 배울 수 있는 학교에 다닐 계획이었죠. 그쪽에서 같이 토론토로 가자고 하는데 다음 해 10월 달이 돼서야 비자가 나왔고, 그때 저는 이미 마음이 떠난 뒤였어요.
 그러던 와중에 같이 방송국 생활을 했던 친구들이 11월 쯤“야, 넌 나랑 같이 가자.”고 하곤 사진관에 데려가 사진을 찍었어요. “너 일요일 날 시험이 있으니까 가서 봐봐.”성우 시험이래요. 성우가 뭘 하는지도 저는 잘 몰랐어요. 외화 더빙이나 애니메이션, 인형극 같은 것만 하는 줄 알았죠. 면접 보는 날 어울리지도 않게 코트 같은 걸 입고 갔는데 또 운 좋게 잘 됐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제가 합격했던 이유는 사투리를 쓰지 않고 기름진 음식을 많이 먹어 와서 신체적 조건이 성우의 호흡이나 발성에 맞게 발달했기 때문인 것 같아요. 하지만 유전적 재능이 있다고 해서‘맨날 하는 놈’을 이길 수 없다는 걸 명심하세요.

 

말 ‘잘 하는’ 사회로

 

20년 이상의 성우 경력을 쌓았고, 작년에는 제39회 한국방송대상 성우내레이션상도 수상하셨습니다. 지금까지 겪어온 것을 바탕으로 성우란 과연 어떤 직업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아무 생각 없이 접근했다간 죽도 밥도 안 돼요. 다른 분야도 그렇지만 지금은 처음부터 어느 정도 준비된 사람들을 뽑아요. 전에는 조건을 보고 가능성이 있으면 뽑을 수 있었지만, 지금은 많이 각박해져서 확실한 생각을 가지고 접근해야 돼요. 성우란 게 뭐고, 어떤 일을 하고, 전망이 어떻고, 무슨 능력을 갖춰야 되느냐, 성우의 정체성이 뭐냐, 영화배우나 아나운서하고 뭐가 다른가 하는 것들을 알아야 하죠. 그냥 목소리 좋은 건 의미가 없어요. 갇혀서 뭔가 노력해야 해요. 하지만 재밌으면 다 되던데요(웃음)? 그런 게 꼭 부담감으로만 있는 게 아니니까요.

 

성우로서의 최종 목표는 무엇인가요?

 이 사회가 밝고 건전한 사회로 가려면 최고결정권자에게 맞추는 게 아니라 서로 커뮤니케이션이 될 수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수직관계가 아니라 수평관계에서의 소통이죠. 그렇다면 말하기 능력이 상당히 중요해질 것 같아요. 그것이 지금까지 의미가 없었다면, 그게 의미가 있는 사회로 가는 게 지향점입니다. 좋은 선생님이 될 수 있게 콘텐츠와 교수법을 마련해서 이쪽을 지망하거나 사회생활을 하는 사람을 대상으로, 커뮤니케이션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회에서 필요한 인재를 기르는 전문 교육기관을 만드는 게 목표입니다.
 

도미경 기자 ehalrud@ss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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