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는 것 빼고 다 있는 몽콕의 야시장, 이미 클래식의 반열에 오른 2층 버스와 전차, 홍콩의 이태원이라 불리는 란콰이퐁, 빅토리아 피크(Victoria Peak)에서 내려다보는 야경, 완차이 지역의 골목골목에 숨어있는 산해진미(山海珍味), ‘럭셔리’란 무엇인지를 가르쳐주는 타임스 스퀘어의 쇼핑가, 그리고 주윤발, 장국영, 유덕화로 대표되며 한 때를 풍미했던 홍콩 느와르 영화의 향수. 다 열거할 수도 없는 이 모든 것이 홍콩에 있다. 홍콩은 우리나라가 아주 못살던 시절부터 풍요로운 도시였다. 서구 아닌 서구였고 아시아 아닌 아시아였다. 99년의 긴 시간은 홍콩에 사는 사람들의 주의(主義)마저 바꾸어버렸다.
홍콩은 일찍이 서구식 자본주의를 받아들이고 금융 기법을 도입하여 중개무역(仲介貿易)의 중심지가 되었고 현대적이고 선진적인 물류시스템을 갖춘 공항과 항구를 건설하여 중계무역(中繼貿易)의 허브가 되었다. 아시아의 네 마리 용 중 선두주자로서 군림했었다. 불평등한 조약이 홍콩을 외세에게 강제로 입양했지만 진정한 아시아의 진주로 크게 성장한 것은 우리가 역사라는 이름으로 되새겨야 하는 교훈일 지도 모른다.
모든 것이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홍콩의 거리를 걸으면서 괜히 아픈 역사를 들먹일 필요는 없다. 하지만 대륙의 본토인이 몰려오는 것을 꺼려하는 홍콩인들의 표정을 읽을 수는 있다. 그들의 표정에 근심이 가득하다. 마치 영국의 총독이 지배하던 시절을 그리워하는 듯하다. 하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다.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홍콩의 특징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작년까지 열 번도 더 방문했던 홍콩에서 난 이상하리만치 강한 생명력을 느꼈다. 애쓰며 힘겨워 하며 근근이 버티는 생명력이 아닌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앞으로 나아가는 생명력이었다. 그래서 힘이 다 떨어졌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홍콩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