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 모든 피아니스트들의 우상이 이곳에 잠들어 있다. 정확히 말하면 그의 심장만이 이곳으로 옮겨져 신체의 나머지 부분을 기다리고 있다. 심장의 주인인 쇼팽은 이 도시의 수호신이며 정신적인 지주이다. 처절하게 파괴되었던 도시 바르샤바는 그의 심장 박동 소리가 홀로 만들어 내는 마주르카의 선율 속에 있다. 쇼팽의 심장은 수천만 마력의 엔진이며 바르샤바 전체를 이끄는 에너지의 원천이다.

   2차 세계대전이라는 이름의 폭탄은 도시의 85%를 폐허로 만들었다. 죽은자는 말이 없었고 살아남은 자는 비통한 눈물만 흘렸다. 폐허 속에서 사람들에게 희망을 준 것은 쇼팽의 마주르카 밖에 없었다. 10년 전 바르샤바에 처음 갔을 때 도시에 서려있는 우울함에 나는 유럽에 있으면서도 유럽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 내가 생각하는 유럽이란 낭만과 여유였는데 이 도시에는 낭만도 여유도 없었다. 사람들의 굳은 표정과 왠지 구부정한 목과 등의 곡선은 나에게 활기에 찬 걸음걸이를 포기하라는 것 같았다. 몸은 바르샤바에 있었으나 머리 속에는 입시용 교재에나 나올 법한 ‘바르샤바 조약기구’라는 용어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악명 높은 소련의 독재자 스탈린이 1955년에 착공하여 폴란드인에게 선물했다는 문화과학궁전이 바르샤바의 스카이라인을 지배할 뿐 아무 것도 내 눈에 잔상을 만들어 내지 못했다. 왜 이렇게 고압적으로 생긴 건물이 쇼팽의 조국을 압도하고 있는지를 생각하니 마음이 무거워졌다. 광화문 뒤에서 오랜 세월동안 조선왕조의 궁궐 위에 검은 그림자를 드리웠던 일제 총독부 건물이 생각나는 것은 왜일까. 한국 사람들이었으면 이런 구시대의 유물을 벌써 해체해 버렸을 테다. 그러나 바르샤바는 해체보다는 보존을 선택했다. 아픈 경험도 경험이고 바르샤바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자본주의에 대한 공산주의의 자존심을 살리고자 의도했던 이 거대한 건물의 속을 극장과 레스토랑, 방송국과 카지노가 채워 간다는 사실은 역사의 아이러니다.

   그러나 코페르니쿠스 동상을 보고, 쇼팽이 공부했다는 바르샤바 대학에서 젊은 학생을 만난 후부터 얼어붙었던 내 마음도 조금씩 녹아내렸다. 지동설의 코페르니쿠스와 음악의 혁신가 쇼팽이 폴란드 사람이었다는 사실만으로도 편견의 골이 없어졌다고 해야 맞을 것이다. 도시 전체를 지배하는 마주르카의 선율은 폴란드인들의 민족혼을 불러일으킨다. 쇼팽의 심장이 안장되어 있다는 성십자가 교회에 섰을 때는 시련을 극복한 강인한 폴란드인의 기백이 살아있음을 느꼈다.

   칠전팔기의 도전정신을 배우고 싶은 사람은 바르샤바의 아픔을 경험할 필요가 있다. 파괴되어도 다시 복원하는 힘, 내 민족만이 가진 고유성에 대한 찬미, 그리고 위대한 민족 음악가가 만들어 놓은 민족혼에 대한 존경, 이 모든 것을 바르샤바에서 찾을 수 있다. 우울한 도시는 없었다. 다만 내가 진실로 느끼는 데 시간이 걸렸을 뿐이다. 깊어가는 겨울 바르샤바에 감도는 피아노의 음색을 다시 음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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