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생활 7년을 통틀어 15개 국가를 여행한 글로벌한 청년이 있다. 이집트에서 권총 강도를 만난 사건부터 터키에서 가이드를 한 경험까지, 지난 7년간의 대학 생활을 다사다난하게 보낸 윤석원(언론홍보‧07)군을 만나 그의 이야기를 들어 봤다.

 

  여행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요?

  제가 군대에서 운전병을 했을 때 정훈공보부(군대에서 언론보도, 선전, 선전영화 제작, 인쇄, 정기간행물 및 방송에 관한 사무 등을 관장하는 기관)에서 복무하시는 분들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어요. 그러다 보니 전쟁이나 국제 분쟁을 보도하는 일에 관심이 생겼어요. 어렸을 때부터 전쟁과 관련된 영화를 좋아했거든요. 전쟁에 대한 판타지 같은 것이 있잖아요. 전쟁에 나가는 주인공들은 총알이 다 비껴나가고, 아름다운 아내를 만나서 결국에는 행복하게 살고.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느낀 것은, 실제로 전쟁은 그렇게 낭만적이지 않더라고요. 만약 내가 종군기자나 국제 분쟁 전문 기자가 된다면 대중들에게 전쟁이 멋지기만 한 것은 아니라고 알려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떻게 하면 종군기자를 할 수 있을까 고민하면서 평생교육학과에서 언론홍보학과로 전과를 했고, 분쟁이 일어나고 있는 지역을 찾아 떠나게 되었어요. 여행을 통해 경험을 많이 쌓자는 생각도 있었죠.

 

  국제 분쟁과 관련한 여행 에피소드가 있나요?

  국제 문제 쪽에 관심이 많다 보니 이스라엘 같은 분쟁 지역에 가서 ‘한 번 스스로 취재를 해 보자.’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집트와 리비아 쪽에서 민주화 혁명이 일어나고 있던 시기였고, 이스라엘 같은 경우는 유엔에서 팔레스타인과 평화협정을 맺으라고 권고하던 기간이었어요. 그러다 보니 ‘뭔가 일이 나겠다. 저기에 가면 취재 거리가 있겠다. 가서 취재를 해서 블로그에 올리면 무릎팍도사 같은 곳에 나가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했어요. 그래서 올해는 꼭 가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부모님을 설득하기 위해 포트폴리오를 썼죠. 내가 그곳에서 어떻게 지낼 것이며, 무엇을 얻을 수 있고, 어떤 위험이 있는지를요. 부모님을 설득해서 부모님께 손 안 벌리고 비행기 표만 끊어서 떠났어요. 이스라엘에 내렸는데 제가 생각한 것과 달리 너무 조용한 거예요. 그래서 제가 이스라엘에 있는 친구들한테 한 번 물어봤어요. “내가 국제 분쟁 쪽에 관심이 있고 기자가 되고 싶어서 왔다. 그런데 되게 평화롭더라.” 라고요. 그랬더니 그 친구가 “네가 어디에서 왔지?” 하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한국에서 왔다고 했더니 “너희 나라가 제일 위험하지 않아?” 라고 했어요. 관점이라는 것이 그렇더라고요. 매체가 보도하는 작은 부분만 보고 전체를 판단하면 안 되겠다는 깨달음을 얻었어요.

  이스라엘에는 ‘키부츠’라는 공동체가 있어요. 이 공동체의 안에 있는 사람들은 공장이나 농장에서 함께 일을 하고, 그 수익을 똑같이 분배해요. 또 해외에 있는 젊은 청년들을 데려다가 그곳에서 봉사활동을 하게 해 줘요. 숙소도 주고, 용돈도 주고, 먹을 것도 주면서요. 저는 종군 기자가 되고 싶어서 그곳에 갔으니까 가자지구로 가겠다고 해서 가자지구 근처에 있는 홀리트라는 마을로 갔어요. 그곳이 이스라엘에서 제일 위험한 곳이거든요. 그래서 집집마다 폭탄 대피소가 있어요. 싸바돔이라고 해서 “싸바돔 싸바돔”하고 울리는 경보기가 있는데, 그 소리가 울리면 15초 내로 대피소로 달려가야 해요. 그곳에서 지내면서 설마 이게 울리겠나 생각했는데, 제가 있는 동안에도 몇 번이나 울리더라고요.

 

  여행을 통해서 삶에 의미를 얻을 만한 특별한 경험이 있나요?

  2011년 10월쯤에 이집트에 갔어요. 카이로에 있는 마켓을 갔다가 타흐리르 광장 쪽에 있는 숙소로 돌아가는 길이었는데, 타흐리르 광장에 민주화 시위가 막 일어나고 있더라고요. 마침 카메라도 있고, 촬영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원래는 타흐리르 광장 지하철역으로 올라가야 했는데 경찰들이 못 나가게 막더라고요. 저는 그래도 한 번 가 보고 싶다는 생각에 지하철로 한 정거장 더 가서 역으로 나갔죠. 길거리에 전구가 나가 있고, 창문이 깨져 있고, 차에서 타이어 타는 냄새가 나고 있었어요. 카메라를 들었죠. ‘와, 내가 진짜 왔구나.’ 이런 생각을 하면서 타흐리르 광장 쪽으로 들어갔어요. 시위가 일어나고 있으니까 위험하다며 만류를 하는데 프레스인 척 그냥 들어갔죠. 광장 안에서 촬영을 하고 있는데 총소리도 나고 탱크도 왔다갔다 하니까 너무 무서웠어요. 사람들 비명 소리가 들렸는데, 제가 말로는 취재하러 갔다고 하지만 너무 무서워서 숨어 다녔어요. 무서워 죽겠는데 갑자기 어떤 이집트 사람이 오더니 저한테 여기 왜 있냐고, “지금 미국 사람들이랑 관광객들이랑 기자들이 부상을 당해서 미국 대사관에 피해 있다. 너 이러다가 죽는다. 빨리 따라 와라.” 이러는 거예요. 저는 그 말을 믿었죠. 그래서 따라 갔어요. 따라 가는데 골목길로 계속 들어가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미국 대사관은 정말 안전한 곳에 숨겨져 있구나.’ 하고 감탄을 했어요. 그런데 갑자기 막다른 골목에 저를 데리고 가서 권총을 딱 들이밀더라고요. 순간 말이 안 나오고 막막해졌어요. 막 눈물도 나고. 결국 제가 가지고 있던 돈이랑, 수중에 있던 티켓, 아이폰을 다 가져갔어요. 부들부들 떨렸어요. 휴대폰 안에 모든 자료들이 다 메모되어 있고 기자가 되고 싶어서 갔기 때문에 인터뷰 했던 내용들, 찍으면 안 되는데 어렵게 찍은 사진들 등 중요한 것들이 많았는데 그것을 빼앗기니까 어안이 벙벙하더라고요. 그런데 들고 있던 카메라도 달라고 하는 거예요. 다 빼앗겼는데 카메라마저도 달라고 하니까 미치겠더라고요. 그래서 카메라를 달라고 하는 찰나에 카메라로 그 사람 머리를 찍고 죽을 힘을 다해서 달렸어요. 청바지가 찢어져서 피가 흐르고 있는데도 감각도 없고. 어느 순간 다리가 풀렸어요. 그 사람이 총으로 저를 쐈으면 전 죽었을지도 모르죠. 그렇지만 ‘여기서 죽든 살든 이판사판이다.’ 라는 생각으로 울면서 뛰었어요. 거기에서 죽을 뻔한 일이 있었으니까, ‘하루하루를 후회하지 말고 열심히 살자. 내가 내일 어떻게 될지 모르잖아.’라는 생각이 생겨서 더 열심히 살 게 된 것 같아요.

 

  여행을 다니면서 위험한 일도 생겼었는데, 부모님께서 걱정은 안 하시나요?

  많이 하시죠. 아프리카 다녀와서 제가 말라리아에 걸렸었어요. 케냐에서 병이 나서 병원에서 치료를 다 받았는데 한국에 와서 재발을 한 거예요. 그것도 추석 때에요. 병원도 다 문 닫아서 생사를 오갔어요. 부모님께서 그 모습을 보시고 다시는 외국 나가지 말라고 하셨는데, 또 이번에 필리핀 타클로반 태풍 현장을 다녀오게 됐어요.

 

  학교를 떠나면서 후배들에게 이것만은 꼭 하라고 당부해 주고 싶은 것이 있나요?

  요즘 친구들을 보면 실패할까봐 두려워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그 두려움을 없애라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두려움의 이유가 실패 때문이라면 해 보고 후회하고, 해 보고 두려워하는 게 낫지 않을까요? 대학을 졸업하면 할 수 없는 것들이 생각보다 많이 있어요. 대학생으로서 할 수 있는 일들을 리스트로 만들어서 시도해 보면 좋을 것 같아요. 도전을 통해서 내가 앞으로 무엇을 하면 행복한지를 졸업하기 전에 꼭 찾았으면 좋겠어요. 그것을 찾고 난 이후에 취업을 위한 커리어를 쌓는 것이 더 옳다는 생각이 들어요. 1, 2학년 때는 여행 많이 다니면서 견문도 넓히고, 사람도 많이 만나고, 대외활동도 하고, 실패도 해보고, 사랑하는 이성 친구를 만나 보기도 하고, 배신도 당해 보기도 하고 이것저것 많이 경험해 봤으면 좋겠어요.

 

  함께 졸업하는 학우들에게 한 마디

  같이 졸업하는 입장에서 제가 감히 이런 말을 해도 되는지 모르겠어요. 이제 졸업을 하고 취업을 하게 될 텐데, 자신이 정말로 원하는 분야에서 원하는 일을 하면서 그 안에서 숭실대학교 졸업생으로서의 긍지나 사명을 가지고 열심히 했으면 좋겠어요. 또, 후배들이 그 분야에 지원했을 때, 본인으로 하여금 숭실대학교 졸업생은 믿을 수 있다는 인상을 줄 수 있도록 자신을 관리했으면 좋겠어요. 나중에 사회에서 만났을 때, “아, 숭실대학교 나오셨어요?” 하면서 동문들끼리 힘이 되고, 단합이 될 수 있으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이제 졸업하시는 분들, 앞으로 하시는 모든 일들이 다 잘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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