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인문학’이라는 말을 떠올리면 흔히 멀고 어렵다고 생각한다. 인문학 책은 왠지 두껍고 철학적인 이야기만 나올 것 같기 때문이다. 또 고대 그리스 이야기는 왜 이렇게 많이 나오는지, 사람 이름도 길고 생소하기만 하다. 모든 사람이 어렵다고 생각하는 인문학에 관심을 가질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지난 12일(수) 교육개발센터에서 주최한 조승연 작가의 인문학 강연을 찾아가 그 이야기를 들어봤다.

‘이런 옷 어때요?’

피타고라스, 유클리드 등 유명한 수학자 중 그리스인이 많기 때문에 우리는 그리스 사람들이 수학을 굉장히 잘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실 그리스인보다는 이집트나 페르시아 사람들이 더 수학을 잘했다. 당시 그리스에서는 이집트로 유학을 가서 수학을 공부하는 것이 유행이기도 했으니 말이다. 유명한 수학자 유클리드도 대세를 따라 이집트에서 수학을 배웠는데, 그곳에서 배운 수학적 개념이 바로 선과 원의 정의였다. 이후 유클리드가 그리스로 돌아와 학생들에게 직선을 가르치려고 하는데, 어떤 학생도 직선의 개념을 이해하지 못했다. 당시 그리스는 기술력이 없어 반듯한 모양의 물건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학생들에게 이해를 시킬 수 있을까?’하고 고민하던 유클리드는 그의 옷을 이용했다. 당시 마직 옷을 입고 있던 그는 옷에서 튀어나온 실을 보고 그것을 평평하게 펴서 ‘직선은 이런 것’이라고 학생들에게 보여줬다. 그러자 학생들이 “아, 당겨진 실처럼 평평한 게 직선이구나.”하고 이해를 했
다고 한다.

이 이야기를 어원적으로 다가가 보자. 마직 옷은 영어로 linen이라고 한다. 바로 이 linen이라는 단어에서 선이라는 뜻의 단어인 line이 나온 것이다. 이처럼 우리가 알고 있는 것들의 어원을 알고, 그 이야기를 이으면 자연스럽게 인문학 이야기가 된다.


카푸치노에 숨어있는 인문학

1700년대 비엔나에 한 사업가가 있었다. 이 사업가가 은퇴 후 커피 전문점을 차렸는데 문제가 하나 있었다. 비엔나 사람들이 쓴 맛을 싫어한다는 것이었다. 당시 유럽에서는 에스프레소를 추출해 커피를 만들었지만 비엔나 사람들은 쓴 맛의 에스프레소를 외면했다. 이에 커피 전문점 주인이 ‘비엔나 사람들은 단 것을 좋아하니까 커피에 우유 거품을 올리고 설탕을 넣어서 단 것을 만들어 주자.’고 생각해 새로운 커피를 개발했다. 그런데 커피를 만들어 놓고 나니 이름을 뭐라고 할지 고민이 생겼다.

당시 비엔나에는 망태기를 쓰고 동냥을 하러 다니는 수도승들이 있었는데, 이 사람들은 평생 한 자루의 옷만 가지고 살았다. 그런데 이 옷이 계속 비바람에 쓸리다 보니까 굉장히 멋진 은은한 갈색을 띠게 됐다. 어느 가게에서도 이 은은한 색의 옷을 살 수 없었기 때문에 당시 비엔나 사람들은 수도승의 옷 색깔에 대한 동경이 있었다.

또한 수도승들은 비를 피하려고 망태기 옷 위에 후드를 쓰고 다녔는데, 이탈리아어로 이 후드를 ‘카푸치’라고 했다. 그리고 수도승들은 카푸치를 뒤집어쓰고 다니기 때문에 ‘카푸친’이라고 불렸다.

커피 전문점 주인이 새로 개발한 커피를 보니 그 색깔이 카푸친 수도승의 옷 색깔이랑 비슷했다. 그래서 ‘카푸친 수도승의 옷 색깔이 나는 커피다.’라고 해서 이 커피를 ‘카푸치노’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과소비를 부추기기 위해 만들어진 신데렐라

루이 14세는 굉장히 재미있는 사람이었다. 자기가 돈을 많이 벌고 싶어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주변의 다른 귀족들이 가난해지기를 원했다. 그래서 루이 14세는 평생 귀족들의 과소비를 조장하는 방법을 연구했다.

예나 지금이나 아버지들이 싫다고 못하는 것 중에 하나가 딸들의 부탁이지 않은가. 그래서 루이 14세는 ‘어떻게 하면 딸들이 아버지에게 쓸데없는 것을 사달라고 조를까?’하고 매일 고민을 했다. 그러다가 프랑스 문예원 소속인 샤를 페로라는 동화작가에게 어린 여자 아이가 멋있는 남자를 만나지 못했을 때, ‘내가 멍청하거나 못생겨서가 아니라 내가 싼 옷을 입어서야.’ 라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는 동화를 만들 것을 명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이야기가 바로 ‘신데렐라’다.

“핏줄은 굉장히 좋은데 매일 재로 뒤집혀 있는 옷을 입어서 어떤 남자도 쳐다보지 않는 여자가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요정이 나타나서 옷을 갈아입혀 주니 왕자님이 반해서 시집을 가게 됐다.”

루이 14세는 이 신데렐라 이야기를 책으로 만들어서 귀족 집에 무료로 배포했다. 이렇게 책을 받은 귀족들 중에 마콩 후작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의 딸은 자신보다 낮은 신분인 남작의 딸에게 자기가 좋아하던 공작을 빼앗겼다. 이에 분한 후작의 딸이 아버지에게 가서 “아빠, 신데렐라를 보니까 내가 옷을 잘 입었다면 저 남자를 가질 수 있었을 텐데 아빠가 새 옷을 안 사주니까 내가 멋진 남자를 빼앗긴 거잖아.”라고 말했다. 그래서 이 후작이 자신의 전 재산을 탕진해서 딸에게 옷을 사줬는데 이 옷의 값이 어마어마했다고 한다. 마콩 후작이 가지고 있던 땅이 우리나라 강원도의 반 정도 됐는데, 가지고 있던 땅값의 두 배를 주고 딸한테 옷을 사준 것이니 상상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 결국 그 딸은 노처녀로 늙다가 수녀가 됐다. 루이 14세의 계획대로 귀족들이 쓸데없는 돈을 쓴 것이다.


아는 사람들끼리의 공감, 윙크효과

‘윙크 효과’란 어떤 내용을 아는 사람들끼리 윙크를 주고받는 데에서 나온 말이다. 인문학을 공부한 사람들은 셰익스피어 등 유명 작가의 작품을 인용해 제목이나 대사를 만든 작품을 높게 평가한다. 실제로 유명 문학작품을 인용한 글에 대해 작품성이 있다며 노벨상이나 세자르 상 등 권위 있는 상을 주기도 하는데, 기본적으로 인문학에 깔려 있는 내용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왠지 모르게 차별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인문학을 알면 더 이상 차별받지 않고 다양한 작품 속에 녹아든 윙크 효과를 알아챌 수 있다.

예를 들면 영화 ‘007 시리즈’의 부제 중에 ‘skyfall’이라는 제목이 있다. 문법에 맞으려면 ‘sky falls’라고 해야 한다. 그런데 이것이 도대체 무슨 의미일까? 옛날 로마 법전 1장 1절을 보면, “Let justice be done, though the heavens fall”이라는 말이 있다. ‘하늘이 무너져도 정의를 세워야 한다.’라는 뜻이다. 영화 제목은 이 문장에서 ‘sky fall’이라는 말을 가져온 것이다. 이걸 알고 보면 영화가 굉장히 재미있다. 영화에서 제임스 본드가 나이가 들어서 몸이 힘든데도 악당을 잡기 위해서 끝까지 쫓아가는 모습이 “하늘이 무너져도 정의를 세워야 한다.”는 법 조항을 떠올리게 한다.


이 강의를 통해서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인문학은 다른 어떤 과목이 아니라는 것’이다. 내가 지금까지 알고 있던 것이 어떻게 엮여 있고 연결돼 있는지를 알게 된다면 인문학은 바로 우리네 옆집 아저씨 이야기와 비슷하게 다가올 것이다.

또한 인문학은 사람을 문화인으로 만들어준다. 문화는 영어로 culture라고 한다. culture는 원래 ‘밭을 갈다.’라는 뜻에서 나온 말이다. 인문학 소양을 분야별로, 또 시대별로 잘 갈아 놓으면 내 머릿속은 마치 골이 가로 세로로 잘 파인 밭처럼 만들어 진다. 상황이라는 씨앗이 뿌려졌을 때 아이디어라는 꽃과 나무가 자랄 수 있도록 토양을 가꾸는 것을 우리는 culture라고 하는 것이다. 이처럼 인문학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전공 속에 있고 생활 속에 있다. 그것을 볼 줄 아는 사람과 볼 줄 모르는 사람은 한 가지를 배울 때 10년이 걸리는 사람과 1년이 걸리는 사람으로 갈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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