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개강채플을 들었던 날의 충격을 잊을 수가 없다. 공연으로 진행됐던 채플이었다. 한 곡이 끝났는데 호응이 너무 없었다. 공연의 수준이 낮은 것도 아니었다. 밖에서 들으려면 비싸게는 십만 원을 넘게 내야 하는 공연이었는데도불구하고 관객들의 박수가 너무 빈약했다. 공연이 계속 될수록 박수 소리는 더욱 작아졌고 나는 갈수록 민망해지기 시작했다.

  그날 공연한 합창단 단원 중에는 지인이 있었다. 채플이 끝난 뒤 만난 지인은 미안해하는 나에게 “그래도 이번에는 사람들이 박수를 많이쳐 줬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도대체 예전에는 얼마나 반응이 없었던 것이냐?”고 반문했다. 그러자 지인이 한숨을 내쉬며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고 있었고, 그나마 깨어 있는 사람들도 핸드폰을 들여다 보더라.”고 답했다. 공연에 집중하는 사람이 없어서 웃으며 노래하는 것이 참 힘들었단다. 그 말을 들으니 ‘반응 없는 숭실대생’ 중 한 명으로써 창피함에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

  우리 대학은 기독교 학교다. 숭실대가 긴 역사 동안 미션스쿨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었던 근간은 바로 채플이라고 생각한다. 채플이 예배라는 점에서 비기독교인들이 듣기에는 부담스러울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을 배려한 학교측에서는 기존 교회의 예배 형식을 그대로 가져오기보다는 강연이나 공연 형식으로 채플을 진행한다. 한 교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예배 형식의 채플을 지루해하는 학생들에게 활력을 더하기 위해 문화채플이 제안됐고, 그것이 만들어지기까지 3년에서 4년이 걸렸다고 한다. 그 덕분에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음악회를 감상하듯 채플을 들을 수 있게 됐지만 채플도 따지고 보면 엄연한 수업이다. 앞에 서 있는 사람들은 좋은 공연과 강연을 들려주기 위해 배로 노력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가 그들로 하여금 우리 학교의 수준을 결정짓게 만드는 요인이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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