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의 문이라는 의미의 푸에르타 델 솔 광장은 마드리드의 중심이 된다.
  레알 마드리드와 FC 바르셀로나가 축구 시합을 하는 날이면 스페인은 들썩인다. 이베리아 반도가 잘려나갈 듯한 에너지가 끓어오른다. 한일전보다 더 강한 함성이 울려 퍼지고 과격한 응원전이 전개된다. 가끔씩 주차된 상대방 팀의 버스가 불태워지기도 한다.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 사람들의 자존심을 훨씬 뛰어 넘은 극도의 지역감정은 축구를 통해 분출된다. 우리나라의 지역감정은 스페인의 그것에 비하면 시쳇말로 명함도 들이밀지 못할 정도다. 이웃 국가를 이기는 것보다 같은 나라의 서로를 이기는 것에서 더 큰 희열을 느낀다니 할 말을 잃었다. 스페인의 몇 개 지역은 분리 독립을 주장하고 있다고 하니 어느 정도 상상이 된다.

  마드리드는 바르셀로나에 비해 스페인에 온 것 같은 느낌을 준다. 바르셀로나가 가우디라는 천재의 건축물을 바탕으로 한 이국적인 항구도시라면 마드리드는 여기가 바로 스페인이라고 말해주는 내륙도시다. 마요르 광장과 더불어 마드리드 사람들이 가장 좋아한다는 푸에르타 델 솔(Puerta del Sol: 태양의 문) 광장은 늘 북적인다. 도시의 분위기는 사람들의 표정과 옷차림마저 지배하는 듯 모두가 당장이라도 플라멩코를 출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 도시는 정열이라는 이름으로만 표현될 수 있다. 다른 이름으로 표현하면 목이 가늘고 팔이 긴 사람이 목이 두껍고 팔이 짧은 사람의 와이셔츠를 입은 것처럼 어색할 것이다. 마음 속으로 느끼는 정열이라는 화두는 저녁을 먹으며 플라멩코를 감상할 수 있는 디너쇼에 적지 않는 돈을 지불하는 것에도 주저함이 없게 만든다.

  내가 마드리드에 온 가장 큰 이유는 프라도 미술관이 있기 때문이다. 스페인 왕실이 수집했다는 수천 점의 소장품 중에서도 고야의 ‘옷 입은 마야(La Maja Vestida)’ 와 옷 벗은 마야(La Maja Desnuda) 는 압권이었다. 이 명화들을 직접 보는 나의 두 눈은 몇 시간이라도 서있을 수 있는 튼튼한 다리에게 경의를 표한다. 안달루시아 지방을 대표하는 화가인 벨라스케스의 작품을 하나씩 섭렵해 나가면 태양의 문을 가진 이 도시도 서서히 저물어 간다. 마드리드는 찾아오는 태양을 영접하고 떠나는 태양을 환송하는 도시다. 아침 열시에 개장하자마자 들어왔는데 벌써 퇴장을 알리는 안내 방송. 미술관 밖으로 나오니 태양은 내일의 재회를 다짐하며 사라진다.

  숙소로 돌아와 TV를 켜니 투우(鬪牛)하는 장면이 나온다. 지친 황소에게 마지막 일격을 가하는 마타도르(Matador)의 눈을 클로즈업해준다. 눈에 두려움이나 망설임이 조금이라도 서리면 황소를 절대로 죽일 수 없고, 오히려 황소의 뿔에 받혀 목숨을 잃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마드리드는 승리한 마타도르의 눈을 닳았다. 태양을 똑바로 노려보며 태양마저 쓰러트릴 것 같은 열정을 보여준다. 한 번 시작한 것을 두려움과 망설임 없이 완성하고자 하는 자에게 마드리드는 필수 여행코스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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