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미 대륙을 생각하면 우선 두 나라가 떠오를 것이다. 카니발의 나라 브라질과 탱고의 나라 아르헨티나. 그나마 우리에게 친숙한 나라를 하나 더 생각한다면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한 칠레 정도가 아닐까 싶다. 그러나 남미 대륙의 지도를 펼쳐 놓으면 들어는 봤으나 쉽게 접할 수 없었던 국가들이 “어찌 나를 모르고 남미를 논할 수 있으랴” 라고 말하는 것 같다. 그 중 유독 베네수엘라(Venezuela)는 존재감을 과시하며 더 강하게 말한다. “카라카스는 남미를 해방시킨 시몬 볼리바르(Simon Bolivar)의 탄생지입니다.” “그가 없는 남미는 상상할 수도 없지요.”지도의 주장에 베네수엘라는 단지 ‘미인이 많은 나라’라는 나의 얄팍한 ‘어깨너머 지식’은 순식간에 무너져 내려 버린다. 남미에서 유일하게 야구가 더 인기 있는 나라, 중동 국가가 아님에도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주요 회원국, 베네수엘라의 미인들은 미인대회를 위해 어려서부터 가공된다는 사실, 베네수엘라에 도착해서 난 참으로 많은 것을 배운다. 

  ‘작은 베네치아’라는 뜻의 베네수엘라는 스페인 정복자가 만들어 낸 이름이다. 원주민이 사는 수상가옥을 보고 그들은 이탈리아의 베네치아만을 떠올렸다니 거만한 유럽 중심의 세계관이 아닐 수 없다. 카라카스(Caracas)는 이처럼 뜬금없이 지어진 작은 베네치아 베네수엘라의 수도이다. 이 도시를 남미에서 가장 의미있는 곳으로 만드는 것은 독립영웅 볼리바르다. 카라카스에서 태어난 그는 베네수엘라뿐만 아니라 콜롬비아, 페루, 에콰도르, 볼리비아를 독립시켰다. 적어도 이 다섯 나라의 사람들은 남미 최고의 영웅은 체 게바라(Che Guevara)아니라 볼리바르라고 주저없이 말한다. 오죽했으면 볼리비아라는 국가명은 그의 이름에서 나왔고, 볼리비아의 화폐는 ‘볼리비아노’이겠나. 

  산 위에 덕지덕지 붙어 밤에는 이곳이 어딜까라는 궁금증을 만들어 내는 조악(粗惡)한 판자촌과 시내의 고층빌딩은 카라카스의 현재 모습을 대변한다. 산유국이어서 휘발유 1리터의 가격이 200원에 불과한 베네수엘라지만 차가 없는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신의 선물 앞에서 이 나라가 처한 슬픈 현실을 목도한다.

  그리고 여자아이라면 신분 상승의 첩경으로 여겨지는 미인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보이면 어려서부터 성형수술을 해서라도 미인으로 길러진다는 말을 듣고 삶의 애환을 느낀다. 빈민가에서는 총이 없으면 자기를 방어할 수단이 없고, 가진 자들은 최고급 승용차를 연료 걱정 없이 이 세상에서 가장 저렴하게 운전할 수 있는 이 도시 카라카스에서 나는 남미 독립영웅이 꿈꿨던 이상적인 모습의 변형에 마음 아파한다.  

  성지(聖地)같은 볼리바르 광장을 돌아보며 남미 통일제국의 거대한 목표를 수립하고 실천했던 한 젊은이의 열정을 느꼈다. 현재의 만성적인 사회적 부조리마저 그 거대한 열정 앞에서 작아 보였던 이유는 시몬 볼리바르의 혼이 카라카스를 굽어 살피고 있기 때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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